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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배하는 생활 (요 04: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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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할속에서 예배를 알지 못한 여인의 이야기

아주 오래 전 어떤 분이 사마리아라고 하는 동네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마을은 우리 나라와 같이 남과 북이 갈라진 동네로서 서로 미워하고 사이가 좋지 않는 마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외적의 침입을 받고 남과 북으로 갈라졌는데 북쪽 사람들이 여러 나라로 잡혀가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결혼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순수한 단일민족이 아니었기에 이 나라와 남쪽의 유다라고 하는 나라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왕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마을을 지나고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웬일인지 남쪽유다의 사람이 지나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때는 햇볕이 아주 따갑게 내리 쬐는 더운 날씨였습니다. 이 사람이 그 마을 우물 곁을 지나고 있는데 그 우물로 어떤 부인이 물을 길러 나오는 거것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는 우물이었지만 그 시간은 너무 더워 물을 길러 나오는 시간이 아니었기에 이 사람은 그 부인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부인에게로 가서 물을 좀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 여인이 보니까 자기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는 남쪽지방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상하게 생각한 이 부인은 "당신은 남쪽 유다 사람같은데 어떻게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은 다시 그 부인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무엇인지 또 너에게 물을 청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나에게 청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다시 그 부인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물이 이렇게 깊은데가 선생님께서는 두레박도 없으신데 어디서 그 샘속에 있는 물을 떠다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이 우물물은 우리 조상 야곱이 마셨고 그 자손들과 가축까지도 마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우물을 우리에게 주신 야곱보다 더 훌륭하시다는 말씀입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시 그 사람은 그 부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속에서 샘물처럼 솟아 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그 여자는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도 좀 주십시요. 그러면 다시는 목마르지도 않고 물을 길으러 여기까지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다시 그 여자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서 당신 남편을 불러오십시요" 그러자가 그 여자는 당황하면서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은 다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없다는 말은 거짓없는 말이다. 너에게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살고 있는 남자도 사실은 네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대로 말하였다"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그 사람에게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2. 주님과의 만남을 이룬 사마리아 여인

"과연 선생님은 예언자이십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은 저 산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렸는데 선생님 네들은 예배드릴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겼습니다. " 내 말을 믿어라 사람들이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에 이 산이다 또는 예루살렘이다 하고 굳이 장소를 가지지 않아도 될 때가 올 것이다. 너희는 무엇인지도 모르고 예배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예배드리는 분을 잘알고 있다. 구원은 유다인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참되게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올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은 영적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한다"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어느 특정한 곳에서만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굳이 장소를 가리지 않아도 되는 때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은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부인은 예배드리는 장소에만 가면 되는 것으로 알고 예수님께 과연 어느 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까 하고 말하면서 참 예배를 드리는 것은 특정한 장소에 가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드러나 오늘 그러한 부인에게 주님은 굳이 장소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는 때가 오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들은 예배를 받으시는 분의 마음을 잘 알고 예배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그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외경 집회서 35:1-3에는 제사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곧 많은 제물을 바치는 것이며, 계명을 지키는 것은 곧 평화의 제물을 바치는 것이다. 남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고운 밀가루 제물을 바치는 것이며, 남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은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악을 물리치는 것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며, 불의를 멀리하는 것은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예배드리는 장소나 시간이나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얼마나 의롭게 살았느냐 그렇지 못했느냐 하는 것이 예배에 중요한 것입니다. 즉 의로운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냐 그렇지 못한 예배냐하는 문제가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배를 처음 드린 사람은 가인과 아벨이었습니다. 가인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었고, 아벨은 양을 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사람은 똑같은 예배를 드렸지만 가인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가 곡식을 하나님께 가져오기까지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부족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인 또한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하는 것이 문제였고 그러한 질문을 예수님께 했던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 주님께서는 그 부인에게 지금은 바로 진리로 영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중요한 시기이다. 장소와 시간이 문제가 아니며 의식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 있느냐, 진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3. 예배하는 삶

여러분은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까 혹시 예배는 예배이고 생활은 생활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마리아 부인과 같이 오늘 우리 주님은 남편이 5명이나 되는 부인에게 지금은 그저 형식적으로 예배만 드리면 되는 시대가 아니라 신령과 진리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드려지고 그렇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금요일에 제가 누님댁에 잠시 들렀다가 우리 중학교 2학년인 조카딸이 공부하고 있는 방을 잠시 들러보았습니다. 이전부터 걸려있는 사진들을 보아왔지만 새로운 사진들이 있길래 물어보았습니다. 새봄이는 아직 서태지를 좋아하니" 그랬더니 고등학교에 다니는 언니가 아니 이젠 이휘재야. 온통 앨범에 이 휘재로 도배를 했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젊을 때에 좋아하는 사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이 여러분의 삶에 주인이 되어 마치 사마리아 여인이 삶의 주인을 찾지 못라고 남편을 5명이나 두고 있는 것과 같이 여러분 또한 그런 사람을 두고 여러분의 주인으로 삼고 "예배는 예배고 나의 생활은 생활이다"라고 말하거나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하는 것이고 나는 나의 주인으로 있을 거라고" 말하지는 않습니까 오늘 우리 주님은 남편을 5번이나 갈아치운 사마리아 여인에게 그리고 며칠이 못가서 바꿔버리는 우리의 삶에 오셔서 너희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고 말씀하십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예배할 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모든 생활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동건을 주인으로 삼았다가 손지창을 주인으로 삼았다가 차인표로 바꾸고 투투로 바꾸며 서태지를 마치 자기의 남편과 같이 따랐다가 금장 이휘재로 바꾸어버리는 마치 사마리아 여인과 같은 우리의 분리된 예배석에서 주님은 이제는 모든 생활속에서의 삶이 곧 예배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 때에만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생활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며 예배 때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하나님의 음성을 생각하고 "예배 때만 이렇게 하겠습니다."라고 결단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하나님과 함께 결단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4. 예배하는 생활

오늘 우리 주님은 남편을 5명이나 바꾸면서도 참 예배를 알지 못했던 사마리아 부인에게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은 단지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그리심산에서만 예배하기를 원치 않으시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예배하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생활이 영적으로 그리고 참되게 하나님께 예배해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만 주인이 되는 하나님이 아닌 가정에서도 주인이 되시는 주님이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며 교회에서만 말씀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제는 여러분이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하는 순간순간 응답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며 교회에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도 사랑하고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을 만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어떻게 예배해야 할지를 몰라 소극적이고 절망적인 삶을 살았던 사마리아 여인이 주님을 만나 참 예배를 알고 참 사랑을 알았던 것과 같이 날마다 주인이 바뀌며 마음들 곳을 몰라 방황하는 우리들에게 주님을 통하여 참 예배를 알고 참 삶의 주인을 만나는 중등부 친구들의 삶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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