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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요일 0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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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3;8절에 "피차 사랑의 빛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빛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10절엔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고전13;13절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왜 그중에 사랑이 제일인가 믿음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가는 길이라 할 수 있고 소망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내세의 바램이다.

 그러나 사랑은 믿음과 소망의 목적이기 때문에 그 중에 제일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랑은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 자체가 되기 때문에 그 중에 제일이 되는 것이다.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살았다면 그 결과로 사랑이란 결실이 있어야 제대로 살았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1,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했다.

 세상에는 많은 이름의 종교라는 것들이 있다.

도대체 무었을 종교라고 말하는가

인간의 존재목적과 가치와 실상을 알기 위하여 조물주를 찾아감이 세상이 말하는 종교일 것이다.

 오늘 이 시간에도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신을 찾겠다고 집을 나서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절간을 찾아가고, 또 어떤 사람은 큰 바위를 찾아가고 또 어떤 사람은 강이나 바다를 찾아간다.

 이런 것들이 세상이 말하는 종교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

10절을 보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 사랑하신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이게 예수교요 기독교요 참 진리인 것이다.

 요15;16절에서도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하나님께서 먼져 우리들을 사랑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죽었다"라고 부르짖었던 니체나 사르트르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 다가 찾다가 못찾으니까 결국은 하나님은 주었다라고 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그런 사람들의 연구의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은 찾는다고 찾아지는 그런 신도 아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해 주셔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고맙지 않은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살기 이하여 무었을 했단 말인가

2,하나님이 우리를 이같이 사랑했다.

 11절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 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1절에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의 이같이란 무었을 말하나

이같이란 우리가 하나님을 찾은 것도 사랑한것도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찾아주시고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신 그 사랑을 말한다.

 9절의 말씀과 같이 독생자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말한다.

 여러분은 아들과 하나님 누구를 더 사랑할 것 같은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들을 주셨다.

롬5;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요일2;2절 "저는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롬2;25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환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우리를 사랑하셨서 독생자를 아낌 없이 십자가에 주셨던 것이다.

 이것이 이같이의 사랑인 것이다.

 3,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0절과 11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형제를 사랑해야함은 너무도 마땅한 일이다.

 또 하나님게서 이같이 독생자 주시는 사랑을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해야하는 것은 너무도 마당한 것이다.

 12절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시리라"

어느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다고 했다.

어느때라는 말 속에는 지금도 예외는 아닌 것이다.

 (No one hath beheld God at any time. =I.R.M)

그래도 하나님을 보고 싶은가 그렇게 하나님을 보고싶고 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거든 하나님께서 무어라고 말씀 하시는지 잘 들으셔야 한다.

 마25;45절에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니라"

마10;42절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은 잃지 아니 하리라 하시니라"

마10;40절은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일을 영접하는 것이니라"

여기 그 어느 구절에도 소자나 작은자가 나에게 무었을 하였기 때문이라는 단서나 조건이 없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을 해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엔 크게 네 종류의 사랑이 있다.

1,falls of love 진짜가 아닌 사랑이 있다 .

2,if of love 만약에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나도 너를 ... 네가 나를 좋아하면 나도 너를 ...

 3,because of love 어떻하기 때문에의 사랑 즉 예쁘기 때문에... 매력이 있기 때문에...

잘났기 때문에 ...

 4,in sfite of love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이 있다.

이게 하나님의 사랑이다. 아가페의 사랑이다.

 우리 모두가 해야할 사랑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이다.

 여러분은 어떤 사랑을 사랑하고 있는가

실제로 네번째인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은 우리가 하노는 싶지만 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다.

우리 이간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성질의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충만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사랑이다.

 12절을 다같이 보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우리가 작은 사랑을 서로 나눌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작은 사랑을 서로 베풀 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신다는 말씀이시다.

 하나님게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충만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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