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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갈멜산을 향하여 (왕상 17: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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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후에(17절) 사르밧과부의 가정교회에 다함이 없는 기적의 음식을 날마다 즐기 면서 은혜를 충만히 나누고 있던 때에! 감사와 찬양과 감격이 있을 때에!

17절-주모의 아들이 죽게 됨/

18절-선지자에 대한 원망 (원래는 죽어야 할 목숨이지 않았는가 남아있는 음식을 한 번 해 먹고 같이 죽으려고 생각했는데,살려주고 날마다 기적의 양 식을 먹게 했는데, 갑자기 생명에 대한 애착을 가지게 되었나) 내게 온 것은 축복의 의도가 아니라,제 자식을 데려가기 위한 심판 집행을 위해서 오셨나니까

사랑하는 자식의 죽음을 가슴에 안은 이 여인의 가슴은 얼어붙어 있 었고,차라리 자신이 무덤의 깊은 고통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죽은 자는 차라리 낫지만 살아 남은 자는 살아 있던 추억을 가지고 더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죄를 생각나게 하시고' 재난이 꼭 죄 때문에만 오는 것인가 죄를 회개하는 것은 필요하지 만, 요9:2-3 씨 에스 루이스-'고통이 아주 불필요 한데도 생기는 것이라면 하나님 은 없거나 아주 나쁜 하나님이다.그러나 만약 선한 하나님이 존 재한다면 세상의 고통들은 필요한 것이다.'

엘리야 선지자/ 19절에 아들을 달라하여-1)무례하게 행치아니함/내뱉은 원망은 상당히 섭섭한 것이었다.

그동안 누구덕에 먹고 살았으며,또 엘리야가 죽인 것인가 잘되면 내탓이고,못되면 남의 탓이라더니-아마 아합왕을 꾸짖었던 실력으로 꾸짖는다면 되게 혼이 날 것입 니다.

-오직 유순한 침묵이 필요 (교회일 열심히 하고-다 알아야 할 것을 알아서 열심히 하는데 옆에서 말들이 많다. 자기 할 때도 남이 옆에 지나치게 이야기하 는 것을 싫어 한다.그래서 목사가 자기 맘에 들게 하면 무시하고 서 열심히 밀고 나가라고 하고,안들면 남의 말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고 한다.)

달라는 말은 사르밧과부의 가슴에 있는 비통한 고통을 자신이 맡겠 다는 말이다.

품에서 취하여 안고-비극의 실체를 끌어 안아 보았을 때,느끼는 슬 픔의 진폭과 충격의 밀도는 일반적으로 다르다.

 다락방으로 올라감-평소에 그 아이와 같이 놀면서 뒹굴던 다락방으 로 올라간 것임.

그리고 거기서 20절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다.-하나님께 맡기고 내어 놓음

'죄짐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엘리야가 이렇게 하나님께 맡긴 것처럼 사실은 사르밧 과부도 하나님께 맡긴 것이다.

 아들을 달라는 엘리야의 청에 아들의 시체를 준 것은 무언가 믿음이 있었지 않겠는가 다시 한 번 회상할 수 잇다. 마지막 떡을 해서 달라던 엘리야의 모 습속에서 그는 시신을 끌어 안고 있지 않고 엘리야에게 넘겨 주었 다.

 우리는 우리의 죽어 있는 문제를 우리가 더 이상 끌어 안고 있지 말 아야 한다.

더 깊은 신뢰를 통하여 하나님께 드리고 맡겨야 할 문제인 것이다.

 이 믿음과 신뢰의 양손이 교차되었을 때에 또 한 번 기적이 일어나 게 된 것이다.

 사르밧 과부처럼 죽은 시신을 끌어 안고 있으면 내 가슴도 썩고 맙 니다.

문제를 내 자신이 끌어 안고 있어야 할 소장품이 아닙니다.

설령 그것이 내 자식이라고 할 지라도 어째든 하나님께 맡기는 것 이 필요합니다.

 중보기도의 내용 20절/ 문제점-여인의 믿음이 무너질 공산이 크다.

하나님을 단순히 재앙의 신으로 생각할 수 있는 확률이 높 다.

민14:15,19

23절/보리 네 아들이 살았느니라!

우리는 보여 줄 수 잇는 것이 새생명의 능력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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