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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 (요일 04: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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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두려움

18절 안에 <두려움>이란 말이 무려 네번이나 기록되 있다.

 <두려움>에는 참으로 종류도 많다.

먼저 세상적인 두려움이 있다.

정치적 불안으로 오는 두려움이 있다.

경제적 불황으로 야기는 두려움이 있다.

더 크게는 세계적임 두려움으로 민족분규로 인한 두려움이다.

전쟁으로 인한 두려움도 있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두려움이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나고 있다.

 작게는 가정적인 문제로 사업이 잘되어야 할텐데하는 걱정에서 오는 두려움이 있다.

혼기가 찬 자식들의 혼처문제로 오는 두려움도 있다.

입시철마다 오는 자녀들의 합격, 불합격 때문에 오는 두려움도 있다.

개인의 종말 즉 죽음의 문제로 오는 두려움도 있다.

 그 다음은 신앙적인 두려움이 있다.

개인의 종말과 역사의 종말로 인한 두려움이 있다.

17절의 말씀과 같이 마지막 심판대 앞을 지나야 하는 두려움이 있다.

 사도 요한이 사랑을 말하다가 갑자기 두려움을 말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두려움과 사랑은 깊은 연관관게를 가지고 있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주님 없는 세상은 온통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끔 느끼는 것인데 아니 자주 느기는 일인데 그건은 "내가 이렇게 신앙생활을 해 서는 않되는데 않되는데" 하면서 그냥 지나쳐 가는 문제이다.

 한 두 번 않되는데 않되는데 하면서 살아보면 뭐 그렇게 않되는 것도 아니다.

마음으로 아슬 아슬한 감정은 느꼈지만 별일 없이 잘 지내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 다.

 이젠 그 않되는데 않되는데 했던 일들이 어쩌면 면역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전에는 그렇게 않되는 문제들로 느껴졌는데 이제는 다 별일 아닌 문제들로 아무 런 감각도 없는 일들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어떤 날 아침 깊은 기도에 잠길때면 눈물의 회개가 절로 나온다.

두려움을 겁도 없이 살아왔던 겁없는 날들 겁없는 사건들이 너무나도 많다.

 여러분들에겐 두려움이 없는가 가정이나 사회생활로 인한 두려움이 없는가 신앙생활로 인한 두려움은 없는가 만약 지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고 한다면 자신있게 두려움 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는가

2,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 18절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 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느니라"

18절은 말한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말한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고 말한다.

두려움이 있는 있는 것은 온전한 사랑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마음에 두려움이 있는가 지금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있는데도 마움에 두려움이 있는가 마음을 다해서 성품을 다해서 뜻을 다해서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 는데도 마음에 두려움 같은게 있는가

우리 속에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사랑이 없다는 증거이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고 했다.

두려움을 사랑이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어린 간난 애기들이 왜 엄마의 품을 떠나기를 그렇게도 싫어하는가 거기에는 사랑이 있기 대문이다.

거기만이 두려움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

 3,형제를 사랑하자 21절에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우리가 받은 계명이 무었인가 마24장에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큰가를 물은 적이 있다.

그때 예수님게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시었다.

마22;36-40절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대 강령이니라"

그리고 요한복음13잘 3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주님은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시면서 하신 부탁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하라> 는 것이다.

 주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었나 본문4;19절에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우리보다 먼저 사랑한 먼저의 사랑이 곧 주님의 사랑이시다.

 상대방이 사랑해 오기를 기다리지 말라.

주님의 사랑은 기다림의 사랑이 아니라 먼저하는 사랑이이었다.

내가 먼저 사랑을 하자.

내가 먼저 인사를 하자.

내가 먼저 반갑게 웃음을 짖자.

내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자.

내가 먼저 사랑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주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한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이었는가 십자가에서 자신을 다 주신 희생의 사랑이었다.

 먼저 주는 사랑! 그러면서도 남김 없이 다 주신 사랑!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곧 사랑의 계명이었다.

 18절 하반절에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느니라"고 했는데 그 온전히 이루어야함도 곧 주께서 주신 사랑의 계명인 것이다.

 20절을 같이 읽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현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여기에 거짓말 하는 자가 있는데 이 거짓말은 누구에게 하는 거짓말일까

사람에게 하는 거짓말이 아니다.

형제에게 하는 거짓말도 아니다.

여기에 말하고 있는 거짓말은 하나님께 하고 있는 거짓말을 말한다.

 하나님께 거짓말을 하다니 ...

어디 거짓말 할데가 없어서 하나님께 거짓말을 한단 말인가 이 널마나 두려운 일인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형제를 사랑할지니" 라고 했다.

 하나님을 또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랑 안에 하나님 안에 거하시는 자가 되시길 바란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가 되시어 두려움을 모르고 사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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