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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열매-사랑 (요일 0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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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두고 문학박사 이희승 감수의 국어사전을 펼쳐보면 사랑이라는것이 다음과 같이 정의가 내려져 있었습니다. 1) 남녀가 서로 애뜻이 그리는 것 2) 동정하면서 친절히 대하고 너그럽게 베푸는 마음 3) 육정적이고 감각적이 아닌 동정과 긍휼과 구원과 행복의 실현을 지향하는 정념이라 고 사랑을 정의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랑이라는 정의들이 성경의 말씀과는 어떻게 연결이 되겠습니까

1) 남녀가 서로 애뜻이 그리는 사랑을 성경에서는 에로스적인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이 에로스라는 사랑은 신약성경에는 한번도 나타나지를 않고 구약성경에 두번나오는데 잠언서 7:18-19에 나타납니다.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남편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갔는데" 바로 여기서 말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에로스적인 사랑인것입니다.

2) 동정하여 친절히 대하고 너그럽게 베푸는 마음이라는 사랑을 두고 필리아의 사랑이 라고 부릅니다.

이 필리아의 사랑은 신약성서에 25번에 걸쳐서 나오는데 주로 친구간의 사랑으로 쓰여 집니다.

디도서 3:15 , "나와 함께 있는 자가 다 네게 문안하니 믿음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너도 문안하라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한 이 말씀속에 사랑이 바로 필리아 의 사랑인 것입니다.

3) 육정적이고 감각적이 아닌 동정과 긍휼과 구원과 행복의 실현을 지향하는 정념이라 는 사랑을 두고 스토르게의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스토르게의 사랑은 부모가 자식을 아끼는 것과 같은 자연적인 애정인데 롬 12;10에 나오는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라고 할때 그 우애가 바로 스토르 게의 사랑인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랑은 과연 어떤것이겠습니까 물론 우리 인간들이 이 땅위에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사랑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이기 이전에 이런 사랑은 우리속에서 우리들의 인간관계속에서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랑을 많은 경우의 사람들이 저들의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쥴리앗이 가장 고상한 사랑을 나타내는 작품이라고 평가를 내리고 , 우리 나라에서는 춘향전이 역시 가장 고상한 사랑을 다룬 작품으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런 까닭에 젊은이들이 경우에 따라서는 에로스적인 사랑때문에 목숨을 버리 고 필리아적인 사랑때문에 친구따라 강남간다는식으로 잘못된 길로 접어드는경우가 많 이 있고 부모들은 스토르게적인 사랑때문에 자식들에게 모든것을 다 걸어 버리는것입 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 과연 앞에서 다룬 3가지의 사랑이 진정 우리의 인생 전부를 걸어야 될 가치가 있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1) 에로스의 사랑 ! 가장 단명의 사랑입니다. 가장 빨리 끝이 나는 사랑입니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잡아당기는 사랑입니다. 나를 저쪽으로 주는것이 아니라 저쪽이 나 와같이 되게 하는것입니다.

에로스의 사랑은 아름다웠던것이 추해지고 강력했던 것이 연약해질때 그 사랑은 없어 지고 오히려 미움과 저주로 변해지기도 합니다.

2) 필리아의 사랑 !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더 이상의 공통분모 그러니까 같은 집단속에서의 취미나 재능이나 환경이나 기호등이 친구사이에서 없어질때 그 필리아의 사랑은 끝이 나고 단지 흘러간 옛날의 한조각 추억으로 남을 뿐인것입니다.

3) 스토르게의 사랑 ! 피와 관계가 있는 혈연의 사랑이 바로 스토르게의 사랑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 하고 어머니가 딸을 사랑하고 그래서 인간의 사랑중에서 가장 장수하는 사랑이라고 볼 수 잇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자녀들이 장성해서 결혼을 해서 부모의 곁을 떠나고 형제간에 자매간에 떨어지게 되면 은 결국은 그 사랑도 스스히 식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사랑인 에로스,필리아,스토르게의 사랑은 영원하지가 못하고 언젠가는 사라지는 사랑인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변하는 사랑에 우리 인생을 다 걸수는 없는것입니다.

우리가 전적으로 추구하고 바래야 되는 사랑은 진정 가치가 있는 사랑은 성령의 열매를 형성하는 한 요소인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그 옛날 우리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원하셨 던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모두에게 원하시는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요 21:15-17에 보면 승천하시기 전에 우리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더불어서 디베랴 바닷 가에서 조반을 드시면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속에서 우리가 알아야될 사항은 우리 예수님께서 3번에 걸쳐 네가 나를 사랑하 느냐고 물었을때 그 물음중에서 첫번째와 두번째는 아가페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느 냐는 물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물음에 베드로는 어떻게 대답합니까 그냥 필리아의 사랑을 한다고 답변을 합니다.

베드로는 과거에 자신이 예수님을 3번씩이나 부인한 그 실수와 과오를 기억하면서 도저히 완벽한 사랑인 아가페의 사랑이라는 말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예수님과 베드로의 물음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것은 우리 예수 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사랑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변해지는 세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영원히 변치않는 아가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그런 사랑을 원하셨겠습니까 우리 예수님께서 이런 사랑을 원하시면서 의도하셨던것은 과거에 주님을 배반했던 베드로를 책망하거나 꾸짖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나무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에게 주님의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주기위해 주님의 양을 치라는 임무를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3번에 걸쳐서 사랑을 요구하시고 확인하셨던것은 오직 아가페의 사랑을 가진자만이 주님의 일을 감당할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전 13:1-3에서 이 부분에 대해 밝혀주고 있습니다.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옳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아가페의 사랑만이 우리로 하여금 주의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성령 의 열매의 한 요소가 되는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사랑인 아가페의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진정 원하시는 아가페의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사랑의 장이라고 불리어지는 고전 13:4-8에서 아가페 사랑에 대해 확실하게 가르쳐주 고 있습니다. 물론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우리가 평소에 실천하지 못한 것이기에 이 시간을 통해 다시 한번 더 확인하기를 원합니다.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바로 이런 사랑에 대한 내용이 아가페 사랑의 15가지 특성인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이 15가지의 특성으로 형성되어진 사랑을 소개받는 이 순간 여러분의 심정은 어떻습니 까--아마도 그 옛날 디베랴 바닷가에서 예수님의 질문을 받고 필리아의 사랑을 한다고 힘없이 말한 베드로의 심정이 우리 모두의 심정이 아닌가 합니다.

15가지의 사랑의 특성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주여 나는 필리아의 사랑만으로 만족하옵니다 주여 나는 스토르게의 사랑만으로 족하옵니다 라고 대답할수 밖에 없는 우리들이 아닌 지요 그래서 주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아가페의 사랑을 포기하고 단념해 버리는 우리가 아닌 지요 그러나 이런 염려는 기우입니다.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우리도 아가페의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아가페의 사랑의 특성인 15가지를 실천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하나님의 말씀이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우리들에게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요일 4:7-12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보내셨음이니라 11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 이 마땅하도다 12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노력으로는 진정한 아가페의 사랑을 하지 못하지만 사랑은 하나 님께 속한 것이기에 하나님께로 난자는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부르고 있는 존경하는 고 손양원 목사님의 경우가 그렇습 니다.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좌익 청년에게 동인이 동신이 두 아들 잃은 손양원 목사님은 그 일로 열가지 감사를 하나님께 드렸고 그 감사는 오늘까지 마치 전설처럼 전해 내려 오고 있지 않습니까 손양원 목사님이 두 아들을 잃고 두 아들 동인이와 동신이의 장례식에서 답사로 감사했던 10가지 감사를 보면 나같은 못난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자가 나게 하셨으니 감사한다.

많은 성도 가운데서도 귀한 보배들을 내게 맡겼다가 데려 가시니 감사한다.

3남 3녀 중에서도 가장 똑똑하고 아름다운 장남과 차남을 하나님께 바침을 감사한 다.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한데 두 아들이 순교하게 되었으니 더욱 감사한다.

예수 믿다가 늙어서 일생을 마치는 것도 복이라고 하는데 전도하다가 순교를 했 으니 감사한다.

미국에 유학을 보내려고 준비하던 아들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으로 데려 갔으니 감사한다.

내 사랑하는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을 삼고자 하는 사랑을 주심 을 감사한다.

나의 두 아들의 순교로 무수한 사람들이 은혜받아 천국 백성 될 것이니 감사한다.

역경 중에서도 진리와 사랑을 잃지 않는 믿음을 주심을 감사한다.

주여! 나에게 분수에 넘치는 복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늘을 우르러 보고 삿대질을 하고 원망을 하고 땅을 치고 통곡을 하고 자기의 아들을 죽인 원수를 미워해야 할 그 당사자가 어떻게 이런 감사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바로 사랑이신 하나님이 그 속에 있었기에 그 사랑을 실천에 옮겼던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아이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납니다.

언젠가 루마니아가 공산국가일때 어떤 부부가 예수를 믿는다는 죄목으로 비밀경찰에 잡혀서 투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감옥에 그 부부를 잡아서 투옥시켰던 비밀경찰이 역시 그 감방에 들어왔습니다.

왜 그 비밀 경찰이 잡혀왔겠습니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젊은 부부를 잡아서 투옥시킨 그 비밀경찰에게 어느날 어떤 소녀가 꽃다발을 가지고 왔다는것입니다.왜 가지고 왔느냐고 물으니 그 소녀가 말하기를 우리 엄마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기에 이 꽃다발을 아저씨에게 가져왔다고 말했습니다.

왜 내가 네 원수냐고 물었을때 그 꼬마가 말하기를 오늘은 우리 엄마 생일인데 아저씨가 우리 엄마 아빠를 잡아갔기 때문에 엄마에게 꽃다발을 선물로 드릴수가 없어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엄마말에 순종 하기 위해 이렇게 꽃다발을 아저씨에게 드리는 겁니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그 비밀경찰은 양심의 큰 가책을 느끼고 예수를 믿게되고 자기가 잡아서 투옥시키곤했던 그 기독교인들과 마찬가지로 잡혀왔다는 것입니다.

한 어린아이를 통해 실천되어진 아가페의 사랑의 한 모습인것입니다.

누가 그 아이로 하여금 이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하게끔 했겠습니까 바로 그 아이의 마음속에 성령님이 임하셔서 그 아이로 하여금 실천하게끔 했던 것입 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그 어린아이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진 것입니다.

어떤 알콜 중독자 한 사람이 예수를 믿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평소에 그를 전도하던 사람이 "할렐루야 , 당신은 드디어 사단을 정복하셨군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 알콜중독자였던 사람이 말을 합니다.

"아닙니다,사단을 제가 정복한것이 아니라 사단을 정복한 이가 내 속에 들어와서 그가 사단을 정복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4:11-13에서 말합니다.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 니 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 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의 힘으로 노력으로 능력으로 도저히 완벽한 사랑인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속에 있기에 그 하나님이 우리 로 하여금 그 완벽한 사랑을 행할수 있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C.S.루이스 교수는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에로스에 의해 태어나고 스토르게에 의해 양육되고 필리아에 의하여 성숙하고 아가페의 사랑으로 완성된다" 옳습니다 ! 우리는 사랑함으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사랑함으로 성숙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의 시민인 동시에 천국의 시민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에로스나 필리아나 스토르게의 사랑 필요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이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런 세상적인 사랑이 우리를 완전하게 완성시켜주지를 않습니다.

오직 우리 주님께서 몸소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실천하신 아가페의 사랑만이 이런 세상적인 사랑의 토대위에서 진정한 사랑을 완성하는것입니다.

이제 이런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는 안이숙 여사의 "사랑"이라는 시 한편을 여러분에 게 소개함으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랑을 지어보았나요 하기 싫고 역정이 나고 귀찮고 지독히 싫지만 주님이 하라 하신 것을 느꼈기 때문에 사랑을 지어보았는가요 또 하세요 또 지으세요 싫어도 하고 또 하고 짓고 또 지어 보세요 그렇게도 쉬운 일이 있을까 하게 될 테니까요 왜냐구요 기뻐지니까요 그때 당신은 딴 사람이 되어요 습관이 아름답고 성품이 온유해지고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든지 존경과 칭찬으로 대접을 받을 거예요 우리의 힘과 능력과 지혜와 의지로 실천할 수 없는 아가페의 사랑 !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주님의 이름을 내 걸고 억지로라도 실천할려고 노력할때 우리의 가 삶속에서 쉽게 실천되어지고 우리는 전혀 딴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 한 주간도 여러분의 삶속에서 이런 아가페의 사랑으로 모든 세상적인 사랑과 위반되는 요소들을 물리치고 여러분의 모든 삶의 영역속에서 승리하는 한주간 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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