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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행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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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동물원에 가는 사람을 붙잡고 어디에 가시냐고 물었습니다. 물론 동물원에 가는 것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또 묻기를 동물원에는 뭐하러 가십니까 라고 하자 “몰라요” 라고 했다면 아마도 묻는 사람이 어이가 없게 될 것입니다.
동물원에는 동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동물을 보기 위해 동물원을 갑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른다면, 그러면서도 동물원에 간다면 이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이런 답답한 일이 오늘날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요 신앙생활의 모든 것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되어지는데 성령에 대해 무감각하고 성령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신자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성신(성령)이라고 하니까 거룩한 귀신인가 라고 생각을 하고 이상한 초능력 같은 것을 연상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흔히 “神(신)”이라고 하면 샤머니즘에 젖어 살았던 관습으로 이상한 기운이나 온몸을 오싹하게 하는 좀 으시시한 귀신을 생각을 합니다. 하긴 神이라는 말의 한자의 훈이 귀신이라고 되어 있는 것부터 기독교적인 것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에는 성신이라고 했다가 지금은 어감이 안좋아서 성령이라고 부르고 있기는 합니다.
여러분! 성령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행19: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행19: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 사도가 에배소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에배소는 소아시아 최대의 무역항구로서 문화도시요 예술의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이곳에 있는 극장은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속한 당시 세상적으로는 손색이 없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여기에도 복음이 증거 되었습니다. 바울사도가 이곳에 들러 보니 믿는다고는 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시원찮은 구석이 보였습니다. 바울사도가 보니 그런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묻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여기에 대한 저들의 대답은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너무나도 뜻밖이고 또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는 대답입니다.
저들은 요한의 세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요한이 자기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는 말씀도 이해를 했어야 했는데 그들은 그것을 모른 채 메마른 신앙생활을 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그러자 저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성령께서 역사 하신 것입니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저들은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였습니다. 성령이 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 사건을 성경학자들은 ‘에배소의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들은 성령 충만하여 수리아 안디옥 이후 새로운 이방 선교의 중심지로 떠오른 에배소 교회의 핵심인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깨우치시고 인도하시며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요7: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도들의 사모의 대상, 믿음의 주, 온전케 해주시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도의 평생 소원은 예수님을 더 깊이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셨습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드러내셨습니다.
(요14: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그런데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 주십니다.
(요16: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이렇듯 그리스도와 성령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가 없는 관계입니다. 태어나실 대부터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신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로 공생애를 사셨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우리들에게도 보내주셨습니다.
(요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승천과 함께 성령 강림을 말씀하시면서
(요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16: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하나님이 되시지만-예수님께서 종으로 철저히 낮추셔서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복종하신 것처럼-예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해 일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알듯이 성령 강림 후에 교회에서 가르친 것들의 내용이 크게 달라진 것들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내용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교훈을 가감 없이 그대로 가르쳤고 다만 변화가 있다면 그 복음이 이방인에게까지 거침없이 전파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은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우리들의 대변자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는 보혜사 성령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세상 끝날 때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바로 성령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 몸이 성령의 전인줄 모르느냐고 반문한 적이 있습니다.(고전 6:19) 이것은 성령께서 강림하실 때 성도의 몸을 전으로 삼아 거주하실 목적으로 오셨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일시적 대리자가 아니십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영구하신 대리자로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우리를 보살피시고 지도하시며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실 목적으로 오셨습니다. 육신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는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으셔서 소수의 제자들만 가르치시고 보살피셨지만 영으로 오신 성령은 시간과 공간에 지배됨이 없이 모든 성도를 지키시고 보살피십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당신이 떠나시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성령강림을 그리스도의 계속 사역의 한 사건으로 보는 것은 성령께서 오셔서 그리스도의 사역이 중단되거나 변화가 오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하신 복음전파 사역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확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당신을 ‘진리’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을 ‘진리의 영’(요 16:13)으로 명명하시고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령 운동을 한다면 그것은 예수 운동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 운동의 건전성은 그 중심에 예수님이 있고 예수님이 증거 되고 예수님이 영화롭게 되고 있느냐 하는 데서 확보될 수 있습니다.
예수 없는 성령 운동은 한낱 이단적 신비주의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난 죄인들에게 거룩한 변화가 일어났던 것을 성경에서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귀신들렸던 자가 단정하게 되고
(막5: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남편 다섯을 두었던 여인이 복음 전도자가 되며
(요4: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요4: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백성의 고혈을 팔아 부를 축적하던 세리가 거룩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마9: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문제는 이러한 거룩한 변화들이 예수님의 승천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모든 것을 성령의 사역이라고 가르칩니다.
(갈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갈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은 오셔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성품과 같은 열매들을 맺게 하십니다. 이것은 성령강림이 지니는 그리스도 사역의 계속성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고 당신의 계속된 사역을 위해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승천하셨음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사역은 활기를 띄었고 온 세계로 급속히 확산되었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대신한 또 다른 보혜사로서 우리 가운데 계시며 지금도 그리스도의 사역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여러분과 더불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성령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합니다. 그의 뜻을 깨닫고 그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성령 충만을 계속 유지할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과 더불어서 복되게 삶을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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