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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교를 위해 선을 행하라 (벧전 0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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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일반적인 의미의 윤리도덕적 차원의 교훈을 가르치는 종교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기독교는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출생한다고 주장하고, 따라서 구원이 필요 없는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어떤 인간도 그 어떤 인간적인 방법도 결단코 인간을 구원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구원받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역사를 좇아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받은 다음에, 비로소 내주하신 성령을 따라 행하는 기독교의 윤리도덕이 대두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윤리도덕의 절대 규범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고, 그 목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과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이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요, 복음 선교에 유익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베드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복음 선교를 위해 살아 가야 할 교인들에게,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교인이란 하나님의 긍휼을 얻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지, 자격이나 조건이 구비되어서 된 것이 아닙니다. 교인 그 자체로서는 여전히 죄성을 지닌 연약한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서 영원한 천국을 향해 가는 나그네와 행인으로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란 베드로가 교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면서, 서로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맺어진 사랑의 공동체라는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이 호칭은 대체로 교인들에게 어떤 특별한 권면이나 중요한 문제를 마음에 새기도록 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스스로 나그네요 행인임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육체의 정욕을 따라 세상 온갖 것들을 추구하는 일에 소망을 두며 살지만, 결국엔 반드시 찾아오는 죽음에 의해 그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영생의 주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나그네 인생 길에서 영원한 천국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속한 신령한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나그네요 행인으로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든 세상적 소유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될 때, 신령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19-21에 보면, 예수님이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항상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말씀은 성령님의 소욕을 좇고자 하는 교인의 영적 자아와, 죄악의 유혹을 좇고자 하는 자연적 자아 사이의 내적 대립이나 내적 싸움을 묘사한 것입니다.

신학생 하나가 학기말 시험 때 커닝을 했는데, 운이 좋았는지 들키지 않았습니다. 그 신학생이 밖에 나와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여,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하더랍니다.

갈라디아서 5:16에 보면, 바울 사도가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라고 한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의 매일 매일의 영과 육 곧 자신의 새 사람과 옛 사람의 싸움에서 항상 승리하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3. 선교를 위해 선을 행하라

믿는 사람 자신의 내적 갈등 및 내적 싸움에서의 승리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복음 선교를 위한 선행으로 직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라고 적극적인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행실을 선하게 가져'의 선은 칼렌으로서, 훌륭하고도 멋지고 매력적이며 올바르고 아름다운 것 을 뜻합니다. 바클레이는 여기에 시대를 초월하는 위대한 진리가 있다.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기독교의 광고이다. 즉, 생활에 의해서 그는 기독교를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거나, 혹은 하찮게 여기게 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선교력은 교인의 생활 자체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초대 교회 때에는, 이교도들이 교인들에 대해 악행자라고 비방하고 있었습니다.

바클레이는 이교도들이 교회를 고의로 비방한 몇 가지 실례를 들고 있습니다.

첫째, 기독교는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과 증오의 대상인 유대교 및 유대인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었으므로 비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둘째, 특별히 교인들에게만 직접 가해지는 중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 고기를 먹는 풍습을 지킨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 비난은 최후의 만찬 때, 이것은 나의 몸이다. 라고 하신 말씀과 이 잔은 새 언약의 피이다. 라고 하신 말씀에 대한 왜곡에서 생겨난 것이었습니다.

교인들은 또한 부도덕한 행위, 심지어 근친상간을 한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 비난은 교인들이 모임을 아가페 곧 사랑의 축제라고 부른 사실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이교도들은 그 명칭 때문에 교인들의 축제가 부끄러운 짓들을 행하는 육욕적인 주연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왜곡하였습니다.

또, 교인들은 생업에 지장을 준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 예로 에베소의 은장색의 고소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의 주인들의 고소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교인들은 가족 관계를 바꾼다는 비난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가족의 일부는 교인이 되고, 나머지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실제로 가정이 파괴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인들은 노예들로 하여금 주인들을 적대하게 만든다는 비난을 받았는데, 정말로 기독교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치와 존엄에 대한 새로운 의식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실제로 주인들을 적대하게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께 대하듯 주인을 대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물론, 주인들에게도 종에 대해 같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함으로써 실질적인 의미에서 주종 관계가 자연스럽게 와해될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은 사실입니다.

교인들은 인류를 미워한다는 비난을 받았는데, 정말로 그들은 마치 세상과 교회가 서로 완전히 반대되는 것인 양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교인들은 로마 황제에게 불충실하다는 비난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교인들이 황제의 신격을 부정하여 예배하지 않았고, 향을 태우지 않았으며, 또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기들의 유일하신 주라고 믿는 그들이 황제를 주라고 언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교인들에 대한 이러한 중상 또는 비방을 들으면서 세상에서 바른 평가와 판단을 기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4. 맺음말

이 세상에서 나그네요 행인으로서 사는 우리는, 우리의 신앙 생활에 대한 사람들의 왜곡과 비방과 중상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보여 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대답은, 성령님을 좇아 복음에 합당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들은 언젠가는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영을 보고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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