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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고니온에서의 전도 (행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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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계속해서 바울의 1차 전도여행에 대하여 살펴보고 있습니다.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14:1-7은 이고니온에서의 전도에 대한 기록입니다.본문을 살피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사도의 명칭
오늘 본문을 보면서 먼저 우리가 관심있게 보게 되는 것은 바울과 바나바를 지칭하면서 “두 사도”라고 말한 것입니다.1절(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3절(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4절(두 사도를 좇는 자도 있는지라), 5절(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두고“두 사도”라고 부릅니다.
사도라는 말은 헬라말로는 ‘아포스톨로스’인데,‘파송된 자’라는 의미입니다. 특별히 사도라는 말은 예수님의 열두제자를 지칭할 때 사용합니다.누가복음 6:13에서 분명히 알게 되는데,“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그래서 사도라는 말은 예수님의 특별한 제자 12명을 두고 붙이는 말입니다.사도행전 1:26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 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열한 사도에 추가로 맛디아가 포함되었다는 말입니다.맛디아를 선택할 때 사도의 자격으로서 1:21-22에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이라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12제자 외에도 넓은 의미로 사도라는 명칭이 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바울입니다.갈 2:8에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바울외에도 예수님의 친동생인 야고보와 또한 바나바에게도 사도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사도라는 말은 성경전체로 볼 때에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파송된 자에게 붙일 수 있는 말입니다.예를 들면 히3:1에는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라는 말 속에서 예수님에게 사도라는 말을 붙이고 있습니다.지금도 복음의 사명을 맡은 자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2.표적과 말씀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두번째로 관심을 두고 살펴볼 것은 3절 말씀입니다.“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 하시니” 이 구절에서 표적과 기사 그리고 말씀의 관계에 대하여 알 수 있습니다.많은 사람들은 표적과 기사를 보기 원합니다. 표적과 기사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의 장정을 배불리신 후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 들었습니다.심지어는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했습니다.또는 누가복음 23:8에는 “헤롯이 예수를 보고 심히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전도를 보내시면서 기사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도 했습니다.누가복음 9:1에는“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표적은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표적과 기사는 사람의 공로를 나타내도록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표적과 가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분명히 증거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는 점입니다.그래서 본문에서 분명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 하시니”라고 기록합니다.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표적과 기사보다 더욱 중요합니다.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음부에있던 부자가 이렇게 말합니다.눅16:30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 하리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답변으로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표적과 기사가 기독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닙니다.다만 말씀을 증거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3.핍박의 시작
세번째 우리가 본문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전도의 사업에 있어서의 핍박입니다.14:5에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라고 기록합니다.사도행전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자들이 예수의 복음을 증거하는 기록입니다.사도행전에는 계속하여 핍박과 박해의 기록입니다.야고보의 순교,스데반의 순교,베드로의 체포가 계속하여 나옵니다.
바울이 처음으로 사도행전에 그 이름이 나오는 곳은 7:58입니다.이 때 바울은 스데반의 순교를 지지하는 청년이였습니다.그렇게 믿는 자를 박해하던 바울이 이제는 복음을 위해서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그리고는 이 박해를 피하여서 다른 지방으로 쫓겨 다니게 되었습니다.14:6-7에는 “저희가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및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복음 전하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합니다.복음을 전파하는 곳에는 분명히 핍박과 고통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을 당해야 합니다.십자가의 고난이 없다면 부활의 영광도 있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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