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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도자 윤리 (빌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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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윤리'라는 문제를 앞에 놓고 생각이 많다. 먼저는 지도자 의 지위에서 물러난 사람에게 왜 하필 지도자의 윤리란 문제를 주었을 까 다음에는 어떤 지도자를 말하는 것인가, 세째는 지도자의 윤리' 라!

지도자! '가리키어 이끌어 주는 사람' 을 지도자라 하다면 세상에는 지도를 받는 사람보다 지도하는 사람의 수효가 월등히 많은 것이다.

어린 아이는 몰라도 아이 때만 지나면 다 남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

때로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비극도 연출 될 것이나 세상에 지도자 가 훨씬 많은 것만은 틀림없는 것이다. 지도자란 우리 교회의 교역자 는 물론 평신도 지도자들까지 포함된 것으로 생각하고 문제를 다뤄보 기로 한다.

 지도자의 윤리란, '윤리'라는 우아하고 고상한 말중의 하나이다.윤리 나 도덕이나 같은 뜻의 말이나 윤리라면 학구적이요, 형이상학적인인 느낌을 주는 것같고 도덕이라면 실제적이요, 형이상학적인 느낌을 주 는 것같다. 이것은 나의 그릇된 느낌인지도 모른다. 아무 선생이게서 도 그런 구별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윤리란 "인간의 도의'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사전은 가르친다.그래서 윤리란 말은 도덕과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한해서 쓰여지는 것이다. 영 어로는 '에딕스'라 하는데 그 말은 희랍어의 '에에도스' 곧 성격이란 말에서 왔다 한다. 같은 뜻의 에도서 사람들이 보통하는 행동,짓,습관 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도덕'이란 말을 영어로는 '모랄스'라 하는데 그말 은 라틴어의 '모레스'곧 습관,습성,성격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보면 윤리나 도덕이란 말들의 영어 어원은 비슷하다.

 품행이란 말과 성격이란 말은 비록 서로 같지 않으나 그러나 한가지 사실의 다른 국면을 가리키는 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이는 품 행, 성격 두말은 인간의 도덕 생활의 두 기둥이라 불렀다. 품행은 성 격을 표시하는 것인 동시에 그 성격을 형성하는 길이리도 하다. 사람 의 성격은 그 의지인 습관, 곧 사람의 욕망과 활동이 의식적으로 조직 화된 한 체계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윤리와 도덕이란 말은 사람의 행동 '품행'과 성격' 품행', 곧 사람의 행위와 그 위인을 가리키는 말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말 하는 윤리는 기독교의 윤리, 곧 예수께서 친히 보여주신 생활방도를 우리가 날마다 해나가는 개인, 또는 사회 생활에 적용할 것을 뜻하는 것이다.

 우리 교회의 지도자들도 어떤 윤리 사상을 가지고 어떤 윤리생활을 하여야 할 것을 모르는 지도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4.19혁명을 지내고 제2의 공화국 건설 도중에 있는 이 나라 종교계의 지도자들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임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몇가지 적어본다.

 1. 독재자의 낙인을 찍히지 말라.

독재자들은 지혜로운 듯하면서도 미련한 독선주의자들이다. 이 일은 내가 아니면 안된다. 이 일은 나보다 더 잘할 사람은 없다.그러니까 이 일은 꼭 내가 해야만 된다는 따위의 미련한 독선 사상에 사로 잡 혀 안하무인의 태도로 일에 임하는 것이다. 일에 다 틀린 다음에는 학 생 아니라 그 누가 눈을 트게 주었다 하더라도 회복될 길은 없는 것이 다. 독재자도 나쁘려니와 그 소위 '인의 장막'을 치고 사욕을 채우는 사람들과 그들에게 아부하여 사리를 도모하는 모리배들도 다 같이 나 쁜 것이다.

 2. 약자에게 잔인하지 말라.

그것은 이방 사람의 것이다. 강해 보이는 자에게 아첨하고 약해 보 이는 자에게 잔인한 것은 사대사상이 우리에게 끼친 악영향 중에서 하 나라고 할 것이다.

 과부와 고아를 돌아보며 가난한 자를 도우라 함이 신구약 성경으 가 일관된 가르침이다.

 3. 제 2공화국 건설에 십자군이 되라 역사상의 십자군이란 1096년에서부터 약2세기 간에 걸쳐 서부 유럽 왕후들이 성지 팔레스타인을 회교도에게서 구해 내기 위해 일으켰던 원정군이었다. 제4-5회의 십자군 출정에는 어린이들 십자군이란 것도 있었다.

 새로운 민주국가를 건설하려는 이 나라 안에 꽉 들어찬 온갖 불의에 대해 기독교인들은 일심협력하여 정의의 십자군이 되어야 할 것이며 지도자들은 다 그 인솔자들로 선두에 서야 할 것이다.

 4. 널리 펴는 글에 마음을 쓰라.

성경에 혀를 함부로 놀리지 말라는 말씀은 있으나 글을 조심해 쓰라 는 경고는 없는 상 싶다. 아마도 말에 조심할 줄 아는 사람이면 글에 는 더욱 삼가리라고 생각한 탓이리라.

 4.19이후 우리는 무숙한 성명서가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있다. 어떤 것은 유치하고 야박스러운 말만 골라 써가며 뒷 감당도 못 할 위협과 공갈을 함부로 때려 독자에게 "글이라구 더럽다. 밥을 먹고 이런 글을 쓰다니..."하는 엾다는 인상을 준다.

 서양사람들은 "중요한 글이면 하루밤 자고 나서 다시 본다"는 말이 있다. 그것따은 성명서 같은 데는 반드시 응용되어야 할 것이다. 한번 비방받은 사람은 그를 비방한 사람에게 좀처럼 지도를 받으려고 하지 않는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5. 지도자의 얼굴은 어떠해야 할까 예수께서 나다나엘을 보시고 말씀하신 것 같이 지도자는 가난한 것이 없는 얼굴, 평화스럽고 친절한 얼굴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겉볼 안'이란 좋은 말이 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설교자들에게 들은 얘기 중에 어떤 이가 천사의 얼굴같은 사람을 만난후 여러해 만에 악마같은 얼굴을 찾았는데 알고 보니 같은 사람이었다는 얘기가 있다. 속에 있는 생각대로 얼굴에 나 타난다는 예화일 것이다. 어떤 얼굴은 늘 보아도 좋고 어떤 얼굴은 오 래간만에 보아도 싫다. 예수의 마음을 품고 예수를 닮은 지도자,사람 들에게 예수를 보여주며 그에게로 인도하는 지도자보다 요청되는 지도 자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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