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배의 생활화 (요 04:20-24)

첨부 1


우리는 모두 예배를 드리기 위해 정기적으로 모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보러 오는 분들도 좀 있습니다. 옛날 한국 속담에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수천 년 동안 우리는 굿하는 것을 구경했습니다. 그런 문화적인 배경 때문 에 교회에도 예배 보러 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드리는 것 입니다.

신앙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몇 가지 요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중의 세번째 요소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 신앙 생활에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번 장에서는 예배의 생 활화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배가 완전히 생활화되어서, 당연히 주일은 주님 앞에 나와 예배 를 드리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 생활에서 예배 는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교인들 중의 75-85%는 한 주일에 한 번 예배를 드립니다. 그래서 이 예배는 신앙 생활의 중심이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제가 이 교회에 와서 예배 참 여 비율이 높은 것을 보고 무척 감사하게 생각하고 좋게 생각합니 다.

예배를 드릴 때 많은 사람들이 마치 극장에 가서 연극을 보는 것 처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연극의 주인공은 대개 목사님이고, 막후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연출하시고, 모든 교인들은 예배 를 평가하는 심판자입니다. 오늘 그만하면 됐어, 오늘은 틀 렸어. 성가대가 왜 그런지 모르겠어. 이런 식으로 교인들은 그 연극을 평가합니다. 오케스트라도 심판하고 성가대도 심판하고 그 목사님 말이 빨라. 왜 기도가 길지. 왜 기도가 짧지 하면 서 설교도 심판하고…. 예배 시간 동안에 별별 심판을 다합니다.

 그러나 사실 예배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 문에 당신이 주연 배우이고, 목사님은 연출가이며, 진정한 심판자 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받으십니다.

옛날에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아벨의 예 배는 즐겁게 받으셨지만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어떤 날은 괜찮 고 어떤 날은 별로 신통하지가 않다고 느낍니다. 또 교회의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 마땅치가 않고 속이 편치 않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예배의 주연 배우는 바로 당신이라는 사실을.

 예배란 무엇인가? 구약성경에서 『예배』라는 단어는 윗사람에게 와서 존경을 표시하 며 엎드려 절한다라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상수리나무 밑에 있을 때 세 사람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데 척 보니까 그 세 사람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천사들이 주님과 함께 사람의 모습으로 갑자기 나타났음을 알아차리 고 그들에게 엎드려 절했습니다. 이렇게 엎드려서 절한 것을 보고 예배드린다, 경배한다고 합니다. 영어로 말한다면 wo rship인데, 상대에게 가치를 인정하며 존경을 표한다는 의미 입니다.

신약성경에 쓰인 예배라는 단어는 『프로스퀴네오』(prosku neo)인데, 그 뜻은 섬긴다는 것입니다. 밑에서부터 윗사람 을 섬기는 것이지요.

경배하고 섬긴다는 두 단어가 한꺼번에 나올 때도 있습니다. 그래 서 우리가 주일날 예배를 드릴 때에는 하나님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분의 위대하심을 인정합니다. 온 하나님의 자녀들이 공동체로 모여서 하나님의 아름다우심과 존귀하심을 두고 그분께 축제로 드리 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환갑 때에 잔치하는 것처럼, 일 주일 에 한 번씩 드리는 예배 역시 잔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요한복음 4장 21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 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 할」 때가 이르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배는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목사님께 예배드리러 오는 사람도 있는데, 그 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옛날에 햄릿 비쳐라는 유명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너무 나 유명한 설교가이어서 펄핏티어(pulpiteer)라고 했습 니다. 이 말은 설교를 너무도 잘하기 때문에, 하나님 없이 그 목사님의 설교만 들어도 예배가 된다는 말입니다. 4세기의 크리소 스톰이라는 목사님도 너무 설교를 잘해서 골든 마우스(gold en mouth)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그분이 설교할 때면, 마 치 극장에서 연설 듣는 것같이 설교 후에 저절로 박수가 터져나오 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비쳐 목사님이 하루는 어디에 여행을 가시고 다른 목사님이 초청되 어 오셨습니다. 초청된 목사님이 오셔서 재미가 없다고 웅성웅성대 더니 사람들이 일어서서 나갑니다. 그 목사님은 강단에 서자마자 여러분 중에 오늘 비쳐 목사님께 예배를 드리러 오신 분들은 전 부 퇴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싶은 분 만 앉아 계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과거 기독교 역사에 보면, 목사님들 가운데 설교의 귀재(鬼才)인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 목사님 가운데서도 설교하실 때의 표현 능력이 뛰어나신 분들이 있는데 저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 니까? 제가 벧엘 교회에 있을 때 한 달에 한 번씩은 다른 교회에 집회 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없는 주일은 교인들이 예배에 불참하 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회계부에서 저에게 목사님이 안 계신 주 일에는 교인들이 안 나와서 헌금이 떨어집니다라고 말하더군요.

시간이 지나면서 교인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려는 마음이 생기니까, 이제는 큰 변동 없이 모두가 나와서 하나님께 큰 축제를 드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칫하면 목사님을 보고 그 목사님에게 예배 드리듯이 예배를 드릴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조심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목사님은 보고 악 수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목사님을 보고 교회에 오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 목사님을 통해서 교 인들에게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주시지만,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그 목사님이 아니라 그 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하나님 자신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아닌 하나님과 만나서, 그분이 내 마음 속에 울려 주시는 그 음성을 듣고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뒤에 있는, 설교자 위에 계시는, 설교자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는 것이 우리 예배의 중심입니다.

 한번은 제가 시험에 들 뻔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교인들이 목사를 너무 보기 때문입니다. 벧엘 교회에 갔을 때 기도하기를 하나님 이여, 제가 이 교인들과 같이 신앙 생활을 할 때에 어떻게 하든 지 하나님을 보여 줄 수 있게 하소서. 또 예수님을 정확하게 보 여 주고 그분의 아름다우심을 잘 보여 줘서, 우리 교인들이 예수 님에게 홀딱 반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너무 좋 고 예수님이 너무 좋기 때문에, 제가 살짝 없어져도 김목사 없어 진 줄 모르게 해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런 목적으로 갔는데 ,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처음 보는 사람들을 문 밖에서 악수하면서 대하면 목사님, 제가 아무개 집사와 같은 직장에 있는데 그 집사가 어떻게나 김목사님 이야기를 많이 하는지요. 제가 계속 안 오겠다고 하니까 그러면 한 번만 와서 우리 김목사님을 보고 싫 으면 그만두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 와서 보시니까 어떻습니까?』 괜찮네요.

 어떤 때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목회자이니까 목회자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배의 중심은 목사를 만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목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 겠다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분은 성가대 때문에 오고, 어떤 분은 목사 때문에 오고, 어떤 분은 친구 때문에 오고, 어떤 분은 할 수 없이 부인에게 끌려오 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 낮이든 밤이든 수요일 저녁이든 어떤 예배이든 교회에 올 때에는 꼭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하 나님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서 와야 합니다. 집에서 나올 때부터 주님의 전(殿)에 갈 때에는 오늘은 주께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실지 기대를 하십시오.

 내가 죄에서 헤메고 있을 때,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용서의 하나님으로, 자비의 하나님으로, 긍휼의 하나님으로 나타 나십니다. 나에게 격려가 필요할 때는 능력과 힘과 용기의 하나님 으로 나타나십니다. 내 믿음이 흔들릴 때는 반석과 같이 나타나예 배의 생활화..당신은 확실히 성장하고 있습니까?십니다. 교만할 때에는 책망의 하나님으로, 마음이 어두워질 때는 빛의 하나님으로 , 마음이 더러워질 때에는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나십니다. 기 도할 때, 헌금할 때, 성가대의 찬송을 들을 때에, 설교를 들을 때에, 같이 찬양할 때에 그 속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개인적으로 나타나십니다. 어떤 때는 개인적으로, 어떤 때는 공동체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됩니다.

 지난번에 외국에서 오신 너댓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주일 저녁 예배 를 드리고 떠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들이 이 교회에 와서 예배할 때 하나님의 임재가 마음에 느껴지더라고 말입니다.

말은 잘 못 알아들었어도 얼마나 감동을 느꼈는지 모른다면서….

그날 저녁에 저도 그런 것을 느꼈습니다. 말을 못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걸 느끼고 가면서 잊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나타나셔서 우리 모두에게 그분의 모습을 보여 주시고 그분의 음성을 들려 주시고 그분의 빛을 비춰 주십 니다. 이렇게 주님을 만나고 가는 사람들은 광채가 있습니다.

당신은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갈 때 마음이 뿌듯하고 만족스럽습니 까? 오늘 잘 왔다, 오늘 참 좋았어, 오늘 참 은혜로 웠어 하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성령께서 당신의 마음 속에 나 타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드리고 가는 주일날은 얼마나 마 음이 즐거운지요.

 어떤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목사님, 저희들은 예배를 드리고 집에 갈 때마다 싸웠습니다.

그것은 참 예배를 드리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예배를 구경하러 왔거나 심판관으로 앉아서 설교를 잘하나, 못하나를 보기도 하고 이 교인들은 옷을 너무 호화롭게 입고 와라고 판단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예배를 구경하러 온 사람에게는 그런 것들이 늘 보입 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온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아름답게 입고 오는 것은 좋습니 다. 너무 호화찬란해서 모두 그 사람만 쳐다보는 정도면 곤란하지 만, 자기 나름대로 깨끗하게 정성껏 입고 오면 됩니다. 남이 어 떻게 옷을 입고 왔는지 보느라고 도무지 예배가 안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각 개인의 성격과 취향에 따라서 옷을 조금 화려하 게 입을 수도 있고 검소하게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은 개 인에게 맡기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의 예배 중심은 언제나 주님입니다. 예배 시간은 주님을 바라 보고 주님을 좋아하고 주님을 즐거워하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 을 만나고 가는 시간이어서, 예배를 마칠 때에는 우리의 얼굴에 모세가 경험했던 아름다운 주님의 광채가 나타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배를 그렇게 드려야 합니다.

 어디에서 예배를 드리는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 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 4 :21).

이것은 교회에서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가 예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공경하고 섬기는 자세로 삶을 살아갈 때, 그것이 예배입니다. 사무실에서 타자 치는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일을 할 때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듯이 신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듯 이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 다.

그러나 일 주일에 하루는 하나님을 믿는 아들 딸들이 다 모여서, 하나님께 한 음성으로 영광과 찬양과 존귀를 드리고 그분의 음성 을 듣고 그분과 만나는 것은 온당한 일입니다. 또 그것은 하나님 께서 명령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의 모든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십시오. 이럴 때 반드시 신앙이 성장할 것입니다.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가? 성경에 보면, 우리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다섯 가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전심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온 마음을 모아서 예배하여야 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를 혼란하게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평상시에 우리는 이리저리 마음을 빼앗기면서 생활하지만, 주일날 예배드리러 왔을 때는 조용 한 마음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우리의 모든 마음을 집중해서 드 려야 합니다. 찬송가를 부를 때에도 그 가사 하나하나를 마음에 새기면서 정성껏 찬양하고 헌금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표 기도 할 때에도 대표 기도 하는 분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 속에 들어 가서 당신 자신이 기도하듯이 아멘, 할렐루야 하면서 하나님께 찬 양하는 마음으로 따라 하십시오. 어떤 때는 지휘자가 지휘하는 것 만 보아도 은혜가 됩니다. 지휘자의 얼굴에서, 몸짓에서 믿는 사 람의 아름다움과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입니다. 성가대가 찬송할 때 에도 그 모습을 보고 은혜를 받습니다.

 전에 어떤 신학교의 합창단의 찬양을 듣는데, 젊은 사람들이 깨끗 한 차림으로 어깨를 펴고 얼굴에 미소를 띠고 정성을 다해서 찬양 을 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습니다.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이 세상 에서는 마약을 먹고 범죄하고 있는데, 예수 믿는 젊은이들이 너무 다른 것을 보고 한없는 은혜를 받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 는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 께 영광을 돌리고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전심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둘째로, 아름답고 거룩하게 예배드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갈 때에 아름다운 옷을 입고 갑니다. 옷도 천차 만별입니다. 반드시 부자라야 아름답게 꾸미는 것은 아닙니다. 개 인의 능력에 따라서 할 수 있습니다. 제 둘째 딸이 엄마한테 할 인할 때 물건 사는 것을 배웠다고 자랑하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비싸지 않은 옷이라도 단정한 모습으로 예배드리러 오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의 태도가 아름다워야 합니다.

 거룩하게 드리라는 것은 구별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시 간은 따로 떼어서, 그 시간만은 주님 앞에서 주님을 생각하면서 예배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얼굴만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드릴 때 웃으면 안 된다 혹은 웃지 말아라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 각하지 않습니다.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가 많이 와서 웃고 박수치며 즐겁게 노래하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시겠습 니까? 60년대의 중반에 미국에서는 히피(hippie)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는 마음을 드리는 것이니까 어떻게 예배드려도 좋다고 하 면서 어느 두 녀석이 교회에 나타났는데, 둘이가 다 벌거벗고 나 타났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그런 걸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아마 한국에서 그랬다면 야단이 났을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의 좋은 것 가운데 하나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 것에 대해서 별로 말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삼복 더위에 두터운 외투를 입고 나타나 도 말하지 않습니다.

 거룩하게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즐겁게 예배드리는 것을 막을 필요 는 없습니다. 아들과 딸들이 많이 모여서 즐겁게 예배드릴 때 아 버지가 얼마나 좋겠습니까? 찬송을 하든 기도를 하든, 같은 값이 면 즐겁게 예배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로, 감사함과 기쁨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시 100:2).

예배 시작 시간보다 조금 일찍 오셔서, 감사의 제목들을 골라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십시오. 또 찬양의 예물을 드리십시오.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부르는 찬송을 준비 찬송이라고 하는데 준비라는 말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부흥회하러 갈 때 보면, 목사님, 7시 반에 시작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8시입니다. 목사 님은 8시에 나오십시오라고 하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면 왜 7시 반이라고 하셨습니까?』라고 제가 질문하면, 교인들이 일찍 안 오니까 그렇다고 하더군요. 8시까지는 그저 준비 찬송을 하자 고 하면서 찬송가 몇 개를 부르면서 기다립니다. 그렇게 할 것이 아닙니다. 찬송을 부를 때는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준비 찬송 몇 장 하십시다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 습니다. 우리 다같이 찬송가 몇 장 하십시다라고 하면 좋지 않습니까?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데, 되도록이면 준비 라는 말은 빼도록 노력하자는 것입니다. 모든 찬송은 찬송으로 불러야지 준비로 부를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일을 일요일이라고 했다고 마음 상하는 사람 이 있습니다. 가능하면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하는 것이 좋 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느 집사님이 일요일이라고 했다고 저한테 와서 이 따위 교회가 어디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렇게까지 할 것은 없습니다. 어떤 때는 일요일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습관이 되어서 그렇게 나오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그런 소리를 들었다고 해서 이 교회에 절대 안 가라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노력하면서 성장하는 것 아닙니까?

넷째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 4:24).

신령과 진정으로(in spirit and in truth) 예배드리는 것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짐으로써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에 눈을 감습니다. 어떤 분 은 대표 기도 하면 기도 내용을 써 가지고 읽습니다. 저는 그것 을 절대로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적어서 하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와서 목사님, 글쎄 누가 기도하는데 써 가지고 읽었습 니다 하길래 『그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라고 물었던 적이 있 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써 가지 고 할 수 있느냐면서 막 화를 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도 써 가지고 할 수도 있고 그냥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 기도할 때에는 절대로 써 가지고 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시편의 많은 부분은 써 놓은 기도입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트집 잡고 화를 내고 싫어하고 하면, 그것이 더 큰 죄입니다.

 다섯째로, 예물을 가지고 나아와 예배드려야 합니다.

즉, 헌금입니다. 헌금은 봉투를 사용해서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어떤 때에는 봉투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하 되 준비된 것으로 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율법적으로 이렇게 하 면 되고 저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러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시간에 마음이 흐트러져서 좋지 않습 니다.

어떤 여성도가 헌금할 것을 준비하지 않고 왔는데 헌금 시간이 됐 습니다. 지갑을 열어서 얼마짜리를 꺼내야 좋을지 몰라서 그냥 꺼 내서 집어넣고 보니 만 원짜리였습니다. 천 원짜리를 꺼낼려고 했 는데…. 교회에 와서 손해봤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헌금은 그렇 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의 분량에 따라 미리 준비해서 주께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또 헌금을 누가 얼마를 했는지 발표해야 좋아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발표가 됐다고 화를 냅니다. 두 경우 모두 옳 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헌금은 주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그 렇기 때문에 주보에 이름이 실려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에 보니까 헌금한 내용을 기록해 놓은 때도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장막을 지을 때 예물을 드린 사람들이 무엇을 드렸는지 상세히 다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3,50 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분들이 무엇을 드렸는지 우리가 알 수 있 는 것입니다. 헌금 내용은 발표해도 좋고 안 해도 좋습니다. 그 런 것에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바친다고 하는 기본적인 태도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이 중요 합니다. 예배시에는 언제나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누가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우리 모두가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 모두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목사님 이 예배를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 각자 제사장으로서 예배드려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성심 성의껏 즐겁게 하나님 앞에 축제와 같이 예배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 때마다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며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 게 되기를 그리고 우리의 예배 태도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바 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