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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한 가정의 길 (벧전 0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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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해서 어린이를 사랑하자, 효부 룻이 받은 축복 등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아침에는 “행복한 가정의 길”에 대해서 말씀을 증거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최근 미국에서 가정치료(family therapy)라는 새로운 학문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아내는 남편을 치료해 주어야 하며, 남편은 아내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자식은 부모를 위로, 격려하고 소망을 주고 사랑함으로 서로 치료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치료해 주는 가정이 될 때에 그러한 사회는 소망이 있다고 말합니다.

가정이란 참으로 안식하는 곳이어야 하고 위로받는 곳, 상처를 싸매어 주는 곳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서로 용서하고 위해주고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혹은 학교에서, 사회에서 찢기고 상한 마음, 지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정으로 돌아왔을 때에 포근히 감싸주고, 싸매어 주고, 위로해 주어야 하는 곳이 바로 가정인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가정이 그러한 치료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리어 상처를 입혀 준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감사와 즐거움이 있는 곳이 아니라 원망과 불평만 늘어놓는 곳이 된다면 결국 가족들은 뿔뿔히 흩어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가정이 소천국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지옥으로 화한다면 그보다 끔찍한 일이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제 아무리 좋은 집과 편리한 시설이 갖추어진 집이라 할지라도 온 가족이 서로 사랑하면서 마음 놓고 안식을 누릴 곳이 못된다고 하면 참다운 가정이라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화려하지 않은 집과 넉넉한 살림이 아니더라도 서로 사랑하면서 마음의 안식처가 된다고 하면 그러한 가정은 가정 천국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잠언 17장 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肉饍)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잠언 15장 16, 17절에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정을 돌보지 아니하고 직장에 매여 살다가 주일에도 등산이나 하고, 낚시나 하러 다니고, 골프나 즐긴다고 하면 그런 가정을 천국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집에서 사는 가족들은 어디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료받을 수 있겠습니까 주일은 온 가족이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은혜를 받은 다음에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과 함께 나머지 시간에 피차 대화를 나누며, 서로 위로하고, 상처를 싸매어 주고, 격려하며, 소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며, 사랑을 나누어 주는 복된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일 예배 후 집에 돌아가서 가족과 함께 지내라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면합니다. 가족과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하루를 보내야 치료받을 수 있고 가족의 상처를 치료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에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라고 하였는데 지금이 말세여서 사람마다 고통을 부둥켜 안고 몸부림 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꿈을 잃고 물 위에 떠있는 부평초처럼 환경에 떠밀려 다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하셨는데, 젊은이들이 꿈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오렌지족이 되고, 강도, 절도짓을 해서 유흥비를 마련하여 오늘 먹고 마시며, 내일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사고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게서 내일이 사라진다면 죽은 송장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오렌지족, 떼 강도들, 유흥장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내일을 상실해 버린 죽은 송장들과 같은 인간들임에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네 꿈대로 되리라”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꿈대로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자 되기를 꿈꾸는 사람은 부자가 되려고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에 결국은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학자가 되려고 꿈을 꾸는 사람은 학자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기 때문에 결국은 학자가 되는 것입니다.
참다운 인간이 되고 참다운 성도가 되려는 꿈을 안고 사는 사람은 열심히 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기 때문에 참다운 인간이 되고 참다운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꿈을 상실해 버리고 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동물처럼 아무렇게나 먹고 마시고, 시집, 장가 가고 땅에서 쾌락을 누리는 것으로 비참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인생에게 누가 꿈을 안겨줄 수 있겠습니까 꿈을 갖게 해주실 분은 예수님 밖에 없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에게 참다운 꿈을 갖게 해주십니다.
교회와 가정은 모든 상처입은 심령들을 치료해 주며, 싸매어 줄 수 있는 곳입니다. 꿈을 잃어버린 인생들에게 참된 꿈을 갖게 해주는 곳이 교회인 것입니다. 현대인 가운데는 초조와 불안감, 소외감 등으로 상처 투성이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그러한 상처 투성이의 모든 심리적인 병들을 고침받을 줄로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상처 투성이가 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가정에서 이렇게 상처 투성이가 된 남편과 아내, 자식들을 치료해 주어야 합니다. 이 역할을 감당할 수 있어야 참다운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이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부부간에 서로 싸움이나 하고 자녀들을 괴롭히는 가정이나 된다고 하면 그 상처입은 심령이 어디에서 위로를 받겠으며, 어디가서 그 마음의 상처를 치료받을 수 있겠습니까 남편의 스트레쓰, 아내의 정신적 고통을 가정이 해결사가 되어주지 못한다면 가정은 황량한 사막과 같은 곳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은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 주는 치료의 가정이 되시기를 바라고 임마누엘의 은총이 늘 함께 하는 가정이 되기를 바라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감싸주는 행복한 가정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행복에의 지름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고넬료의 가정은 온 가족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행복한 가정이 되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가정도 온 가족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행복한 가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가득차야 사단 마귀가 엿보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가득찬 가정이 된다면 가정이 천국으로 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없이 형식적인 믿음만 갖고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 그런 사람의 심령 속에 사단 마귀가 틈을 타서 그 사람의 마음을 정복하여 지옥의 자식이 되게 하고, 지옥의 가정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가정은 성령충만 받아 귀신이 엿보지 못하고 귀신이 틈타지 못하는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나라의 비극은 우상과 귀신들이 많다는 데에 기인합니다. 거리마다, 산마다, 각종 예술 분야마다, 매스컴 등의 각 분야에 우상 숭배 사상과 귀신이 우글대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복받는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온통 우상 숭배자와 귀신의 세력들을 성령의 권능으로 불태워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가정, 민족이 될 때에 이 민족이 복받는 민족,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민족이 될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가정이 될 때에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본문 1절에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되 아내는 남편에게 순복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5절에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므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주안에서 순복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 일에 반대가 되는 일에 순종하라는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옵니까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설사 남편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아내의 순종하는 행위를 통해서 남편이 회개하고 예수 믿고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3절에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라 말씀하였습니다. 외모를 단장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속사람을 단장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속사람을 어떻게 단장하겠습니까 2절에 정결함으로 단장하라고 했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믿음으로 단장하라고 하였습니다. 4절과 5절에 온유함과 안정된 심령으로 단장하라고 하였습니다. 안정된 심령(peaceful spirit), 평화로운 정신, 화목하는 정신으로 단장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단장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라 하였고, 가치있는 일이라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올바른 가치관을 가져야 하며,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물질이 최고가 아니라 영적인 가치가 최고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속사람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 온유한 성품으로, 안정된 심령으로 우리의 속사람을 단장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또한 남편이 해야할 의무에 대해 본문 7절에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한 것 처럼 부부는 항상 같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만 고린도전서 7장 5절에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만 분방을 허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가 별거한다거나 따로 떨어져 사는 것은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필하고“빨리 집으로 돌아가시오”라고 하는 이유는 집에 빨리 돌아가서 가족과 대화를 나누고 나머지 시간을 보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주일마저 가족을 떠나서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각자 행동을 한다면 그런 가정에서 어떻게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 줄 수 있겠습니까
본문 7절에 아내는 연약한 그릇이므로 귀하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신체적으로도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내를 귀히 여긴다는 말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그것은 마음을 평안하게 해준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내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아니하고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 아내를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아내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무자비한 말이나 과격한 행동을 삼가해야 합니다. 아내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잔인한 말이나 난폭한 행동을 삼가하고 항상 온유하고 인자한 언행을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내를 귀히 여겨야 너의 기도가 막히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아내에게 포학하고 잔인한 언행을 취하면 기도의 문이 열리지 아니하고, 그 하는 기도가 하늘 보좌에 상달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아내를 귀히 여기고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혀 쓰기를 조심하여 화평을 좇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10절로 11절에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루를 말조심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생을 두고 조심해야 하며, 가정에서도 매사에 화평을 좇으라고 권면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가정에서 좋은 날 보기를 원하고 행복하게 되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혀 쓰기를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집안에서 보는 대로, 아는 대로 직언을 하면 그 집안은 행복 해질 수가 없고 싸움이 그칠 날이 없는 것입니다. 흔히 “나는 바른 말 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여 보는 대로, 아는 대로, 큰 소리로 책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자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 21장 9절과 19절에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씀했는데 이는 아내에게 국한된 말씀 만이 아니라 남편이나 모든 가정에 포함된 것입니다. 다투며 성내는 남편이나 아내하고 같이 사는 것보다 차라리 광야에 나가서 움막을 짓고 혼자 사는 것이 낫다고 하였습니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교회에서도 성도 상호간에도 항상 말을 조심해야 하며 상처입히는 말을 하지 않나 조심해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은 간단합니다. 여러분 모두의 가정이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무장할 때에 귀신이 틈타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 귀하게 여기며 동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서로 간에 동거하라는 말씀은 서로 떨어져서 지내면 마귀가 틈타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 정절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 일이며, 아내는 남편에게 순복하고 혀를 금하여 항상 좋은 말, 은혜로운 말을 할 때에 서로 사랑하므로 상처를 싸매어 주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아 줄 때에 그런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행복한 가정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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