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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 사 랑1 (고전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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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나는 사랑이라는 말들을 살펴보면 참으로 의미심장함을 느낀다.

'아하바', '아가페', '필레오'. 그 뜻은 '연인의 애정 중 여인의 애정', '자비심(박애심)', '좋아함', '그리워함', '상대방을 살림' 등이다.

 기독교에서 사랑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궁극적인 낱말이다.

 한국 개역성경에 사랑이란 말이 무려 616회나 나온다. 참으로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할만하다.

 러시아의 대작가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주제 아래 많은 우화를 썼는데 그 결론은 "사람은 항상 사랑으로 사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만약에 사람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말이 갑자기 없어져 버린다면 인생은 더 이상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삭막한 것이 되어버고 말 것이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 속에 `사랑'이라는 말은 너무 난무하는 반면에 참사랑의 가치와 의미는 점점 상실해가고 있는 느낌이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가 강조하는 것은 아무리 많은 문제가 교회와 사회 속에 있다 할 지라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참된 사랑이 있으면 그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지으신 원리이며, 또한 세상을 다스리시 는 근본 원리이기 때문이고, 인간삶의 근본 원리이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 세인트 헤레나 섬에 유배되어 외로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독백하기를 "알렉산더, 시이져, 샤를레망, 그리고 나는 왕국을 건설했다.우리는 힘의 왕국을 건설했으나 그 말로는 비참했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아무런 힘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사랑의 터위에 그의 나라를 세웠다. 오늘날 그의 나라는 왕성하여 모든 인류가 그를 경배하며, 수천의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목숨까지 바치려 하고 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참 만족을 줄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사랑은 용암과 같은 것이다. 처음에는 물과 같이 유연하게 흐르나 세월이 흐를수록 단단한 바위와 같이 견고해진다.

사랑위에 세운 왕국은 세월이 흐를수록 왕성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아보는 일은 참으로 유익한 일일 것이다.

이제 본문 말씀을 통해서 참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상고해보려고 한다.

오늘부터 앞으로 네번에 걸쳐 같은 주제로 말씀을 선포하려 하는데 오늘은 그 서론격의 말씀을 생각하려 한다.

 사랑은 가장 고귀한 것이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학문에 왕도가 없듯이 천국에 이르는 길은 오직 사랑의 길이 있을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하늘의 온갖 축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모든 것을 잃은 것이요, 아무것도 아니다.

 본문을 보면 그 당시의 고린도 교회도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서 참된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나 본다.

그래서 바울은 아무리 좋은 은사와 능력을 행할 수 있어도 그것이 사랑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큰 능력이라도, 아무리 많은 지식이 있어도 사랑을 그 속에 채우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교만으로 변질될 것이며, 결국은 하나님과 형제의 마음을 늘 아프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하면서 종종 이와 같은 일을 경험한다.

때로는 우리 자신이, 때로는 주위에 있는 다른 성도들이 그 마음 속에 사랑이 없이 선행을 행하거나 교회에 봉사하는 경우가 있음을 본다.

이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일 뿐더러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하나님과 자신을 속이는 행위일 뿐이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 는 꽹과리가 되고"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이 얼마나 좋은가 "방언"이라 함은 외국어를 비롯해서 타문화권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모든 언어이 다.

"천사의 말"은 그야말로 하늘의 사자들이 사용하는 하늘의 언어이다.

곧 지식과 학식이 풍부하고, 언변의 폭이 넓고, 인격의 수준이 높다는 말이다.

얼마나 위대하고 우러러 보이는가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사랑 없이 행할 때 그것은 도리어 시끄럽고 요란스러울 뿐 감동적이지 못하며, 그것의 효과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또 "예언하는 능",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 "몸을 불싸르게 내어주는 용기" 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 그러나 참된 사랑이 빠진 예언, 사랑의 발이 바쳐주지 못하는 불안전한 믿음, 사 랑의힘이 뒷바침 되지 못한 만용은 도리어 보는 이로 하여금 혐오감을 자아낼 뿐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가진 은사나 기능보다도 그 사람의 인격과 품성을 더 중요시하 시며, 아무리 큰 은사일지라도 사랑의 동기가 없으면 단순히 외적인 현상에 불과 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사랑은 가장 귀한 것이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신약성경 골로새서 3장 12-14절에는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했다.

사랑은 모든 것의 완성이다.

사랑은 기독교윤리의 최고봉이다.

하나님이 사랑이시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사랑의 결정체이다.

사랑의 길 보다 더 나은 길은 없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 마지막절에서는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하 면서 13장의 사랑장으로 넘어왔다.

다른 모든 은사들은 잠시 뿐이다.

방언의 특별한 은사가 지나가 버리고, 천사의 입 같은 유창한 웅변과 지식의 은 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해도 결국 그것들은 다 사라지고 만다.

최종까지 남는 것은 역사되고 베풀어진 사랑뿐이다.

사랑은 온전한 은사요, 온전한 지식이요, 그 완성인 것이다.

 여류 시인 오닐은 말하기를 "청춘은 한 때요, 아름다운 꽃이다. 그러나 사랑은 세계를 얻는 보석이다"고 했다.

로마의 시인 베르질 니우스는 "사랑은 만사를 이긴다"고 했고,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람바레네의 성자 슈바이쳐 박사는 "내 사랑의 행위가 남에 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못한다면 아직도 내 안에 있는 사랑이 너무나 적기때문이 다."고 했다.

 우리는 이 참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이 사랑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만들어 줄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도 바울께서 본문에 갖가지 경우에 맞게 사랑이 들어내 어 지는 모습들을 열거 했는데 이것은 그대로 우리에게서 재현되어야 할 하나님 의 모습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이 사랑의 말씀을, 곧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참 사랑을 실천함으로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실체가 들어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이다.

 오래전 미국의 어떤 선교사가 중국에 가서 복음을 전도하는데 때마침 이름 모를 전염병이 유행하여 수 많은 중국인들이 희생을 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선교사 는 병균을 유리병 속에 담아서 면역체를 만들기 위해서 고국으로 떠났다. 샌프란 시스코에 상륙하려 할 때에 검역소 직원들이 방역조치를 위해서 철저하게 승객들 을 조사하자 하는 수 없이 그 선교사는 병 속에 있는 병균을 자신의 입 속에 털 어넣고 그 유리병은 바닥에 떨어뜨려 버렸다. 조금 뒤에 그의 온 몸에는 열이 나 기 시작했다. 그는 급히 병원으로 달려가서 의사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내 몸은 지금 중국에서 번지고 있는 전염병에 감염되어 있으니 이 병균을 뽑아서 면역체 를 만들어서 중국에 보내어 죽어가는 그 많은 사람을 살려 주기를 바랍니다."고.

 참으로 우리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요, 그가 일찌기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온전한 사 랑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 안에서 이웃을 위해서 봉사하고 사랑을 베푸는 희 생적이고도 겸손한 신앙인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최고의 사람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아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 이다.

어떤 성도가 최고의 성도이야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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