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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더하는 은혜 (고후 04: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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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셈과 뺄셈의 법칙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시장에 가서 물을 살 때에 덤으로 더 주거나 가격을 할인하여 주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나 중계에 체중을 달아서 체중이 불었을 때에는 근심과 걱정이 되어 다이어트를 하고 살을 빼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것은 모두가 덧셈과 뺄셈의 원칙을 알아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가감의 원칙을 잘 알아서 유익한 일을 행하고 손해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더해야 할 일은 행하지 않고, 해서는 안될 일을 하므로 엄청난 손해를 입는 경우가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성도들이 더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입니다. 그러나 날마다 덜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죄악과 저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날마다 더해야 하겠지만 죄악과 저주는 날마다 감소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아침에는 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러면 날마다 더해져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슬픔과 고통이 더해져서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슬픔과 고통은 날마다 줄어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45장 3절에 ‘네가 일찍 말하기를 슬프다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셨으니 나는 나의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치 못하다 하도다 하셨고’라는 말씀이 있는데 고통에다 슬픔을 더했으니 참으로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통과 탄식으로 피곤하며 평안치 못하다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고난의 떡을 먹으며 고난의 잔을 마시는 것이 괴로웠지만 그것보다 조국이 멸망할 것을 생각해 보니 견디기 어려워서 슬펐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고통과 슬픔은 날마다 감소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비극과 재난은 날마다 감소되어야 합니다.
이사야 15장 9절에 ‘디몬 물에는 피가 가득함이로다 그럴지라도 내가 디몬에 재앙을 더 내리되 모압에 도피한 자와 그 땅의 남은 자에게 사자를 보내리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는 모압 족속에게 임할 심판을 예고한 말씀입니다. 모압이라는 나라가 황폐해질 때에 간신히 디몬이라는 곳으로 피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간신히 도피를 했는데 그들에게 사자가 나타나서 그들을 찢으리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비참한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셋째로, 기근이 더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에스겔 5장 16절에 ‘내가 멸망케 하는 기근의 독한 살로 너희를 멸하러 보내되 기근을 더하여 너희의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것이라’고 하는 예언의 말씀이 있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모든 미운 것과 모든 가증한 일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혔으므로 그 땅에 온역과 기근과 칼의 재앙이 내릴 것이라고 하는 예언의 말씀으로 “내가 너희에게 기근을 더하여 너희의 의뢰하는 양식을 끊으리라”고 하는 경고의 말씀인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일제 말기나 6 25사변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일제 말엽에 식량이 모자랐고, 1944년에는 극심한 흉년이 들어서 식량이 부족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밭에서 얼어붙은 배추 뿌리와 무를 캐서 먹기도 하고, 나무 껍질을 벗겨 먹기도 하고, 솔잎을 따서 먹기도 하고, 개구리를 잡아 먹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기셔서 8 15해방을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감사할 줄 모르고 오히려 사치와 낭비를 일삼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죄를 범한 민족에게 또 다시 6 25사변이라는 무서운 재앙이 더해져서 쓰라린 아픔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이때 교회는 우리나라 교회와 우리 민족이 범한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휴전이 성립되도록 하셨고, 그후 우리 민족은 각성하여 파괴된 도시를 건설하고 피폐된 경제를 재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953년 7월 스웨덴의 학자가 한국에 와서 한국을 보고 하는 말이 “한국은 너무나도 파괴되었으므로 설사 21세기가 다가온다 하더라도 복구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토록 우리나라가 완전히 파괴되고 비참한 자리에 나가게 되었지만 우리 국민들이 각성하여 열심히 경제를 재건하게 되었고, 또 나라를 위해서 힘써 일한 결과 우리나라는 현재 잘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GNP가 세계 14위에, 철강 생산은 세계 6위, 미국과의 교역량은 일곱번째가 될 정도로 잘사는 나라가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만큼 살게 되어지자 이 민족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육체의 종이 되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시편 50편 22절의 말씀이 응하지 않겠나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더해서는 안될 것을 없애는 비결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 에스라 시대에 백성들이 범죄함을 더하므로 재앙이 임했습니다. 그 때에 에스라가 백성을 광장에 불러 모으고 죄를 회개하며 자복하게 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범한 죄를 자복했는데, 때마침 많은 비가 내렸는데도 백성들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아니하고 자신들이 범한 죄를 회개하며 울부짖었습니다.

죄를 범한 백성들 가운데는 심지어 이방 여자를 아내로 취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에스라 선지자가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를 아내로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다”고 외쳤습니다. 이 말씀에 찔림을 받은 백성들이 가슴을 치며 통회 자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방 여인들을 다 쫓아내 버렸습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회개하는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 땅을 치료해 주시고, 그 땅에 크신 긍휼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 풍성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죄를 범하였을 때에는 공의의 하나님께서 징계를 내리시지만 그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 죄를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결코 우리에게 고통과 슬픔이 더해져도 아니되겠고, 기근과 재앙이 더해져도 아니되겠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더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범한 모든 죄를 자복하고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크신 긍휼을 베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더해져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날마다 기쁨이 더해져야 하겠습니다.
이사야 9장 3절에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昌盛)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 하오니’라는 말씀이 있는데 ‘추수하는 즐거움(joy in harvest)’이란 농부들이 이른 봄부터 땅을 일구고 씨앗을 심고 비료를 주고 해충을 잡아주고 김을 매느라고 얼마나 고생과 수고를 하겠습니까 그러나 가을에 누렇게 익은 곡식을 거두느라면 그동안 고생했던 것은 다 잊어버리고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또한 ‘탈취물을 나누는 즐거움’은 군인이 싸움터에 나아가 적과 싸울 때에 목숨을 내대고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게 되는데 승리를 거두게 되면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탈취물을 나누는 기쁨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구원받은 다음 주님의 몸된 교회를 받들어 충성하게 되면 수고한 만큼 땀과 눈물을 많이 흘리게 되어집니다. 이 눈물과 땀이 참으로 보람된 것이고 긍지를 갖게 하며 장차 주님께로 부터 칭찬과 상을 받게 되어 농부가 추수할 때 보다 더 큰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죄악과 정욕과 마귀와 더불어 싸워 승리하기 위하여 눈물흘려 기도하는데 승리하면 그 기쁨은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기쁨보다 더한 것인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세상의 악한 것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들과 싸워서 승리하였을 때에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쁜 것입니다. 여러분의 심령 속에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이 차고 넘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날마다의 삶 속에서 이러한 추수하는 기쁨, 탈취물을 나누는 때 보다 더 큰 기쁨이 우리의 심령 속에 충만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평강이 더해져야 합니다.
우리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이 늘 우리의 가슴 속에 차고 넘쳐서 늘 평강이 충만해야 되겠습니다. 이사야 9장 7절 상반절에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라는 말씀이 있는데, 평강이 날마다 더해지고 무궁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시고, 주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는 평화로운 나라이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다시리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평화로운 방법으로 세상을 다스리시고 심령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주변국가들의 위협으로 시시때때로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이 없고, 고통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갈망해왔습니다. 그 평화의 시대가 메시야의 도래로 성취되리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 중의 하나가 인생들에게 평강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베들레헴 말구유에 탄생하셨을 때에 천군천사가 말하기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하였습니다. 성도들에게는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이 날마다 더해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6절에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때마다 일마다 우리에게 평강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때마다’는 헬라어로 디아 판토스(δια παντο)인데 “계속적으로”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이 계속 유지되고 단절됨이 없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일마다’는 헬라어로 엔 판티 트로포(εν παντι τροπω )인데 “모든 면에서”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의 평강이 계속 임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외부의 상황과 조건이 어떻게 변할지라도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평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어떤 고통스러운 일이 다가오더라도, 어떤 시련과 환난이 다가오더라도 그리스도의 평강이 여러분 심령 속에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감방에 갇혀 있는 신세였지만 기뻐 찬송했을 때에 평강이 넘쳤고,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풍랑만난 배에서도 평안이 주무실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심령 속에 이러한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셋째로, 감사가 날마다 더해져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해 갈수록 감사가 더해야 하겠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가 넘쳐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감사하는 마음이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길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너무도 많은 시련과 환난과 고난을 경험하였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감사가 넘쳤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역경 중에 감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은혜받아야 비로소 역경 중에서도 감사할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을 한 바울이었기에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많은 권면의 말씀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감사가 넘치므로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를 바랍니다. 이 아침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심령 속에 감사하는 마음이 차고 넘치게 되어지기를 바라고, 원망, 불평하는 마음 다 사라져 버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이 차고 넘쳐서 감사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어지기를 축원드립니다.

넷째로, 의의 열매, 성령의 열매가 더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1절과 23절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아름다운 열매들이 여러분의 심령 속에 맺어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복음을 외치실 때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이미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도래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에 이미 여러분의 심령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심령 속에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를 날마다 완성해 나가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성령충만 받아서 인간성을 회복하고 성령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완성해 가도록 도와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 받아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는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는 요소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육체의 정욕(소욕)입니다. 육체의 소욕이 우리 심령 속에 임한 하나님 나라를 이룩하지 못하도록 힘을 다해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체의 소욕을 물리치기 위해서 부단히 기도하고 육체의 소욕을 정복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9장 10절에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라는 말씀이 있는데, 우리 하나님은 의의 씨앗을 심고자 하는 자에게 심을 씨앗을 주시며, 심은 씨앗으로 풍성한 열매가 맺어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 속에 더해져서는 안될 것들은 제하여 버리시고 날마다 더해져야 할 것들만 여러분의 심령 속에 가득차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날마다 깨어 기도해야 되고, 날마다 성령충만하므로 육체의 소욕과 탐욕을 정복할 때에 우리의 심령 속에 임한 하나님 나라가 계속 확장되어지고 완성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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