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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의 역사적 의미1 (행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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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메시야가 오신다는 대망사상, 큰 기다림이 있다. 이것은 메시야가 오신다는 약속과 성령이 임하신다는 약속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둘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한 약속 속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크게 봐서는 하나고 작게는 둘로 나눌 수도 있다.
인류가 범죄하고 타락한 이후에 창 3:15에서 하나님은 이미 여자의 후손에서 인류를 구원할 자가 오실 것을 약속하신다. 성경은 주님의 오심을 두번에 걸쳐서 설명한다. 첫째는 영적인 차원에서 자녀들의 영적인 회복과, 둘째는 역사적인 회복이다.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이렇게 주님께서 이 세상 역사에 종지부를 찍으시고 거룩한 나를 새로 완성하시며 죽음이 없고 해함이 없는 나라를 시작하기 위하여 다시 오실 것이다.
성경은 주님께서 오신다는 구약과, 오셨다는 복음서, 그 다음 사도행전에서는 승천하신 이후에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주셨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예언된 인류 미래사는 아직도 다 완성되지 않았다. 주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그 사이에 성령께서 강림하여 모든 신자의 마음 속에 임재하시는 사건이 여기에서 약속되었는데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실현되었다. 지금 여기에 앉아 있는 우리들 모두 안에 실제로 성령님께서 내재하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는 주의 일에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있어서는 우리가 거기서 살 집을 짓고 먹을 우물을 파고 다닐 길을 파는 것 이상으로 거기서 살아야 할 백성다워지는 것은 우리의 가장 큰 과제이다. 그 곳에서 살아야 될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흠도 점도 주름잡힌 것도 없는 자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의 인생 속에서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오셔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우리를 붙잡고 있는 이 죄와 사망의 권세자를 깨뜨리기 위한 작업을 십자가로부터 시작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붙잡고 있는 주인을 깨부수고 우리를 거기서 해방시켰다는 것이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
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
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
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히 2:14-16)”
우리는 마귀에게서 해방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얻었다. 구원이라는 것보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라는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물인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죄와 사망의 그늘에서 해방시키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시켰다는 사실이다. 내 자녀라고 하신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 있다. 외적 조건의 개선으로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내적 조건이 성숙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 바로 성령강림이 갖는 가장 커다란 목적이 등장하게 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
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
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 31:31-33)”
이것이 그 유명한 새 언약에 대한 예언이다. 새 언약과 옛 언약은 내용상에 있어서는 전혀 변화가 없다. 차이는 방법에 있다. 옛날에는 약속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외적 조건을 완벽하게 해 주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듣지 않았다. 그래서 내용은 같아도 내적 조건을 바꾸는 방법으로 달리 쓰시겠다는 것이다. 이 방법이 성령의 내재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
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
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
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 3:22-24)”
인간이 타락하고 범죄하자 하나님은 에덴에서 추방하시고 그 길목을 화염검으로 막았다.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우리와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기 위한 방법이었다. 범죄한 것은 인간인데 하나님께서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미셨다. 그 화해를 방해하는 모든 난관 또한 하나님 쪽에서 지금 해결해 나가고 계신 것이다. 찾아 오셔서 임마누엘이 되셨다. 그런데 이 문제에는 난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
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
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
라(창 6:1-3)”
구약성경이 인간의 타락을 이야기할 때 중요한 두 가지 내용으로 말씀한다. 하나님이 계시던 장소로부터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모든 교제의 끈이 끊기고 말았다. 우리에게 와 계시던 성령이 떠나가고 이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떻게 회복시키시는가를 보라.
내쫓기고 함께 있기를 거부당했던 우리에게 하나님이 오셔서 임마누엘이 되셨다. 이것을 구약에 예언하셨고 오늘 본문의 내용으로 성취하셨다는 것이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
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
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욜 2:28-30)”
하나님께서 말일에 하나님의 신을 충만히 부어서 우리와 함께 있게 하겠다고 하신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이 그의 나라를 지금도 만들어 가고 계시고 완성하고야 말 것이라는 차원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그 일을 진행하는 중에 드디어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고 부활하셨고 성령님도 드디어 오셨다는 시각에서 평가해야 한다.
우리 앞에서 하나님이 그의 나라를 이루고야 말 것이며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고 이루어져 가고 있는 동적인 신앙을 가지고 그런 의미의 진지함과 엄숙함,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
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
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
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
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
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
:50-58)”
우리는 결국 완성된다. 그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하나님이 완성하시고야 말 것이다. 그런데 신자의 갈등은 그렇게 되고야 만다는 성경의 약속과 현실적인 나와의 차이에 있다. 그 공백의 자리가 성령이 등장하는 자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
에 주셨느니라(고후 1:21-22)”
성령께서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의 나라를 완성하시는데 있어서 가장 주된 대상인 우리를 그 나라에 걸맞는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가신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우리를 꺼내신 집념과 같이 능력과 지혜로 우리 자신을 내적으로부터 변화시키는 작업을 하시는 것이 성령강림의 골자이다. 그가 보증인 이유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변화가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우리 쪽의 확인인 것이다. 하나님 쪽에서 보자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실패할 수 없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
님이시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
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고후 5:5-7)”
주신 이가 하나님이시다. 이 일을 시작하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결과를 이끌어 내실 분도 하나님이시다. 성령이 내게 와 계신 것으로 보아 실패가 아닌 성공한다는 증거로 삼고 성령님이 실제로 변화시켜 주실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약속이다.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
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롬 7:5-6)”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
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
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
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
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
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
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1-9)”
성령이 우리 안에 와 계시면 내가 그 성령을 좇느냐 안 좇느냐 하는 것을 묻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내게 와 있으면 나는 영에 속한 자이고 영에 속한 자는 하나님 편에 선 자라는 것이다. 여기서 신자의 존재론이 나온다.
신자는 어떤 의미에서는 이중 인격자이다. 자기 자신이 있고 하나님 앞에서 나를 나 되게 하는 성령으로 말미암는 존재가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취급하시는가 하면 성령께서 하시는 것으로 나를 보신다.
하나님은 성령께서 하신 일을 그 분 혼자 하신 것으로 보지 않고 내가 같이 했다고 보아 주셔서 그것을 나누지 않고 성령을 나에게 보내셨기 때문에 성령이 하시는 기도, 생각, 한숨, 하신 일들을 내가 한 것으로 취급해 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신자의 존재론이다. 실제로 성령은 우리를 대언하며 우리 대신 우리 몫을 하나님 앞에서 하시며 동시에 우리를 변화시켜서 성령이 우리를 전부 사로잡을 때까지 우리를 그냥 두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
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
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
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기
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
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
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6-11)”
예수 믿는 과정을 잘 살펴 보라. 예수를 우리가 언제 믿게 되었는가 하면 개인의 이성이 동의할 때부터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우리 마음에 오신 성령이 하나님 편을 들어서 신자가 된다.
생명은 무럭무럭 크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와 계셔서 우리를 주장하시고 우리도 모르는 것을 우리를 위해 대신 기도하시며 안타까와 하시며 우리 인생에서 사소한 부분까지 간섭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사람으로 바꾸어 가고 간섭하고 인도해 가고 다듬고 완성시켜 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성령강림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얼마나 복된 사람인가 그래서 고린도전서 2장은 이렇게 이야기를 맺는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
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
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
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 2:11-16)”
우리가 지금 하나님 안에서 누리고 있는 자녀라는 신분과 성령이 우리 안에 와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특권인가 완성을 향한 놀라운 현실적인 과정이며 엄연한 사실임을 기억하고 다시는 절망하지 말자.
더 많이 항복하고 깨우침을 받고 우리의 모든 정성을 모아 성경이 요구하는 것과 같이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며 악에게 지지 말며 그 나라가 오기를 고대하고 거룩하고 아름답게 우리가 우리된 복락들, 영광들을 다듬어 나가며 승리하는 신앙생활이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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