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두루 다니며 (행 08:4-8)

첨부 1


초대 교회의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인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은 순교 사건이 있은 후 예루살렘 교회에는 박해의 돌풍이 불어 닥치기 시작했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죽음 때문에 받은 충격과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엄청난 박해가 시작된 것입니다.
박해의 선봉장은 사울이었습니다.
사도행전 8:1-3은 예루살렘 교회에 박해가 일어나 검거 선풍이 일기 시작하자 사도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교인들이 몸을 피해 사방으로 흩어졌다는 기사이고,4-8절은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이곳 저곳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는 것과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에 내려가 복음을 전했을 때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났다는 기록입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은 박해에 쫓긴 그리스도인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보면 주님도 두루 다니셨다고 했고 제자들도 두루 다녔다고 했으며 사탄도 두루 다녔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4:23을 보면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라고 했고,마태복음 9:35을 보면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라고 했습니다.그리고 두루 다니신 이유는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병자들을 고쳐 주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8:4을 보면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라고 했고 베드로전서 5:8을 보면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했습니다.
우린 여기서 두루 다니는 입장과 목적이 다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크게 나누면 두 가지 이유로 갈라집니다.즉,예수님이나 제자들은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고 그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두루 다닌 반면,사탄은 인간을 파멸시키고 악을 조장하고 삼킬 먹이를 찾지 위해서 두루 돌아다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누구와 함께 돌아다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돌이나 나무처럼 한곳에 고정되거나 고착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곳 저곳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특히 현대 도시의 특성으로 인구 이동을 들고 있는데,이것도 따지고 보면 이곳 저곳을 두루 돌아다녀야 하는 인간의 이동 성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 치고 단 한 번도 이사한 경험을 가져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곳에서 20년이나 40년을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가까이는 이웃집으로부터 시작해서 다른 도시나 다른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는 것이 인간의 생활 보습입니다.
빚쟁이나 원수와 함께 날마다 여행을 한다면 그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것이지만,가까운 친구나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즐거운 여행이 될 것입니다.
우린 지금 누구와 함께 두루 돌아다니고 있습니까
어제는 누구와 돌아다녔으며,그리고 내일은 누구와 함께 돌아다닐 것입니까
우리를 삼키기 위해 먹이를 두루 찾는 마귀와 함께 어울려 돌아다니면 그 어느 날엔가는 마귀의 밥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단이나 사이비에 빠져 함께 돌아다니다 보면 처음엔 신나고 감미롭고 즐거울지 몰라도 얼마 못 가 그것들의 올무에 걸리게 될 것입니다.
독버섯이나,독초일수록 색깔이 예쁘고 화려하다고 합니다.
독사 가운데 방울뱀은 그 생김새나 색깔이 너무 예뻐,독사가 아니겠거니 하고 방심하는 사이에 기습을 당해 죽는다고 합니다.
어차피 인간은 하루하루 두루 다니며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인생을 흐르는 물과 같다고 한 옛 사람의 묘사 역시 인생이란 두루 돌고 움직이고 흐르는 존재라는 뜻에서 나온 것일 것입니다.
우리는 원수 마귀,사탄과 함께 어울려 두루 돌아다니면 안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주님과 함께 이곳 저곳을 두루 돌아다녀야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가,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던 사도행전 교회의 모습을 재조명해 보겠습니다.

1.그 흩어진 사람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그 당시 교인들이 흩어진 이유는 큰 박해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1절 말씀을 보면 “유대와 사마라이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고 했고,11:19을 보면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전하는데”라고 했습니다.
이 경우는 625전쟁 때문에 이북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이 전국에 흩어져 기도하고 전도하고 교회를 세웠던 것과 흡사합니다.
그런가 하면 베드로전서 1:1을 보면 그 당시 소아시아 각 지방에 흩어져 살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각처에 “흩어진 나그네”라고 했습니다.
제아무리 호사스런 여행을 한다고 해도 여행은 고달프기 마련입니다.특히 구라파나 동구권 같은 생소한 나라를 장기간 여행하게 되면 집 생각이나 김치 생각이 절로 나기 마련입니다.
나그네란 언제나 외롭고 힘든 법입니다.
미국 중부 지방에서 목회하시는 한 목사님의 사모님이 세상을 떠나셨는데 내외분이 모두 60세가 넘으신 분들이어서 아들 딸은 모두 출가했고 두 분이 사시다가 사모님이 돌아가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6개월쯤 지난 후 목사님이 조국도 그립고 울적한 마음도 달랠 겸하여 한국에 나와 두어 달을 지낸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시카고 공항에 내리는 순간 갈 곳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교회도 있고 살던 집도 있고 아들과 딸네 집도 미국에 있었지만 갈 곳이 막막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분이 그때 느낀 것은 우리가 흔히 쓰는 “집사람”이라는 말의 의미였다고 합니다.
집에 있어야 할 사람,집에서 기다려 주는 사람,그 집사람이 없는 집은 가고 싶은 집이 아니더라면서 후배들에게 “집사람에게 잘해라”는 당부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하이데거는 “내던져진 존재”라고 했고,셰익스피어는 “인생이란 불안정한 항해”라고 했으며,블레이크는 “인생이란 아침에는 생각하고 낮에는 행동하고 저녁이면 먹고 밤에는 잠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인생이란 “흩어진 나그네”라고 말합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살다가 흩어진 그곳에서 지상 삶에 종지부를 찍는 것,그것이 인생입니다.
저는 지난 주 월요일 두 건의 장례식을 집례했습니다.
오전 9시 반에는 79세로 세상을 떠나신 김포자 성도님의 장례식을 집례했고,10시 반에는 9세로 세상을 떠난 권광주 군의 장례식을 집례했습니다.
김포자 성도님은 교통 사고로 별세하셨고 권광주 군은 익사하여 세상을 떠났습니다.
같은 날 같은 병원 영안실에서 두 사람의 장례식을 집례하는 제 심정은 참으로 착잡했습니다.
그리고 느낀 것이 있었습니다.그것은 인생은 흩어져 살다가 가는 것이고 인간은 두루 다니다가 갈 곳으로 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또 인생이 가는 것은 나이 순이 아니며 모든 인생은 너나 할 것 없이 죽음앞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2.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박해 때문에 흩어지긴 했습니다만,그들은 유랑민처럼 떠돌아 다니지 않고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는 지난 8월 첫 주간 나흘 동안 하와이를 다녀왔는데,그곳에서 참으로 귀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그들은 영어,중국어,일본어,스페인어로 만든 전도지를들고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의 관광객들을 찾아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이었습니다.그런데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제일 전도지를 잘 받지 않는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아예 말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와이키키 해변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그들은 정말 보석처럼 빛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본문의 경우,흩어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 가운데 특히 두드러진 사람은 빌립 집사입니다.
6절 말씀을 보면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을 좇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빌립의 전도를 받은 사마리아 성에 일어난 기적입니다.
7-8절이 그것을 설명해 줍니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저는 이것을 사마리아 성의 해방이라고 봅니다.
빌립이 전한 복음이 사마리아 성에 들어가는 순간 사마리아 성에는 세 가지 해방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첫째는,더러운 귀신이 소리 지르고 쫓겨 나는 영적 해방이 있었습니다.
음란,탐욕,거짓,폭력,기만 따위는 귀신의 농간입니다.귀신을 내쫓는 힘을 가진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뿐입니다.따라서 귀신이 활개 치던 사마리아 성에 복음이 들어가자 영적 해방 운동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둘째는,육체의 해방 운동이 일어났습니다.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나는 육체의 해방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셋째는,정신적 해방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성에 복음이 들어가자 그들을 짓누르고 있던 온갖 걱정,고민,근심,우울증,좌절,무기력,긴장,대립 한숨이 사라지고 그 성에 큰 기쁨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은 우리 민족이 정치적 해방을 얻은 날입니다.
그러나 그 해방이 영혼의 해방이나,절망과 좌절과 질병과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은 아니었습니다.
사마리아 성에 복음이 들어가면서 사마리아 성의 진정한 해방이 시작되었던 것처럼,이 민족에게 각처에 흩어져 사는 1천만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할 때 그리고 이 민족이 그 복음을 믿을 때 완전한 해방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는 8절의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해방되던 날 우리는 얼마나 흥분했고 기뻐했습니까
그러나 5년 후 밀어닥친 북한의 남침으로 얼마나 울고 통곡했습니까 그리고 또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하던 날 얼마나 기뻐하며 만세를 불렀습니까
그 후로도 험난한 역사의 계곡 속에서 통탄하고 발을 구르고 한숨을 쉰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 큰 기쁨을 누리려면 사마리아 성처럼 복음을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누가복음 2:10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했습니다.영어 성경에는 “good news of a great joy”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마리아 성에 예수 폭탄이 떨어졌을 때 귀신도 물러갔고 질병도 물러갔고 걱정과 번민도 도망쳤던 것처럼,오늘 우리의 심령 속에 복음의 폭탄이 떨어지고 이 역사 속에 예수 폭탄이 터지면 사탄이 멸망하고 질병이 물러가고 고통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큰 기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