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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실천의 방법 (요일 03: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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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숙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기를 원 하십니다. 그러므로 (벧전2:2)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엡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하여여서는 사랑에 있어서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사랑”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계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요13:3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13:35)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15:12)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15:17)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바울 사도의 말씀도 그러합니다.

(살전4:9)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살후1:3)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베드로 사도의 말씀도 동일합니다.

(벧전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사도 요한의 말씀도 일치합니다.

(요일3:23)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요일4:7)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4: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이렇게 기독교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우리의 사랑이 서로간의 사랑이 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이 서로 사랑은 일방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이 사랑은 한 쪽만 베푸는 사랑이 아닙니다.

이 서로 사랑은 서로간에 인격적인 교감이 있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자와 사랑 받는 자가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한 쪽이 일방적으로 받는 사랑이 아니라 둘 이상이 서로 사랑을 주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서로 사랑하듯이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것도 하나님 혼자 우리를 사랑하는 것으로 그 사랑은 성립이 될 수 없읍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럴 때 은헤가 오는것이고 이럴때 진정 행복이 오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신7:8-9)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신6:5)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과 몸과 힘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럴때 진정한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자신의 몸을 버리시고 자신의 피를 흘리시도록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요14:15)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14:21)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들도 서로 사랑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단지 사랑을 받으려고만 해서는 않됩니다. 사랑을 주려고 해야 합니다. 사랑을 베풀고 사랑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가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 방법은 무엇 입니까

1.우리는 이 세상을 사랑의 시각으로(구원의 대상)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눈으로 이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구원의 복음을 통하여 세상을 멸망의 늪에서 건져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사랑하시는 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요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하나님을 배반한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와 부패가 만연한 세상입니다. 전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은 세상입니다. 멸망을 향해 가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도리어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함입니다. 멸망으로 치닫는 세상을 구원하시려 자기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지옥의 멸망을 향해 가던 우리를 구원하시려 사랑을 주셨습니다.

(요일4:9)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죄와 사망으로 가득찬 세상이지만! 이 세상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는 세상이 되게 하시려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미워하고 서로를 미워하는 세상! 바로 이런 세상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는 세상이 되게 하시려 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세상” “서로 사랑하는 세상”을 만드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세상을 사랑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이 세상의 가치관과 이 세상의 세속적인 삶을 본 받아선 않됩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일2:15)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요일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가 세상을 저주하고 비난하고 멸망 하기를 원하라는 말씀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요즈음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세상을 저주하고 세상을 향하여 악한 일을 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작년에(94년도) 지존파라는 조직의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이 사회의 가진자를 저주하고 세상을 저주하여 극단적인 행동을 한 것입니다. 온보현이란 사람도 그랬습니다. 자기 나이 만큼의 사람을 죽이려고 까지 계획했습니다. 자기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남을 죽이는 살인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닥치는 대로 자기의 차로 어린이들과 사람들을 치어 죽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세상을 저주하고 자기 삶의 비참함을 세상의 탓으로 돌리며 이런 극단적인 범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식으로 세상을 보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들이 이 세상을 타락한 세상이요 하나님의 곁을 떠난 부패한 세상이지만, 이 세상의 구원을 원합니다. 타락과 부패 부정과 온갖 죄악들이 난무하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세상을 사랑하는 눈으로 봅니다. 이것은 세상의 구원을 바라는 눈초리입니다. 사랑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멸망에서 구원을 소망하는 눈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 성의 구원을 여러차례 간구했듯이 우리도 이 세상의 구원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세상을 저주하거나 세상에 대해 악을 행치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골육 친척들의 구원의갈망과 열정은 그의 심장을 들끌케 하였읍니다.

(롬9:1)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롬9:2)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롬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하나님을 떠난 이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이웃과 이 세상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웃이 구원받기를 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다 성숙한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세상을 저주하고 도피할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우리는 세상의 구원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구원을 위해 각자의 처소에서 전도와 선한 삶을 살기에 힘써야 합니다.

 2.사랑의 실천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소유물을 가지고 이웃을 위해서 써야합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의 서로 사랑이 말로만 그쳐서는 않될 것을 말씀합니다(요3:17-18).

(요일3:17)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요일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우리는 우리의 물질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기의 것을 주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교회에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교인들은 그 장로님이 참 좋은 믿음을 가졌다고 모두가 칭찬했습니다. 매일 새벽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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