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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악법과 기독인의 자의식 (고전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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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언제나 전체 이전에 개개인을 상대했습니다.

도매급으로,전체로 인간을 대한 것이아니라 독자성을 갖는 개인,고유한 존재로서의 개채에 더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전체를 무시한개인주의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개개인은 누구나하나님과의 고유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인간은 결코 전체라는 이름으로 페인트칠을 하듯 획일화,개념화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그에게는 확실히 사회구원 보다 인간구원이 우선적인 관심사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그가 인간을 정신적 개체로서가 아니라 역사 혹은 사회질서와 유리될 수 없는 존재로 보았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뚜렷한 사회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한 적은 없지만 대신 개인의 행동방향을 말할 때에는 언제나 기존사회질서와 관계성 속에서 그가 처신해야할 바를 지시하고 있습니다. 가령 "죽은 자는 죽은 자들에게 장례하게 하고너는 나를 따르라"고한 경우라든가,구원의 길을 묻는 부자에게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한 것등은 이를테면 기존의 사회질서나 소유가치를 거부하라는 것으로서, 물론 이같은 극단한 명령이 아무에게나 적용되는 것은 아니빈다. 사회질서 그 자체보다는 그것이 개인의 구원이나 인권에 장애물이 될 경우 예수는 단호히 그것을 버리도록 요구한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예수의 구원 행각이 일단 사회개혁보다는 사회로부터 소외된 죄인들의 인간회복을 목표했다고 볼 수 있으나 만약 한 생명을 구원하는데 있어서 기존의 가차없는 결전도 불사한다는게 바로 예수의 기본입장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발생한 소송사건 하나를 비판하면서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자의식을 강하게 피력한 대목입니다. 짧은 본문 가운데서 바울이 여러차례 사용하고 있는 '코스모스'즉 '세상'이라는 말은 우주론적인 희랍적 개념이 아니라 불의와 불신과 불법이 횡행하는 기존사회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이 세계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의대상입니다.

최근의 정국을 '신공안정국'이라고들 합니다.
'문민'과'공안'이 공존하는 어휘의 혼란도 현기증이 나지만 더욱 본질적으로는'공안'이 '인권'을 밀어내는 현실이 군사정권의 어제를 꼭 닮았습니다.
이승만 독재정권과 30여년간의 군사통치 기간동안 이 땅에는 참다운 의미의인권은 없었습니다. 지배이데올로기러서의 우익반공주의 말고는 어떤 사상이나 이념도 철저히 탄압되어 왔습니다. 합법을 위장한 폭력이 난무했고,때와 곳을 가리지 않은 테레가 자행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법이유효하기 위해서는 군사독재 시절의 법과 문민정부의 법이 어떻게 다른지를먼저 증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문민정부하에서도 분단과 냉전의 악법은 여전히 한치의 변함도 없이 시퍼렇게 살아있습니다. 오히려 출판노래 컴퓨터등 표현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할 학문과 예술 영역에 대한 보안법의 제약은 더욱 서슬을 세우고 있습니다.

김영삼 정부가 진짜 문민정부인지 아닌지는 그간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를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유난히도 '문민'을 강조해온 김영삼정권이 들어선지 2년이 가까워지는 지금 우리나라의 교도소와 구치소에는 아직도 480명

이나 되는 양심수가 갇혀있습니다.이는 작년 연말의 3백22명보다 무려 50너 증가한 숫자이며 이 가운데서 약 80%가 국가보안법관련 구속자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난 오랜 세월 악법개폐를 위한 범국민적인 청원과 선언과 투쟁에도 불구하고 또 최근에는 유엔인권위나 국제사면위,심지어는 외국 정부의 낯뜨거운 개폐요구에도 불구하고 완강히 '개폐불가'를 고집하는 김영삼정부의 실체입니다.

이렇듯 현 정권이 문민정부를 자처하면서도 여전히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지못하고 있다는 것은 인권 암흑시절에 대한 미련을 가진 세력이 아직도 우리정치사회에 무시할 수 없는 힘으로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사실의 확인이라해도 좋을 것입니다.

1967년 3월 버밍햄에서 비폭력 시위를 벌이다 구속된 마틴 루터 킹 목사는그의 동교 목사에게 보낸 옥중서신에서 자신이 투쟁 이유를 두가지고 밝힌바있습니다. 첫째는 법이 법대로 집행되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는 악법을고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루터 킹 목사와 같은 투철한 자의식의 그리스도인이 그리운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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