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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잃은 양 한 마리 (마 18: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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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주님의 관심
(마18:12)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A.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겠느뇨
소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잃은 양 한 마리로 비유되어 계속됩니다. 주님의 제자들에 대한 교육은 철저하게 객관적입니다. 일반적으로 주님의 비유는 제자들에게 향해졌습니다. 많은 비유에서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의 의견을 묻습니다. 잃은 양 한 마리에 대한 주님의 질문은 곧 모든 성도를 향한 질문입니다. 근본적으로 성도의 생각은 주님의 생각과 동일해야 합니다. 주님의 관심은 성도의 관심이요 주님의 목적은 성도의 목적이어야 합니다. 제자들을 향하시는 주님의 음성은 이러한 취지에서의 물음입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사랑하는 목자의 마음이 제자들에게는 없었습니다. 제자들의 생각과 생활은 극히 일반적이었습니다.
육신적 삶에 대한 집착, 부귀 영화에 대한 욕심, 명예와 권세에 대한 관심만이 그들을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제자는 특별해야 합니다. 제자의 삶은 곧 주님의 삶이어야 하기에 더욱 안타까운 것입니다. 우리는 제자로서의 삶을 자처합니다. 그러나 많은 목자들이 음성은 있으나 마음이 없습니다. 목자의 마음은 변함없는 그리스도의 마음이어야 합니다.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라는 주님의 질문은 나 스스로에게 던져져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온전한 성도, 온전한 종이 될 수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B. 잃은 양 한 마리
목자의 관심은 모든 양을 잘 지키며 키우는 것입니다. 양이 길을 잃었다는 사실은 목자에게 있어서 큰 충격입니다. 목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양을 찾아야만 하며 그 양에게 좋은 꼴을 먹여야 합니다.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관심은 곧 주님의 관심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목자의 관심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목자로서 양에게 꼴을 먹여야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열심이 있어야만 합니다.
스승 예수와 함께 함께 동행했던 제자들은 목자로서의 수련을 쌓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목자로서의 수련은 만족할 만한 성숙이 없었습니다. 교회의 관심, 성도의 관심이 여기에 있어야 합니다. 잃은 양을 찾아 열심을 다하는 살아 있는 교회, 생명의 교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II. 주님의 희생
(마18: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A. 목자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잃은 양 한 마리는 홀로 된 존재입니다. 방황하는 존재요, 탕자와 같은 존재입니다. 목자를 떠난 양은 생활의 보장이 없습니다. 불안한 마음과 배고픔의 생활이며 언제나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만 합니다.
목자를 떠난 양은 이러한 모든 정황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합리화합니다. 더 좋은 앞날을 위한다는 착각에 빠져 방황의 늪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그러나 목자는 다릅니다. 잃은 양의 곤고함과 위험, 양에게 닥쳐올 모든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양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주님의 희생이 여기에 있습니다. 죄악으로 말미암아 방황하는 인생을 구원하여야만 하기에 목자의 음성으로 희생의 재물이 되신 것입니다. 방황의 길목에 서 있는 수많은 인생들을 향하시는 주님의 음성은 어서 돌아오라는 애타는 절규입니다. 어둠의 늪에서 헤매는 범죄한 인생이 잃은 양일진대 오늘의 교회는 참다운 목자의 음성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의 교회가 잃은 양을 외면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주님의 희생은 인생들이 범죄 했기 때문입니다. 양이 목자를 떠났듯이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기에 주님은 희생을 당하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B. 사랑에 기인합니다.
범죄한 아담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신 것은 아담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사랑하시지 않았다면 아담의 행위에 전혀 상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목자가 양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구태여 울타리를 벗어난 양을 찾아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양을 사랑하는 목자에게는 양이 갖는 재산적 가치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양을 사랑하는 열정이 양을 찾게 하는 것입니다. 잃은 양의 목자 되신 예수께서는 죄인을 찾으셨습니다. 죄악으로 물든 인생을 찾아오신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사랑의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주님의 희생의 대가는 값이 없습니다. 그 희생이 너무나도 크고 엄청나기에 값을 측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을 그리스도께 엄청난 은혜를 입고 살아갑니다. 은혜를 입는 자는 마땅히 받는 바 은혜의 대가를 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사랑에 빚진 자입니다.

III. 주님의 기쁨
(마18: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마18:14)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A. 더 기뻐하리라.
양을 찾은 목자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본문은 그 기쁨을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고 표현했습니다. 멍들고 찢겨 상처난 양을 부둥켜안은 목자의 모습은 온유함으로 넘치는 사랑 그 자체입니다. 거기에는 증오도 불신도 없습니다. 원망 받아 마땅한 탕자이지만 사랑이 어린 눈물만이 있을 뿐입니다. 주님께서 여기에 계십니다.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더럽히며 찢기며 지친 몸을 이끌고 갈 바를 몰라 방황하는 죄인에게 우리 주님은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돌아온 탕자를 맞아 주시는 아버지 같이 끌어안고 입맞추며 덩실덩실 춤을 추시는 주님이십니다. 더러운 곳을 닦아주고 새 옷을 입혀 잔치하는 사랑의 아버지가 바로 주님이십니다. 죄악의 세상 소돔 땅의 한 영혼을 아끼시는 그 하나님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 더 귀히 여기시는 주님이시기에 더 큰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B. 아버지의 뜻
잃은 양을 찾는 것이 목자의 뜻이듯, 소자가 구원받아 온전함에 이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자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시는 목자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낍니다. 한 생명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놀라운 사랑입니다. 잃은 양에 대한 끝없는 관심은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관심입니다.
편파적 사랑이 아닌 동등한 사랑, 그것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뜻입니다. 얼 손가락을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옛 말이 있습니다. 목자에게 있어서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은 중요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길 잃은 한 마리 양에 더욱 관심이 있습니다. 정상적이지 못한 자식이 측은하듯이 잃은 양은 주님께 더욱 가슴 아픈 존재입니다.
모든 성도는 동일하게 한 아버지를 섬기는 형제요 자매입니다. 내 형제를 불쌍히 여기는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주님 안에서 주께 동참하는 한 가족, 한 사랑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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