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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대한 만남 (행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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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누구를 만나느냐 하는 것은 대 단히 중요합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우리 삶은 지대한 영향을 받고 삶의 방향이 바뀌기도 합니다. 친구 를 잘못 만나서 일평생 헤어날 수 없는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려운 중에도 친구를 잘 만 나 어려움에서 건짐을 받는 자도 있습니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신중을 기하는 것은 누구를 만 나게 되느냐에 따라 가정의 행복과불행이 좌우되기 때 문입니다. 또 사업을 하더라도 많은 동업자를 만나게 되 는데 누구를 만나느냐하는 문제는 사업의 성공과 실패에 큰 요인이 됩니다.

이처럼 삶 자체가 무수한 만남의 연속이기에 어떤 만 남인가에 따라 삶의 방향이 바꿔지고 변화를 가져옵니 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이나 명성있 는 사람을 만나 자신의 삶에 유익을 갖고자 합니다. 한 정치인이 실력있는 자로 부상하면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몰립니다. 어떤이들은 유명하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을 아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자기의 위치를 세워 주고 보호받을 수단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꼭 만나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그러면 사람들이 각각 중요하게 여기는 만남 중에서 가장 중요한 최고의 만남은 무엇입니까꼭 만나야 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그 대상은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와의 만남은 가장 위대 하고 영광스런 만남이며축복된 만남입니다. 세상의 많 은 유명인들을 알아도 예수를 모르면 복이 없는 삶을 사 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나 그와 깊은 사귐이 있 는 사람은 인생을 성공되게 하는 자며 영원한 삶까지 그 분의 책임과 보호하에 인도받는 자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증거하고 있으며, 실재로 주님을 만난 자들이 또한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과거에 예 수를 만난 적이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전해 들었 을 때 거부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우리는 예수를 만났습니다. 만남 이후 우리는 그분의 살아계심 과 그분의 약속이 실행됨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때로 우리 주위에서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을 봅니다.

예상치 않던 부고장이 날아올 때 부고장을 대하는 마음 이 예수를 믿은 후 달라신 것을 자신이 압니다. 과거 예 수를 믿기 전에는 누가 죽었다 하면 그 사람의 유산, 부 인, 자식들 주위 환경에대해 신경을 썼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누가 죽으면 '그 사람 예수 믿었어'하고 묻습니 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죽은 자가 예수를 믿었었는가, 즉 예수를 만났었는가에 관심이 집중됩니다. 왜냐하면 예수 를 만난 삶과 만나지 못한 삶의 차이를 분명히 알기 때 문입니다. 세상의 유명인과 대통령, 각 층의 사람을 다 알아도 예수를 모르면 그 삶은 실패입니다.

성경에는 두 사람의 차이를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내용 이 있습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입니다. 부자 는 날마다 사람들을 초대하며 호화로운 잔치를 베풀었습 니다. 아마 그는 덕망있는 자로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 았을 것입니다.

한편 나사로는 거지 신세로 더럽고 멸시받는 자였습니 다. 그런데 두 사람이 죽은 후 어떤 상황이 벌어졌습니 까 성경(눅 16:19-31)은 예수를 만나지 못했던 부자는 음부에 떨어져 불꽃 가운데 고통스러워 하며 물 한방울 을 구했다고 말합니다.

나사로도 죽었습니다.그는 비록 거지였어도 예수를 만났으므로 천사에게 받들려 낙원에 갔습니다. 세상에서 는 나사로를 만나주는 이가 없었으나 예수는 그를 만나 주셨고 그의 삶을 축복으로 바꿔주셨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날도 성경의 인물처럼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한 시대의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며 지 금도 믿는 자에게 그대로 이루어지며 경험되어지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살아계십니다. 역사 속에 지나간 성인이 아니며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지금은 영으로 모든 사람과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를 믿는 모든 자를 도와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잘 아시기 에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도 아십니다. 그러므로 아들 을 보내사 아들를 맏는 모든 자의 구주가 되어주셨습니 다.

세상의 유명인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까 만났다고 해 도 이해관계로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먼저 만 나자고 요청하셨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 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 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 라."(계 3:20)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때와 장소에 상관없 이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나 만나 주시며 구세주가 되어 주십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사울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 님이 이 땅에 계시던 때에 살았지만 예수를 만난 적도 없고 제자도 아닙니다. 그가 확실히 아는 것는 예수는 로마 법정에서 사형언도를 받고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 실 하나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으나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는 몰랐 습니다. 그런 사울에게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문이 들립 니다. 주위에서 그 예수를 믿는 무리가 생겼습니다. 믿 음이 전파됩니다. 사울은 그런 상황에 격분했습니다.

로마시대에 십자가의 형벌은 반역자나 살인자같은 중 죄를 범한 자들이 받는 형입니다. 그런 형벌을 받은 예 수라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부활하였다는 소문과 함께 믿는 무리가 생긴다는 것은 사울에게 견딜 수 없는 모욕이었습니다.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기 때 문입니다. 그래서 공회원의 신분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 을 잡으러 다메섹 성(지금의 다마스커스)으로 갑니다.

가는 도중 홀연히 하늘에서 빛이 사울에게 비춥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 9:4) 이 음성에 사울은 "주여 뉘시오니까" 물을 때 "나 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하는 음성이 다시 들립니다.

예수를 만나는 순간입니다.

사울은 부활하신 예수,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를 만난 것입니다. 이 만남으로 사울은 변화됩니다. 예 수님은 사울을 만나주시고 그의 모든 삶을 축복된 삶으 로 인도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 성령으로 우리와 만나 주십니 다. 요한복음 14장 17절에 세상은 능히 성령을 받지도 보지도 알지도 못하나, 믿는 자들은 아는데 그 까닭은 성령이 믿는 자와 함계 하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는 우리 삶을 성공적으로 이끄시는 구세주 이시기에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 이것은 실로 위대한 만남인 것입니다. 예수를 만난 자마다 그가 누구인가를 알고 그를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예수와의 만남을 영광 스럽게 생각하여 세상의 만남이 다 끊어질지라도 예수와 의 만남은 계속하려고 합니다. 세상의 만남은 한계가 있 지만 주님과의 만남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죄와 죽음에서 소망을 주는 만남

죄로 인해 인생은 사망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교육, 종교, 선한 행 실, 수양 등으로 노력했으나 허사였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는 계속 죄를 짓게 만들고 파괴하려고 합니다.

결국 죄때문에 인간은 멸망하며 육신의 삶이 끝난 후 또 한번의 사망을 맞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갖고 이 땅에 오신 예수께로 우리 모두는 나아가야 합니다.

사회에서 비판을 받던 자들도 주님 앞에 나오면 죄사 함을 받습니다. 저는 죄 때문에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을 여러번 봤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를 믿었을 때 죄에 서 자유를 누리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죄는 관념이 아닙니다. 죄는 실재로 우리를 파괴합니 다. 예수께서 죄를 사한다고 할 때 눈으로 그것을 확인 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죄가 관념이 아님을 보여준 사건이 있습니다.

어느날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들것에 실어 예수께 데리 고 나왔습니다.(약 2:3-12) 중풍병자는 병든 까닭이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 시고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는 순간 병에서 놓임 을 받았습니다. 죄 사함을 받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없지 만 병이 떠나가는 것은 볼 수 있습니다. 주위에서 예수 를 믿고 죄사함을 받는 순간 병에서 일어나는 사람을 종 종 보게 됩니다.

예수는 죄를 사하시고 생명으로 인도하며 모든 저주와 환란에서 우리를 능히 도우시는 분입니다. 수 많은 사람 들이 예수를 만나서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이 땅에만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출세, 돈을 버는 것, 자식을 성공시키기 위한 것 등 오로지 이 땅에만 마음이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 후 이 땅이 전부가 아니라 영원한 천국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 습니다.

이 땅에만 소망을 둔 사람들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 너 왜 공부하니''출세하려구요''출세해서 뭐 하려고' '돈 벌려고요''돈 벌어서 뭐 하려고'... 이외에 다양한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어디에서 그 질문이 끝납니까 죽음입니다. 결국 삶의 목표가 죽는 것입니다. 죽으면 끝이라고들 합니다. 그러 나 죽음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믿는 자는 주님이 계시는 곳에서 영원히 사나 주님을 만나지 못한 자는 주님이 안 계신 곳에서 고통중에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 두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믿는 자가 세상을 떠날 때 소 망이 있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기쁨이 충만한 만남을 가져라

예수와의 만남! 이 위대한 만남을 끊을 그 어떤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 그 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 어지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신앙생활에 열심인 사람을 보면 '미쳤다''지나치다'라고 말합니다. 저도 예전에 제 아내 에게 그렇게 했으니까요. 핍박하다 예수를 만나고 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를 만난 자들은 주임 께 더욱 가까이 가야 합니다. 예배, 성경공부, 기도 등 하나님이 원하시는 여러 일들을 통해 더 가까이 나아가 야 합니다. 그를 가까이하십시요. 생명과 축복이 됩니 다.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죄 때문이 아니라 고집 과 교만 때문입이다. 조금만이라도 마음을 여십시요. 위 대한 만남의 순간이 열릴 것입니다.

예수를 만날수록 기쁨, 감격, 평안, 복된 생활이 더하 여 집니다. 요한일서 1장 1절-4절에서 예수님의 제자 요 한은 '태초에 말씀하시던 그 분을 눈으로 보았고 만졌 다. 생명이 나타났는데 바로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 리에게 나타나신 예수다'라고 증거하며 '예수를 사귀면 기쁨이 충만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를 만나십시요. 주님의 풍성한 사랑과 부요함을 누립니다. 우리 삶이 성공되게 하는 길이며, 금세와 내 세가 보장된 영원한 약속입니다. 예수와의 깊은 사귐 가 운데 그 놀라운 사랑을 누리시길 에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주여! 세상의 정욕과 욕심 때문에 주님과의 만남을 잠 시라도 소홀히 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더욱 깊이 만나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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