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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행 08:4-24)

첨부 1


사마리아 교인들의 구원은 13절 까지만 해도 이상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빌립이 전하여 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명백히 믿었다(5,12) 12절에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 가 다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구원은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빌립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였다(5절).

이는 그리스도의 메시야 되심과 십자가와 부활이었다.

12절에는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했다.

빌립은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그들의 첫 설교에서 전하여 준 그 "천국,즉 하나님 나 라"의 개념을 알고 믿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가 전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 되셔서 통치하고 다스리고 계신 다는 말씀이다.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온 우주의 왕이 되신 그리스도를 그가 전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였다.

예수님의 이름이 예사로운 이름인가 예수님의 이름은 구원하시는 이름이다.(마1:21,예수님의 이름은 구원) 죄에서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였다.

 구원은 이것으로도 충분하다.이 사실을 믿으면 누구나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요 하나님 나라의 선포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과 동시에 예수님 의 십자가가 나의 십자가 되고 그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갈2:20

골1:13

요일5:11-12

요3:16

요5:24

"우리가 이 큰 구원을 받았으니"라고 했다.

이런 구원은 십자가와 부활이면 충분하다.이 구원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

 8:14절을 보세요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 교회에 대해서 무슨 말씀을 전해 들었습니 까 그것은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받았다" 데코마이, receive,accept 란 뜻이다.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벧전2:2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함이니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중생케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거듭나게 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 즉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까 주일마다 말씀을 들으시는데 그것이 거부가 안되고 어쩐지 믿어지고 받아들여지십 니까 그러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베드로와 요한을 보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구원은 받았지만 아직 성령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 문입니다.

 중생이란-거듭남,다시 태어남,위로부터 태어남,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는 순간 성령의 역사로 그리스도가 믿 어 지고 자신의 불신앙과 죄악을 회개하게 된다. 이것이 중생이다.

하나님과의 신분관계,법적 지위,하나님의 아들,자녀됨을 의미 한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주라고 말할 수 없다" 중생은 성령님의 주권적인 사역이다.

 성령세례-구원과는 관계가 없다.성도의 능력있는 삶을 위해서 주시는 것이다.

중생이 성령님의 주권적인 역사라고 한다면 성령님은 영광을 받으신 예 수 님이 중생한 신자에게 주시는 것이다.

이것은 위로부터 능력을 덧입는 것이다.

성령님이 오신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시기를 한번도 구원을 위해서 성령님이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성령님이 오신 목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 오셨다.

성도들의 능력있는 증인의 삶을 위해서 오셨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구원을 받고가 아니고) 권능을 받 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17절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이것이 성령세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아버지에게서 받아서 영광을 받으신 예수님이 택하신 백성에게 주시는 성령세례이다.

 성령세례를 부인하는 죤 스타트는 본문의 사마리아 교인들과 행 19장의 에베소 교 회의 성령을 받는 말씀을 주석하면서 참으로 경악할 설명을 하고 있다.

이 두 교회의 성령강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참으로 "이상하고도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본문의 사마리아에서의 성령강림 사건은 "너무나 명백하게 비정상적인"것이 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마리아는 오랫동안 유대인들과 반목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사마리아도 구원 받을 수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 성령의 선물을 주는 것을 보류하셨다고 한 다.

"사도들이 내려가서 그들의 회심이 순수함을 인정하고 확증할 때까지 하나님이 의 도적으로 사마리아 성도들에게 성령의 선물을 주는 것을 보류하셨다고 가정하는 것 이 바람직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저는 어떻게 이렇게 세계적인 성경학자가 이상한 독단에 빠져서 성경을 왜곡되게 해석하고 있는 실수를 범하고 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오직 성령세례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그것을 위해 온갖 인위적인 설명을 다 붙인다.

행19장의 에베소 교회의 성령세례도 마찬가지이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배소에 와서 어떤 제자 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우리 교단 신학교에서 동일하게 주장하고 있듯이 죤 스타트는 이 본문도 말씀 그 차체대로 인정을 하지 않는다.

본문의 "어떤 제자들"은 구원 받지 못한 단지 외관상의 제자들이라 했다.

즉 외관상으로만 제자였지 실제는 중생하지 아니한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19세기의 프린스톤 신학자인 챨스 하지 박사의 말을 인용한다.

"성경은 언제나 고백에 따라 사람들에게 명칭을 준다. 곧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 은 신자라고 부르고,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다"(챨스 하지의 에베소서 주석,1856년)

그러나 사도행전에 믿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는 자를 제자라고 칭한 구절이 한까순 데도 없다. 사도행전에는 제자를 용어가 모두 33회가 사용되고 있는데 몇군데는 예 수님의 제자들에게 협의적으로 사용되고 있고(헹1:10,12,2:6,9:26) 나머지는 그리스 도를 믿고 따르는 신자들에게 사용이 되고 있다(2:41,6:1,9:1,19:1) 유독 행19:1의 어떤 제자들만 중생하지 못한 이상한 제자들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성경을 너무나 인위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이것이야말로 성경을 자기의 고착된 신 학사상을 위해 편리하게 해석하려는 우가 아닐 수 없다.

벧후3:16"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라고 경고하고 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성경 그대로 믿어야 한다.

개혁주의의 성경에 대한 가장 중요한 입장은 "성경이 가는데 까지 가고 성경이 멈 추는데서 함께 멈춘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한다.성경에 나의 사상과 신학과 그 어떤 경험을 덧붙여서는 안된다. 계시록 말씀에도 더하거나 감하면 이 책이 기록된 모든 화가 그에게 임할 것이라고 했다.

 사마리아 교회나 에베소 교회는 아주 특별한 경우였기 때문에,그리고 유대인과 다 른 곳에도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신다는 표로 성령을 늦게 주셨다면(죤 스타트의 주 장처럼) 오늘 우리들은 유대인들과 얼마나 다른가

사도행전에서 성령님이 강림하시는 것은 전적으로 복음증거를 위한 능력있는 증인 들이 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라! 3년동안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배웠고 신앙고백이 있었던 그들이다.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바요나 시몬아 네 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니라"고 요17장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한번 보십시요 구절구절에 제자들의 구원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은 원래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들은 아버지의 말씀 을 지키었나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 삽나이다" 얼마나 구원이 확정적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목박혀죽으실때 다 도망갔습니다.

그렇게도 다짐했던 제자들이 아닌가 베드로는 죽을지언정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겠다고 결심했다. 다른 제자들도.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성령이 없었기 때문이다.아직 성령세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 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명하기를 갈릴리에 있는 산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갈릴리의 예수님이 명하신 산에 11제자들이 모였다.

그리고 거기에서 예수님은 세계선교의 비젼을 제시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 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지키게 하라"

그리고는 11명의 제자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승천해 버리셨다.

어떻게 이런 나약한 제자들을 남겨두고 훌쩍 떠나실 수 있습니까 다 큰 아들을 군에 보내는 부모님의 심정을 이해하십니까 (우리 사단 신병입소식)

예수님의 이런 배짱,이런 믿음, 조금도 갈등없이 예수님은 그냥 훌쩍 하늘로 승천해 버리셨다.

아직 이 제자들은 세계로 나갈 생각도 안하고 잇는데 그들을 남겨두고 그냥 하늘로 떠나실 수 있는 이런 예수님의 믿음과 배짱은 무엇이었던가

약속하신 성령이 오시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보혜사 성령님이 오셔서 이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을 것이고 진리가운데로 인도 하실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성령님이 오시면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고 큰 능력으로 세상 을 정복하게 될 것을 아셨기 때문에 이같이 태연하게 떠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도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하나님의 능력있는 일군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세례를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1.성령세례가 중생 후에 있다는 것을 알고 믿어야 한다.

 중생과 성령세례를 동일시 하는 분들이 말하는 성령충만과 이 둘을 구분하는 분들이 말하는 성령세례는 어떤 면에서 같은 것이다.

성령세례는 성령충만의 첫 체험이다. 개인적으로는 성령세례는 한번이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은 계속적이다.(행4장)

성경의 말씀들을 선입견 없이 잘 살펴서 확실하게 믿어야 한다.

 2.기다리면서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행1장)

동일시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모하지 않는다.위기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성령세례를 별개의 사건으로 믿을 때 비로소 간절히 사모하고 구하게 된다.

지금 늦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지금부터라도 구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님은 주권적이신 분이기 때문에 성령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 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을 보라

눅11:5-13 기도에 대한 유명한 말씀 9절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13절"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아거든 하물며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요16:23-24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 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성령을 구하라는 말씀이다.

 오늘 본문에도 보라 15절에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전승교회-새벽기도자는 거의 성령세례 다 받음

저는 3년동안을 기도했다(00사단에서의 체험)

3.성령받은 분에게 안수를 받음으로 성령세례가 임한다.

 행8:17, 행9:17,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행19:6,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안수 할 때

예)이명숙 집사

4.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행10:44, 베드로가 설교할 때

5.순종함으로

행5: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 하니라"

죄를 모두 회개해야 한다.

동기가 순수해야 한다.

온전히 전폭적으로 간구해야 한다.

(나의 간증)

성령세례를 받으면 내적으로는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외적으로는 은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저는 그때 부터 신유의 은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택은 하나 뿐이다.

앞으로의 삶을 능력있게 살것이냐 아니면 유야무야하게 살것이냐

막16:17-18의 약속을 믿고 행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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