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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자여 ! (요 0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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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번의 인간의 실수와 허물을 넓은 아량과 도량으로 용서하는 삶이 동양적인 군자의 윤리관이었습니다.그러나 이 용서는 어디까지나 체면 적인 용서일 뿐 [산용서] 요 [완전한 용서]는 아닌 것입니다. [루터] 는 용서란 [모든 창조질서에 순응하는 일]로 보았고, [웨슬레]는 용 서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전부]라고 말했습니다.

 진정한 기독교의 용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사랑과 공의에서만이 가능합니다. 곧 [예수님 앞으로]나오는 것입니다.

 1.죄인으로 끌려왔습니다.

여인을 끌고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모세의 율법을 어떻게 적용하고 처리할 것인가 주목하였습니다. [선생은 어떻게 말하 겠나이까] 이 질문은 예수님을 시험하고 고소할 조건을 찾고자하는 계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약 율법으로 다스리기 원하셨다면 마땅 히 상대의 남자도 불러왔어야 했을 것입니다.

 신명기 22장 24절에는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이도록 하 였습니다. 무리들이 여인을 율법으로 저주하고 결국은 죽음으로까지 끌고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에서 끌려올 여인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너 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심을 친히 증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심은 세상을 심판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 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었습니다.

 2. [주여] 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있느냐 너를 정죄 한 자가 없느냐] 물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여인은 [주여 없나이다] 라고 고백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록 주님앞에 끌려왔을 때는 근심과 걱정과 정죄와 죽음의 자리에 있었지만 이제는 주님앞에 아무도 자신을 정죄할 자가 없는 것을 눈 으로 확신함으로 자유함을 가졌습니다.

 구약에서는 짐승의 피가 율법의 정죄를 덮어 주었지만, 예수님은 십 자가의 보혈로 단번에 율법의 저주를 친히 담당하시고 덮어 주셨습니 다. 율법의 완성이심이요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신 위대하신 선언이 십니다.

 무리들은 다만 [선생이여] 부를 수 있는 관계에 불과 했지만 여인은 [주여]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앞에 나올 때는 죄인의 모습으로 끌려왔지만 이제는 새로운 삶의 출발이요, 오직 주님만이 나의 길이요 진리요 영생임을 고백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주 님만이 나의 모든 전부이십니다. 율법의 정죄에 끌려가지 말고 복음의 생명의 길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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