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구원받은 기쁨으로 주의 사랑을 전하자 (행 16:16-34, 계 22:13-17, 요 17:20-26)

첨부 1


좋은 일을 하고 나서 칭찬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욕을 먹 거나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좋 은 일이라 생각하고 일껏 용기를 내어 한 일인데, 다른 사람 이 나타나서 칭찬을 해주기는커녕 야단을 치거나 나무라게 되면, 그토록 맥빠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인 자신이 생각하기를, 정말 좋은 일이라는 확신 을 갖고 한 것이라면,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한다고 해서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특히 주의 일을 하다가 고난을 당하고 욕을 먹게 될 경우, 조금치도 괘념할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 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고 마5:10-11에서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무슨 일을 하 다가도 조금 싫은 소리를 듣게 되면, 하던 일을 그만둘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그 일이 진실로 스스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이목을 생각하고 하는 일이었기 때 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인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과 실라는 정말 애매한 일로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욕설을 얻어먹은 것은 양념에 불과했고, 옷을 벗겨진 채 사정없이 내 리치는 채찍을 맞아 등이 벗겨져 피가 흘렸다고 22절과 23절 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제일 안쪽에 있는 깊숙한 감방 에 차꼬가 채워진 채 갇히게 되었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이었까요 그것은 어이없게도 어느 귀신들 린 여자를 고쳐 주었다는 이유로 그처럼 큰 곤혹을 치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온전치 못한 여자를 깨끗하게 해주고서 치 르는 고난치고는 너무나 혹심했습니다. 한편 생각하면 억울하 기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또 억울하다 거나 분하게 여기지를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의 이 름으로 그 여자의 병을 고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정말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있으면 서도, 원망과 한숨 대신, 기도와 찬송을 주께 드릴 수 있었습 니다.

바울과 실라를 감옥에 가두게끔 고발을 한 사람은, 귀신들 린 여자를 이용하여 점을 쳐서 돈을 벌어먹던 불한당이었습 니다. 그 불한당은 전혀 엉뚱한 죄목으로 사도들을 법정에 고 발했습니다. 도시에서 소란을 일으켰으며, 잘못된 풍속을 전 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처럼 엉뚱한 죄목으로 억울하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찬송을 부르며 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①그들의 몸은 비록 감옥에 갇혀 부자유했으나, 그들의 마음 과 생각만은 너무나 자유스러웠습니다. 진실로 그들은 주 예수 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진이 일어나서 감옥 문이 열렸으나 도망 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이 세상의 아무 것도 그 들을 얽어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몸은 자유롭습니다. 그렇지만 그 마 음과 생각이 이것저것으로 구속되어 부자유한 경우가 많습니 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그와 정반대였던 것입니다.

정말 예수를 잘 믿으면, 바울과 실라처럼 자유로운 자가 될 수 있습니다.

②바울과 실라가 옥중에 있으면서도 찬송을 부르며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이 그들과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 다.

사람이 그 누구를 이것저것으로 구속하고 묶어 놓으며 외 부와 차단시켜 놓아도, 주님의 접근만은 막아낼 수가 없습니 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것은 너무나 많습니다. 신분 과 계급, 학력과 나이 등, 별의 별 것들이 다 사람의 관계를 불편하게 하고 갈라지게 합니다. 하지만, 주 예수를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면, 그 모든 사슬들을 끊어 버릴 수가 있습니 다. 그것은 주님이 그 모든 것들과 상관없이 진리 안에서 살 려는 사람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③그렇기 때문에, 진실로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 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쁨과 평화를 누릴 수가 있는 것입 니다.

아무리 예수를 잘 믿는다 할지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 려움을 당하게 될 때 좌절이나 절망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 다. 좋은 일 한다고 했는데,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고 욕만 바가지로 먹게 되면 낙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하여 고통스러워할 때에, 주 님이 바로 우리 곁에 계셔서 함께 괴로워하시고 위로해 주신 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큰 힘이 됩니다. 그래서 다시금 용 기를 얻고 기쁘게 찬송을 부르면서, 새롭게 일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1.별 것도 아닌 일에 스스로를 얽어매 놓고 부자 유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옥 아닌 감옥에서 주의 기쁨과 평화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이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아니하고 참 자유를 누리는 것이라면,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 본래의 사명을 다 하고 사는 것이라면, 그것을 방해하고 부자유하게 하는 것은 ①외부 환경보다는 자신의 내부에 더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단적인 예로, 바울과 실라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생각할 때 도저히 찬송을 부를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외부 환경에 구애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찬송을 불렀던 것입 니다.

오늘 우리의 형편을 돌아보면, 그다지 억압하는 외부 여건 이 별로 없습니다. 문제는 내 마음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갇혀 있던 그 감옥의 간수는, 지진이 나자 잠에서 깨어나 문들이 다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죄수들이 다 도망친 줄 알 아서 그만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바 울과 실라는 아예 도망칠 생각도 않고 있는데 말입니다.

냉정하게 자신의 형편을 돌아보고 문제의 해결점을 찾으려 하기보다, 우리는 즉흥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때가 참 많습 니다. 더군다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조용히 기도하는 가운 데,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려야 합니다. 함에도 불구하고, 인간 적인 판단에 따라 스스로의 마음을 괴롭히고 부자유하게 하 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문밖에 남아 있어 서 슬피 울 자는 「하나님을 떠난 자, 마술사, 부도덕한 자, 살인자, 우상 숭배자,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자」라고, 계시 록 22장 15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지 않고, 자기 멋대로 판단 하고 죄에 빠진 자들입니다.

②물론 외부 환경에 의한 구속도 있습니다.

바울에게 고침 받은 그 귀신들렸던 여인도 그런 예에 속합 니다. 자신이 원치 않는 일에 얽매여 부자유한 생활을 하면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직장이나 사회 제도가 우리로 하여금 부자유하게 하고, 친 척이나 친구 관계가 우리를 구속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 기가 원치 않는 일을 부득불 해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③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우리가 부자유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은 진리를 떠나 살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의 갈등으로 인한 부자유나 외부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도, 결국은 진리를 떠나 살기 때문입니다. 요8:32에 「진 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고 했습니 다.

오늘 우리는 진리를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바로 알지 못하는 까닭에 부자유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부자유한 삶 을 살게 되면, ①기쁨이 없습니다. 사도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간수는,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을 온 가족과 함 께 기뻐했다」고 했습니다(행16:34).

②평안을 모릅니다. 바울과 실라가 옥중에 있으면서도 누렸던 그 평안함이 없는 것은 참 자유를 얻지 못한 까닭 입니다. 다시 말해서 진리가 그 안에 온전히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③사랑을 모릅니다. 지난 시간에 배운 루디아라는 여 인도 구원함을 받아 자유와 기쁨이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도들을 정성스럽게 대접했던 것입니 다. 오늘의 말씀에서도, 구원받은 간수가 사도들을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음식을 대접하면서 성도가 된 것을 기뻐 했다고 했습니다.

결국 이웃을 진심으로 섬기며 사랑할 수 있는 것도 구 원받은 기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행16:34). 그런데, 진 정으로 구원함을 받지 못한 사람은 이러한 기쁨이나 자유 를 알지 못하는 까닭에,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왜 예수를 믿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믿는 것이 과연 예 수를 진실하게 믿는 것일까요 말할 것도 없이, 예수를 믿 는 것은 구원함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구원이란 무엇을 말 합니까 그것은 자유입니다. 완전한 자유입니다. 이 자유 는 주님을 알고 진리를 따라 살아야 누릴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있는 말씀을 보면, 사도들은 진정으로 구원 함을 받아 그 자유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유 는 무엇을 위하여 써야 하는지 잘 알고, 그들은 열심히 복 음 전도에 힘썼던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세상 것에 얽매여 사람 구실을 제대 로 못하고 있는 이들을 찾아 오셔서 구원의 진리를 가르 쳐 주시고, 그 진리를 받아들이는 자와 함께 하셔서

2.구원의 기쁨과 평화, 그리고 사랑을 맛볼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이제 제가 들려 드리는 이야기는 〈순례자〉라고 하는 어느 교회 주보에 실린 글입니다.

K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강연을 들으 면 언제나 힘이 있고, 그의 얼굴에는 항상 미소를 잃지 않 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무수성괴사(뼈가 썩어 들어가는 병)라고 하는 병을 앓고 있는 환자입니다. 그의 병은 16세 때, 그 의 몸에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손톱은 뿌리부터 곪아 무서 운 통증이 날마다 계속되었으며, 이빨은 흔들거리며 하나 둘씩 빠져나갔습니다.

스물 살이 되었을 때, 그의 체중은 22Kg까지 떨어졌으 며, 혈압은 60-30 정도, 수혈로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면서 원망과 저주로 고독한 투병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삶에 대전환이 일어났습니다. H라는 사 람과의 만남이 그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 H라는 사람은 그에게 질문하듯 말했습니다.

"아니, 온 몸을 앓고 있다고 들었는데, 손은 움직일 수 가 있지 않은가" "눈은 잘 보이는가" "귀는 잘 들리는가" .............

H 씨의 질문은 연달아 튀어나왔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 이 "걱정할 것 없소. 당신 몸은 90%가 정상이지 않소!" 온 몸이 아프다고는 하지만 자세히 따져 보면 아픈 것 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는 대발견이 K의 인생을 새롭 게 시작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뜻밖에도 썩어 가던 손톱이 새로 돋아나고 머리 카락도 다시 났으며, 극심하던 통증도 점차 약화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그를 지배하고 있던 난치병이 활동을 중지한 것입니 다.

그래서 그는 훌륭한 교수가 되었고, 아주 좋은 강연으 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가 그토록 감동 깊은 강연을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그 처럼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불행이나 고 난을 주의 뜻 안에서 새롭게 받아들이면, 보다 더 값진 것으로 변환시켜 주시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10%도 안되는 부정적인 면을 너무 의식하 는 편이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10%도 안되는 긍정적 인 면을 더 귀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K라는 사람은 10%가 아닙니다. 90%나 되는 온전한 부분이 있었건만, 그 나머지 10%의 불완전한 것에 얽매인 나머지,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질 뻔 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아 주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다」고 마17:20에서 말씀하고 있 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주 형편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 믿음을 근거로 해서 새로운 구 원의 역사를 펼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비록 이 세상 에서 정말 형편없는 죄인일지라도, 지금 주께 돌아와 겸손 히 엎드리면 우리에게서 좋은 점을 기어이 찾아내시고 그 것을 빌미로 해서 당신의 자녀 삼으실 줄로 믿습니다.

요17:23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를 이 땅에 보내 신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신다 는 사실을 알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초청하고 계신 것입니 다. 「목마른 사람은 누구든지 와서 생명의 물을 거저 마 셔라(계22:17)」하고 말입니다. 그 물을 마시면, 자유와 기 쁨을 누립니다. 평안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셔서 주신 이 진리의 생명수를 기쁨으로 마시게 되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까 지도 구원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번에는 루디아가, 이번에는 감옥의 간수가 예수를 영접하니, 온 가족이 함께 세례를 받고 또한 온 가족이 함께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결국은 나 하나가 온전히 예수를 영접하게 되면, 나 자 신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구원함을 받는 역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모르면 그것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게 되면,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 가 얼마나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알면 알수록 더욱 큰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은혜가 우리 안에서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3.구원받은 기쁨으로 주를 찬미하며 살수 가 있습니다 「나 주께 왔으니 복 주시옵소서 주 함께 계시면 큰 시험이기네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주께 왔사오니 복주옵소서」(500장2절) 예수를 믿고 구원함을 받게 되면, 모든 시험이나 환난을 극복 하고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혹 우리에게 부정적인 측 면이 90%이상일지라도 우리가 주님께 진심으로 돌아오면, 하나님은 우리의 나머지 10%를 가지고 새로운 역사를 일 으키실 수가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구원의 역사입니다. 불완전한 우리를 온전케 하 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주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신 것도 우리를 구원코자 함이요, 다시 부활하신 것도 우리를 구원하고자 함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은혜를 입어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습니 다. 그 구원받은 백성이 계속 해야 할 일은 ①주께서 주신 자유와 기쁨을 누리면서, 날마다 주를 찬 미하며 살아야 합니다.

입으로만 아니라, 우리 몸짓으로 주를 찬미해야 합니 다. 우리의 얼굴로 주를 찬미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활 전 체로 주를 찬미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의 증 거가 되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거짓됨이 없어야 하고, 부도덕한 생활을 버려야 합니 다. 그야말로 진실된 생활을 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②더욱 열심히 예복을 빨아야 합니다.

계22:14에 「생명 나무를 차지할 권세를 얻고 성문으로 들어가려고 자기 예복을 깨끗이 빠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예복이란 하나님의 계명을 말합니다. 그러 니까 예복을 깨끗이 빤다는 말은, 하나님의 계명을 열심히 지 킨다는 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주의 계명을 열심히 지키는 것은 의무 이기보다는 권리요, 백성된 이가 자랑스럽게 지켜야 하는 우리의 계명인 것입니다.

③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해야 할 일은 주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 됨이 없으면 구원받은 평화가 지속될 수가 없습니다. 물론 말씀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개 인의 생각이나 주장으로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 안에 있습니까 예수님은 요17:26에서 「주께서 사람들로 하여 금 하나님을 알게 하려는 것은 그들 안에 하나님의 사랑 이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랑이 우리 안에 충만하고 그 사랑으로 우리 모두 하나가 될 때, 구원받은 기쁨과 평화가 우리를 주장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복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 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