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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말을 사는 그리스도인(성도)의 삶 (벧전 0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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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이땅에 초림 하시면서 부터 '말세'는 시작 되었습니다.(막1:1 5)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승천을 경험 하면서 제자들은 재림의 임 박을 가르치며, 외쳤습니다. 본문도 그와같은 가르침의 일부분입니다.

그런데 이와같이 재림의 임박함을 외쳤지만 20세기 말을 살고있는 우리들 에게 이르기 까지 여전히 말세입니다. 일생이 겨우 7-80년을 가진 사람으 로서는 하나님의 계획을 능히 짐작 못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더디 오시지 않는 것을 볼때에 재림은 아직 멀었는 지도 모른다는 자위 가운데 많은 성도들이 느슨한 신앙태도를 적당히 즐기곤 합니다. 사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간 뒤에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 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동시 에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가기 전에 주님의 재림을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생시에 주님의 재림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 야하고, 우리가 생시에 주님의 재림이 아직은 없을 것이기에 좀 느슨하게 신앙생활을 해도 괜챦다는 생각은 인간이란 존재의 유한성을 망각한 편의 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느 모로보나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할 존재입니다. 주님의 재림 이 실재로 임박 하였다면 당연히 근신하여 준비해야 합니다. 또한, 주님의 재림이 내 생애에 없다고 하더라도 나의 생명의 연한이 얼마 남지 않았으 므로 역시 시간놀음에 한가로이 느슨해질 수 없는 처지입니다. 결국, 우리 는 재림과 죽음 이라는 정확하게 알수 없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있는 것입 니다. 우리에게 재림이 먼저 닥칠지 죽음이 먼저 닥칠지 정확하게 알수 있 는 이는 없습니다. 둘다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영원토록 후회하고 마는 중 대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준비하는 삶이나, 재림을 준비하는 삶 은 둘다 알수없는 시한부 인생을 준비한다는 의미에서 같습니다. 재림준비 를 잘하면 죽음 준비를 잘하는 것이고, 죽음준비를 잘하면 재림 준비를 잘 하는 성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의 종말인 그리스도의 재림과 개인 역사의 종말인 죽음을 성도 들은 똑같이 준비하면서 살아야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어떻게하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종말을 잘 준비할 수 있는 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마지막을 생각하며 정신차려 준비해야 합니다.(7절)

7절에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라는 말은 첫째로, 분별력을 가지라 는 말입니다. 말세가 다가오면 여러가지 사건들이 일어나 우리의 혼란 시키고 마침내 판단력 마저 흐리게 할수 있기 때문에 정신차려서 분별하라는 것입 니다. 말세에는 난리와 난리가 이어서 터지고 기형적인 사건이 꼬리를 물 고 나타나 사람들의 마음을 동요시켜 놓고 더욱이 이와 때를 같이하여 사 람들의 마음을 미혹하는 유사한 거짓가르침이 독버섯처럼 번져나가 신실한 성도들 마저 거짓된 가르침에 유혹되는 위험에 빠질수 있는 것입니다. 실 제로 데살로니가 교회에서는 이와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거짓 교사들이 일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주장하자 사람들은 곧 그 말에 마음의 동요를 일으켜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거짓교사들의 교훈에 놀아났습 니다. 그래서 바울이 급히 써서 보낸 서신이 바로 데살로니가 후서입니다.

살후2:1-3에 보면 이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 받았다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 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라고 말합 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하고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다고 해서 흥분하여 분별력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이때에 사탄은 더욱 기승을 부려 바른 판단을 흐리게 만들어 거짓교훈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것은 맑은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초대교회에 나타났던 거짓 교사들은 곧 주의 재림이 가까왔으니 망할 세상일에 힘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가르쳐 일부 어리석은 성도 들을 현실 도피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살전4:11,살후3:10-12) 오늘날의 이단들 중에서도 이와 비슷한 가르침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병들 게하여 직장 일과 집안 일을 재쳐놓게 만들고 금품 물질까지 갈취하고 습 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세에 주의 재림을 일손을 놓고 기다릴 것이 아니라 땀을 흘리며 충성스럽게 일하면서 기디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24:45-46절에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때에 그 종이 이렇 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2.마지막을 생각하며 근신하여 기도해야 합니다.(7절)

말세를 사는 성도의 두번째 해야 할 일은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게 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때, 피곤에 못이겨 졸고 있는 제자들에게 "시험 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26:41)라 고 하였습니다.

사실, 어떻게 살아야 바르게 사는 것인지, 또 말세에 어떻게 살아야 하 는 지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성도들이 쉽게 혼란을 일으키고 마침내 유혹에 넘어가고 마는것은 인간이라는 한계 때문입니다.

인간의 모든 판단력과 활동은 육체의 건강에 의해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 래서 아무리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육체가 병들거나 피곤하 면 판단에 그르치는 경우가 생기고 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알지만 힘이 닿지 않아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항상 이 문제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비결은 하나 님의 은혜와 능력 뿐입니다. 건강이 있을 때에 많이 기도해 두어야합니다 오직,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힘입어 인간적인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에 항상 붙들려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 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문제들이 인간의 힘만 으로는 감당하기에 어려운 것이 너무도 많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미리미리 이에 대비 할 수 있도 록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으며, 항상 기도하라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3.마지막을 생각하며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8절)

본문 8절에; "무었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더한 죄를 덮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잠10:12절을 인용한 말씀으로서 용서 에 관한 교훈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란 말씀은 사죄와 용 서의 대원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 십니다. 마찬가지로 이웃이 우리에게 용서를 빌때에 우리도 이웃의 잘못을 용서해야 합니다. 마18:22절에 예수님께서는 용서에 관하여 말씀하시기를; "일곱번 뿐 아 니라 일흔 번씩 일곱번 이라도 할지니라"하셨고, 주기도문 에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만일 우리가 이웃 의 죄를 용서치 않을때, 하나님께서도 절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아니 하실 것임을 명백히 가르쳤습니다. 마18:35절에 이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같이 하시리라" 말세에 성도들이 가장 두려워 해야 할 것은 환란이나 기근이나 재난이 아 닙니다. 우리가 두려워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세상의 환란은 기껏해야 인간 생명을 위협하는 정도이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영원한 죽음 을 가져오고 마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본문에서 사랑할 것을 가르치면서 "무었보다도"라고 강조 했습니다. 이것은 사랑이 모든 예배와 감사 예물과 봉사 보다도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4.마지막을 바라보며 섬기고 봉사해야 합니다.(9-10절)

9절에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고"하였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 이지만 초대교회 당시에는 남을 대접하는 일을 큰 덕목 중의 하나로 여겼 습니다. 당시 교통시설이 불편하고 숙박시설도 미비하였기 때문에 남을 대 접하는 일은 미덕의 차원을 넘어서 인간의 기본적 도리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를 여행 할 시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대덥을 받았 으며(고전16:19), 또 부유한 자들은 자신의 숙소를 집회 장소로 제공하기 도 하였습니다.(딤전3:2딛1:8) 주님께서도 정성을 다하여 대접하고 섬기는 자들을 칭찬 하셨습니다.(눅7:44-47) 그런데 여기서 대접할 때에 두가지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첫째는, '서 로' 대접하는 것입니다. 만일 남으로 부터 대접을 받기만 하고 베풀지 않 는다면 이러한 아름다운 행위는 오래가지 않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성 경은 대접하고 섬김을 받는 자 보다 대접하고 섬기는 자를 칭찬합니다. 뿐 만 아니라 이웃을 대접하는 자가 하나님으로 부터 축복을 받습니다. 히13:1절에 "손님 대접 하기를 잊지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 이 있었느니라" 또한, 둘째로 기억해야 할 것은 "원망 없이" 대접해야 합 니다. 이 말은 남을 대접하되 아까운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즉, 남을 돕되 후하게 베풀어라는 것입니다. 인색함으로 하는 대접은 결국 외식이요, 위선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도 바리새인을 꾸짖으면서 그들은 사람들에게 영광을 얻기 위해 선을 베푼다고 하였습니 다. 마지못해 하는 구제, 남에게 보이기 위하여 하는 대접은 하나님 앞에 서 가증한 것입니다.

 5.마지막을 생각하며 겸손하게 봉사해야 합니다.(10-11절) 1)받은 은사대로 봉사해야 합니다.(10절)

우리에게 남은 인생의 날수는 우리에게 주어진 봉사의 기회입니다. 이 봉사에는 두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로, 은사를 받은대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 게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섬기는 재능 을 받은 자는 섬기는 일로, 다스리는 재능을 받은 자는 부지런 함으로, 긍 휼을 베풀 은사를 받은 자는 즐거움으로 하라고 가르칩니다(롬12:6-8) 둘째로, 봉사할 때,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해야 합니다. 청지기는 집의 모든 살림을 책임지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주를 위해 봉사하는 자는 청지 기가 자기 집의 모든 일을 책임지고 하듯이 성도는 형제에게, 이웃에게,교 회에, 이 사회에 봉사해야 합니다.

 2)겸손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11절)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에게 가장 위험한 사탄의 함정과 덫이 있다면 그 것은 바로 교만입니다. 신앙 생활을 오래하고 많은 직분으로 충성하는 자 일수록 겸손에 붙들려 있어야 합니다. 교만은 자기의 신앙을 자부 할 때에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교회 안에서 말 하는 자나 봉사 하는 자에 대하여 그 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을 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 며, 봉사하는 자는 자신의 능력과 힘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자세 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일하는 것 같이 보이게 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을 대하듯 겸손한 자세로, 그리고 두렵고 떨리는 자세로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때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 는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결론>

오늘도 하루의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말 씀하시는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남은 종말의 때를 허송하지 말고 유익하고 가치있게 사용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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