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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정으로 넉넉한 생활을 하려면? (잠 22:1-2,약 02:1-17,막 07:2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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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는 사람 중에 부부가 함께 교사인 가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가정에는 아이가 없습니다. 남자에게 이상이 있어서 자녀를 낳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자녀가 없다는 게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 인생의 즐거움을 한껏 만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 두 사람의 수입은 꽤 많은가 봅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보다 많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자녀가 없이 단 둘 뿐이니, 그들의 호주머니 사정은 여유로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남는 돈으로 하는 일이란, 해외 여행을 다니는 일이라고 합니다. 겨울이면 따뜻한 나라인 필리핀쪽으로 여행을 가고, 여름방학 때에는 서늘한 나라로 나들이를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멋있어 보이는 생활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부러워할 것입니다. 그런데 특히,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남자의 여동생 되는 사람은 굉장히 부러운 듯이 말했습니다. 자기도 그만한 정도의 여유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되기를 「이 세상에는 넉넉하게 사는 사람과 가진 것 없이 가난하게 사는 이가 다함께 섞여 살지만, 이들을 지으신 분은 여호와시니라(잠22:2)」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부자나 가난한 사람은 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자라고 해서 뽐낼 일도 아니고, 가난하다고 해서 위축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다 그 나름대로 할 일이 따로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재물을 더 허락하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재물 대신에 다른 것을 더 허락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부자가 재산이 많다고 해서 없는 사람을 무시하거나 억울하게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더군다나, 돈에 여유가 있다고 해서 자기들만의 목적에 사용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턱없이 미워하거나 부러워해서도 안 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복을 발견하지 못하고 잘사는 사

설교자:정 수 환 목사(j3038)
소속교회:영춘교회

람만 시샘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물질적인 재산만을 가지고 부자와 가난한 자로 구분하는 것은, 너무나 불경건한 태도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야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 나라를 알지 못하는 고로, 눈에 보이는 물질만을 가지고 그 넉넉한 정도를 따진다 할지라도,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들로서는 그러한 태도가 아주 옳지 못한 자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학생이 국민학교 때부터 대학까지 수많은 돈을 투자해서 얻는 게 무엇입니까 어디 눈에 보입니까 그가 습득한 것은 보이는 물질이 아닙니다. 머리 속에 들어있는 지식과 몸에 밴 인격입니다. 그것을 돈으로 따져 그 값을 매길 수가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대학을 나온 후에, 그동안 투자한 돈을 뽑아내야 한다고 하던데, 그것은 아주 그릇된 생각입니다. 대학까지 공부하는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되어서 그 책임을 감당키 위한 능력을 기르는 데 있어야 합니다.
하물며 우리 성도가, 믿음생활을 통해서 얻는 것을 가지고 물질로 계산하는 것은,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노릇입니다. 진정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주를 따름으로써 얻는 것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영원하고 참으로 귀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기자는 「너희가 영광스러운 예수를 믿으니, 사람을 외적인 것을 가지고 판단치 말라(약2:1)」고 했습니다.
이 성경 말씀을 풀어서 말씀드리면, 그야말로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의 것을 가지고 잘사느니 못사느니 할 수 있겠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황금보다 더 귀하고 값진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영적인 가치를 결코 물질적인 것에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어디 그렇습니까 아직 믿음이 성숙치 못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물질에 얽

매여 살뿐만 아니라, 물질의 다소(多少)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온전한 믿음이라면,
①물질적인 여유가 있을 때에 자신의 생활을 위해서는 되도록이면 아껴 사용하고 그 나머지를 가지고 주의 뜻에 따라 사용을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②그리고 나아가서, 영적인 면에서 빈곤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애써야 합니다. 물질적인 것보다 영적인 면이 더 소중한 줄 아는 성도라면, 물질 추구보다 영적으로 넉넉한 생활을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열심히 간구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우리 형편을 돌아보면,

1.물질적으로는 별 어려움이 없거나 여유롭게 되어가는 반면에, 영적으로는 점점 빈곤해져 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인 마가복음 7장 24-37절을 중심으로 해서, 예수님께서 빵 몇 개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각각 5천 명과 4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바리새인들의 신앙을 질책한 말씀과 병자들을 고치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 신분이 높고 여유롭게 살면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던 바리새인들에게는 칭찬은 커녕 야단을 치셨는가 하면, 병들고 힘없는 사람들은 가까이 하셔서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려놓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활동에 대해서 그 당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호의적이었습니다. 마가복음 7장 37절에, 「사람들이 몹시 놀라서 말하기를, “그가 하시는 일은 모두 훌륭하다. 듣지 못하는 사람도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하신다”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칭찬하고 있는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의 말씀은 아리송한 면이 많습니다. 7장 24-30절에서, 수로보니게 여자가 귀신 들린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갑자기 먹는 음식 이야기를 하십니다. 「내 자녀부터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이 먹을 음식을 개들에게 굴욕을 당하면서도 간청하기

를 마다하지 않는 그 여인의 소원을 들어 주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먹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귀신을 내쫓아 고쳐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신 바짝 차리고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5천 명과 4천 명을 먹이신 일을 상기 시킨 후에 말씀하시기를, 「너희의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어 있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고 탄식하시고 있습니다.
결국 마가복음 기자가 우리에게 들려주려는 예수님의 말씀은 「먹는 문제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 마음에 올바른 믿음만 간직하고 있다면, 주님께서는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니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 향한 온전한 믿음을 가져라」는 것입니다.
①그러나 우리는 실질적으로 부유한 삶이 뭔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잠언서 기자가 22장 1절에서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하나님의 은총을 더욱 택해야 한다」고 했지만, 왜 하나님의 은총이 많은 재물보다 귀한 것인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마 수로보니게 여인은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몇 억을 주고도 딸의 병은 고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 여인에게는 몇 억이라는 돈보다 하나님의 은총이 더 귀한 줄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어서, 그런 일들을 현실 속에서 경험하면서도 또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더라면 큰 일 날뻔 했노라고 고백하고 나서는, 금방 세상 일로 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분이 수십 억의 재산을 모았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가 오늘 죽게 된다면, 도대체 그 돈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돈이 좀 쪼들려도 주님 말씀대로 살다가 천국 가는 게 낫지, 어째서 물질만 추구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만 낫단 말입니까
그런고로 진정 부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입니다. 인간이 계획을 해서 하
는 일이란, 무엇을 이룬 듯하다가도 허사(虛事)로 끝나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없이 이루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②아뭏든 현실은 부자가 되어야 대접을 받고, 또 그 부자를 잘 대접을 해야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세상입니다.
성경에서는, 잘 살고 못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잘 살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운명을 손에 쥐고 계신 하나님 마음에 맞도록 살려고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부자가 돈을 가지고 아무리 뽐내봤자 한 순간입니다. 그 다음 영원한 시간 동안에는 그 행한 대로 심판을 받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부자를 부러워합니다. ‘제가 잘 살면 얼마나 잘 산다고 거들먹거리느냐’고 흉보지만, 내심 그 잘 사는 사람들을 우러러 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믿음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보다 돈버는 일을 우선할 때가 많습니다.
더더욱 요즘에 와서는, 돈의 위력이 점점 더 커져가고 있기 때문에, 신앙에 대한 열정보다는 물질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한 편입니다. 그들에게는 어떠한 신앙적인 권면도 잘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아마, 돈보다 훨씬 더 귀중한 것을 잃어버리게 될 형편이 되어야 조금 깨닫게 되겠지요
오직 물질만이 최고라고 하는 유물론(唯物論) 사상이 중심이 되는 공산주의 국가들이 거의 다 망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말하기를,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는 쌍태아(雙胎兒)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도 곧 망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본주의(資本主義)도 공산주의와 방법만 다르지, 목적은 돈 많이 벌어 잘 사는 게 장땡이라는 사상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나라들에서는 교회마다 텅텅 비어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공산주의 국가들의 멸망이 자본주의 국가들에게는 경고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그러나 정신을 못차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사야서에 있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다시 남은 자를 불러모아 새로운 세상을 만드실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수천 명이 홍수로 죽어가는 일과, 먹을 게 없어서 날마다 몇 천 명씩 죽어가고 있는 일이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닙니다. 언제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지 모를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2.우리가 영적으로 심히 곤궁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은혜를 구할 때에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말씀은, 진정으로 넉넉한 생활을 하기 위한 조건이, 재물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여유 정도에 따라 결정지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진리는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깨닫고 확인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고로 정말 복받은 자는,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보살펴 주는 사람입니다. 잠언서 기자도 「가난한 이와 함께 밥을 나눠먹는 사람, 바라보는 그 눈길이 따뜻하기도 하다. 참으로 복받을 사람이다(잠22:9)」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는 사람은 이미 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편 41편 1절에서도 「가난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돌보아 주는 사람은 복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이들은 환난 날에 하나님께서 건져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반면에, 자기 살 궁리만 하면서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도 무자비하게 될 것이라고, 야고보서 기자는 2장 13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무자비(無慈悲)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자비를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남에게 자비를 베푼다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심판을 면해 주실 것입니다.」 잠언서 22장 8절에서도 「악의 씨를 뿌리는 사람은 재앙을 거둔다」고 했습니다. 악의 씨가 무엇이겠습니까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모른 척하고, 자신들의 쾌락만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부자가 부자된 것은 자신들의 노력도 없지 않아 있지만, 거의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들은 자기 재물을 자랑하거나 함부로 써서는 안 됩니다. 그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사용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인 것입니다. 또한 재물이 적은 사람은 스스로 가난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도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재산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것을 발견해서, 그것을 가지고 주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만일 가난하다고 해서 주의 일 하기를 회피하면, 그런 사람도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여유롭고 넉넉한 생활인지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깨달았으리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앞서 말씀드렸듯이,그것은

3.주님께 간절히 자비를 구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얼마나 빈곤한지를 깨닫고, 세상 것보다 영적인 문제에 더 관심을 갖고 열심을 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우리에게 닥친 현실적인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가 없습니다. 점점 더 날이 갈수록 우리 사회가 서구화(西歐化)되면서, 거룩한 영적 생활을 뒷받침해 주는 도덕과 윤리가 거의 다 무너져 버리게 될 것이며,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들 것이 틀림 없습니다. 이럴 경우에, 보통 믿음을 갖지 않고서는 세상적인 유혹을 물리치기가 참으로 힘들어지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빈곤을 채우기 위해서는,
①진정으로 우리를 넉넉하게 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이 곧 우리의 영을 풍요롭게 해 줍니다. 다시 말씀드리건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만 올바로 되어 있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이 됩니다. 그런고로 그 무엇보다도 우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바로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②그런데 그러한 믿음이 외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이웃에 대한 관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활을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에, 자신의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이웃과 함께 나눠 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재물이 많아야 부자가 아니라, 이웃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진정 부유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③또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참으로 명예스러운 인생을 살게 되고 은혜가 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배만 채우는 사람, 결코 명예스럽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의 즐거움만 추구하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기가 참으로 힘들 것입니다.

다시 한번 잠언 22장 1절의 말씀을 들려 드립니다. 「수 많은 재산을 긁어 모으는 것보다 명예를 얻는 것이 훨씬 소중하고, 이웃을 따뜻하게 대하고 아껴주는 것이 은과 금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
아무쪼록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주의 은혜를 더욱 사모하고 깨달으며 최후 승리의 기쁨을 맛보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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