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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교의 생활화 (행 0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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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관찰하여 분석해 보면 여러 유형이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 은 겨우 자기 혼자만 돌보면서 삽니다. 자기의 목숨, 자기의 인 생, 자기의 몸 하나만 겨우겨우 돌보다가 생을 마칩니다. 그런가 하면 자기 자신도 돌보지 못하고 남에게 짐이 되는 삶을 살다가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자기 가족도 책임을 집니 다. 사실 가족을 이끌어 가면서 그들을 돌보고 도움을 주며 사는 것이 우리들 대부분의 삶입니다.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을 돌본다 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그 정도만 되어도 괜찮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기 인생을 돌보고 자기 가족을 돌볼 뿐 만 아니라 이웃까지도 돌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과 가족 을 돌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남까지도 돌볼 수 있다는 것 은 보통 축복받은 삶이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을 돌보고, 자기 가족을 돌보고, 이웃 도 돌보고, 세상 끝까지도 관심을 가집니다. 이들은 우리 민족 뿐만 아니라 남의 민족까지도 생각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 세계를 가슴에 품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이 세계적인 신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도 승천하시기 전에 너희는 땅 끝까지 가서 모든 백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자신 혼자도 돌보기 어려운 그런 인간들에게 세계를 보는 세계적인 인물이 되라고 하신 것입 니다. 그것이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향하신 소망이요 계획이요 목적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존재처럼 보여도 중공과 소련, 북한 과 인도네시아, 아프리카를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세계적인 사람들 이 있습니다.

이 교회가 아시아 선교를 위해서 큰 몫을 하고 있는 것은 참 좋 은 일입니다.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서 매년 1억을 내놓는 교회 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시아에서 수십 명의 학생들을 데려다가 공부시키고 하는 것을 볼 때 세계적인 교회, 세계적인 인간, 세계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얼마나 멋있습니까? 물 론 그렇게 결정하기까지 많은 고생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교회가 아시아 전체를 생각하며 수십 명의 외국 학생들을 데 려다가 신학 교육을 시켜서 아시아 각국에 보낼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훌륭하다고 생각 합니다.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 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하셨습니다. 부모들이 자식을 키 울 때에도 그 자식이 세계적인 인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세계가 아주 좁아졌습니다. 제가 미국에 갈 때만 해도, 미국에 가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달나라 가는 것같이 어려운 것이 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이제는 자녀들을 키울 때 세계적인 눈을 가지도록 키웠으면 좋겠습 니다. 한국에 와 보니까 민족적인 것, 전통적인 것을 많이 강조 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 민족에 대해서 긍지를 갖고 자기 민족의 문화를 잘 발달시키는 것은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 민족, 내 민족 하면서 세계와는 적대적인 관계에서 산다면 그것은 별로 바람직한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 민족을 강하게 교 육함으로써 젊은이들을 세계에 도전하는 훌륭한 사람들로 키운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이 지구촌 시대에 경상도니 전라도니 하고 아웅다웅하면 어떡합니까? 이북과 이남이 싸워서 되겠습니까? 모두 하나가 되어서 세계를 우리의 일터로 알고 살아야 합니다.

 예루살렘과 유다와 땅 끝까지 이르는 세계적인 신앙인이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되고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되어서 전 세계를 향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았습니까? 지역 감정 같은 것은 참으로 조심해야 할 것들입니다. 그런 것에 집착해 있는 사 람들은 세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석기 시대에 살고 있는 자들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이런 데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먼저 앞서서 나아가야 할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 입니다. 이런 신앙인이 선교적인 신앙인입니다. 늘 자기를 돌볼 뿐만 아니라 내 가족과 내 이웃을 돌보고 세계를 향하여 눈을 돌 리는 사람들입니다.

 선교적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 첫째/구원의 감격이 있는 사람 구원의 기쁨과 구원의 은혜와 구원의 감격을 아는 사람들이 선교적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이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내 영혼이 구원받아서 얼마나 기쁜지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 알아 야 남에게도 관심을 갖고 그것을 알려 주려 할 게 아닙니까?

둘째/올바른 신학이 있는 사람 특별히 지옥에 대한 신학이 정확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세계는 지 금 지옥에 대한 개념을 없애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철학자들, 사 회학자들, 인본주의자들은 어떻게 하든지 우리로 지옥을 생각하지 않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종교가 하나둘이 아니기 때문에 기독교 에서 말하는 지옥은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며 실상은 존재하지 않는 다고 합니다. 따라서 절대로 지옥이란 곳에는 가지 않는다고 합니 다. 그리고 지옥이란 이야기는 가능한 한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지옥은 있습니다. 오늘 이 한 시간 동안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 님을 아버지로 알지 못하고 죽은 수만 명의 사람들이 지옥을 향하 여 가고 있습니다. 내 남편이, 내 아내가, 내 자식이, 내 친 척이, 내 동료가, 내 민족이 현재도 지옥을 향하여 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지금은 지옥에 갈 이유가 하나도 없는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벌 써 2천 년 전에 자기 아들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박아 온 인류 의 죄를 위해서 이미 그 대가를 지불하셨고 다 이루었다고 선 언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달되기만 하면 ,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시대인 것입니다 .

문제는 우리가 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려 주지 않았 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발로 지 옥을 향해 가다가 영원히 떨어져 죽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옥에 보내지 않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습니까? 영혼을 향한 애 타는 마음과 올바른 신학이 있는 사람만이 선교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영혼을 사랑하는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한 영혼이 얼마나 귀한지를 깨달은 사람들이 선교적인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 영혼의 귀함과 함께 다른 영혼이 우주보다 더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 식한 사람들입니다. 사람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고 자동차나 돈이나 옷에 대한 흥미만 있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선교적인 사람이라 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무엇에 대해 참된 흥미를 느낍니까 ?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흥미와 최고의 취미가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교회의 건물을 위해서 돌아가시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자동차를 위하여 돌아가시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인 간을 사랑하사 인간을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당신은 오늘 무엇에 최고의 관심을 두고 있습니까? 만약에 사람에 대해서 관심이 없 으면,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마지막에 영원히 영원히 남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밖에 없는 데 주여, 내 마음을 변화시키고 내 눈을 돌려 주시사 세상의 무엇보다도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십 시오. 이런 기도가 당신의 입술에 꼭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사 람들이 선교적인 인물이 되고, 이런 사람들이 세계적인 인물이 됩 니다. 사람들이 이 한반도에만 사는 것이 아니라 저 아프리카에도 , 인도네시아에도, 뉴우기니에도, 남아메리카에도 사는데, 아직도 구원의 복음을 듣지 못한 채 영원한 지옥에 가는 사람들이 헤아 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넷째/기도하는 사람 신학이 올바로 정립되어 있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 는 친구를, 이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자기의 남편과 자기의 아내와 자기의 자식과 자기의 이웃의 구원을 위해서 애타게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참으로 귀한 모습이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고 또 마땅한 일입니다.

제가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당신은 지금, 아직 구원받지 못한 어느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까? 기도 노트에 이름을 적 어 놓고 주님, 아무개를 구원해 주옵소서. 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옵소서. 그의 마음을 움직여 주시사 그가 교 회에 나올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해 주옵소서 하고 누군가를 위해 서 기도하고 있습니까? 주여, 만백성을 구원해 주옵소서 하는 기도도 좋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누구를 지정해 놓고 기도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한 해에 세 사람을 적어 놓고 일 년 동 안 기도하자고 한 적이 있습니다. 성경 찬송가 책 갈피에 명단을 적어 놓고 기도했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적어 놓고 기도해 보십 시오. 당신의 기도 때문에 누군가가 구원받는 은혜를 경험하고 하 나님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이것이 선교적인 사람 의 모습입니다. 선교적인 사람은 영혼을 참으로 사랑합니다. 그래 서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다섯째/성령이 충만한 사람 구원의 감격이 있고, 사람에 대하여 관심이 있고, 옳은 신학을 가지고, 구원받지 못한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은 늘 성령의 감화와 감동과 충만함 속에 살기 시작합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 을 만나면 그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인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인지 알고 싶어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다른 것에는 흥 미가 없고 그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인지 안 받은 사람인지에 관해 서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채워 주십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힘이 생깁 니다. 지혜가 생기고 열정이 있고 삶의 뜨거움이 있습니다. 그렇 게 되면 자연히 그 마음 속에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자기 자신만을 돌보는 삶이 아니고 주여, 주님의 은혜와 주님 의 힘을 인하여 나 뿐만 아니라 내 이웃과 내 가족도 돌볼 수 있는 삶을 만들어 주옵소서 하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 우리는 세계적인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전도의 준비 우리 안에 구원의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드디어 전도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전도하기를 원하는 것만으로 전도가 되지는 않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파악하고 준비하 며 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것이 없이는 전도가 효과적으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에서 쓰여지는 단어 가운데 정확하게 쓰여지지 않는 단어가 여러 개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전도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도와 전도에 대한 혼동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 어떤 사람을 교회에 데려온 것은 인도한 것입니다. 반면에 어 떤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준 것은 전도한 것입니 다.

 복음을 전달해 주려면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 내용은 나침반社에서 발행된 저의 설교집 『당신은 확실히 믿습니 까?』의 구원의 은혜, 구원의 확신, 거듭남의 확신이 라는 장(章)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책을 읽고 중요한 성경 구절을 조목조목 정리해서 남편에게 설명을 해 보고, 아이 들에게 설명을 해 보고, 친구들에게 설명을 해 보고, 교우들에게 설명을 해 보면서 스스로를 훈련시키십시오. 이렇게 훈련이 되어 야 전도적인 생활을 할 수 있고, 선교적인 생활을 할 수 있습니 다.

 전도할 때 말로만 하는 것보다 성경을 펴서 읽어 주는 것이 좋습 니다. 본인이 자기 눈으로 보고 읽을 수 있도록 해 줄 때, 성 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에게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내 가 언변이 부족해도, 그 말씀 자체가 예리한 검(劍)보다도 더 날카로워서 그 영혼과 골수를 쪼개 냅니다. 전도는 내가 하는 것 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사 람들이 변화되어 갑니다. 그래서 나 스스로를 훈련할 필요가 있고 , 이미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자주 복음을 전함으로써 그 내용을 점점 정확하게 인식하여 담대하게 전도하게 됩니다. 전도는 목사 님이나 전도사님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대부분이 교육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잘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복음의 내용을 잘 알아서 전도를 시도해 보아야 합니다. 복음의 내용은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는, 천국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둘 째는, 인간은 죄인이다. 셋째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넷째는,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 다섯째는, 믿음으로 구원 얻 는다. 이 내용을 잘 알아서 설명해 줄 때, 누구든지 이 복음을 듣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가 있습니다.

 전도할 때에는 반드시 기도 가운데 해야 합니다. 친구를 찾아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도 준비하면서 기도하고, 가면서 기도하고, 그 집에 들어가기 전에 기도하고, 가서 말할 때 기도하면 성령께서 함께해 주십니다. 나 혼자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과 내 이웃과 세계를 위해서 선교적인 삶을 살게 될 때 참 삶의 보람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목회라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학교 선생님도 괜찮습니다. 군대도 괜찮습 니다. 병원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목회는 너무나 어려운 것입니다 . 그래서 교인들이 목사를 좀 봐 줘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 한 사람이 대여섯 명의 가족을 거느리는 것도 얼마나 힘이 듭 니까? 그런데 백 명, 이백 명, 천 명, 이천 명, 삼천 명, 오천 명을 섬긴다는 것은 얼마나 더 어렵겠습니까? 그래서 목회 를 포기하려는 목사님이 3분의 2가 넘습니다. 너무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힘든 것이 다른 게 아니라 사람을 돌보는 일입니다.

 그러면 목회자들의 즐거움과 감사와 힘은 어디에서 생깁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라도 생기면, 이삼 년 고생해도 그 한 사람 때문에 힘이 생깁니다.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복음이 전달되어 믿는 사람 하나가 생길 때, 하나의 존귀한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 를 만나 구원받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격해서 목회하는 즐거움을 누 리게 됩니다. 아무리 고생한다 해도 그 교회에서 구원받는 사람이 늘어날 때, 목회자는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 기쁨은 고생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교적인 사람, 세계적인 신앙인으로 만들어 주시기 원합니다. 나 하나도 돌보지 못해서 쩔쩔매는 것이 아니라 내 가족과 내 이웃을 포함해서 세계까지 바라보고 돌볼 수 있기 를 원합니다. 세계 끝까지 복음을 전달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신 앙인이 되기를 기도하십시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나 자신도 돌보지 못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에 머물 수야 있겠습 니까? 주여, 나에게 은혜 주시옵소서. 주여, 나를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주여, 나를 키워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세계적인 신 앙인, 성숙한 신앙인, 선교적인 신앙인으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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