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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 강림과 한국 교회1 (행 0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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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단락 구분

오순절에 임한 성령사건과 베드로 설교의 서론적인 내용만을 포함한 사도행전 2:1-21까지를 한 단락으로 구분한 것은 얼핏 보면 자연스럽지 못한 듯한 감이 있다. 성령강림 사건만을 한 단락으로 하고 베드로 설교의 전문이 또 다른 단락으로 다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여기서는 성령사건과 그 파동으로 인하여 시작된 베드로 설교의 서론격인 일부분만 잘라 포함시킨 것은 외적으로 보면 연속성이나 일관성이 부족한 듯하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지닌 중요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말하는 저자의 해석학적 의도가 본 단락의 후반부인 16-21절을 통하여 드러나는 내적 연관성 때문에 사도행전 2:1-21절의 내용을 한 단락으로 구분하는 것도 무관하다.

Ⅱ. 본문 사역

1 오순절 날이 되었을 때 그들은 모두 한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2 갑자기 하늘로부터 폭풍 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가 그들이 앉아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3 그리고 불꽃같은 혀들이 나뉘어 그들에게 나타나고 그들 각 사람 위에 머물렀습니다.
4 그러자 모든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하여졌고 성령이 그들에게 말하게 하는 대로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5 세계 각 나라들로부터 온 경건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6 이 소리가 났을 때에 군중이 모여들어 어리둥절하였는데 그들은 제각기 자신의 언어로 사도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7 그들은 놀라고 이상하여 말하기를 어찌된 일인가 말하는 이 사람들이 모두 갈릴리 사람들이 아닌가
8 우리가 어떻게 각각 우리가 태어난 지방의 언어로 들을 수 있단 말인가
9-11 바데 사람, 메대 사람, 엘람 사람,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유대, 갑파도기아, 본도, 그리고 아시아, 10필리기아, 밤빌리아, 이집트, 크레네의 리비아 지방에 사는 사람들, 또 임시 로마에 거주하는 11유대사람들과 개종한 사람들과 크레테와 아라비아 사람들인 우리가 그들이 우리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 것을 듣고 있다니!
12 모든 사람들이 놀라고 이해할 수 없어서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하고 서로 물었습니다.
13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조롱하여 "그들이 새술에 취하였다"고 말했습니다.
14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함께 일어서서 그의 목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유대 사람과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이여, 이일을 여러분에게 설명하겠으니 나의 말을 잘 들으시오.
15 지금은 오전 9시이니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 사람들은 술 취하지 않았습니다.
16 그러나 이것은 예언자 요엘을 통하여 말해진 바입니다.
17-21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날에 내가 나의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을 것이다. 너희의 아들과 딸들은 예언할 것이고 너희가운데 젊은 사람들은 환상을 볼 것이고 늙은 사람들은 꿈을 꿀 것이다. 18그날에 내가 나의 남여종들에게 내 영을 부어줄 것이며 그들이 예언할 것이다. 19내가 위로 하늘에는 기적을 아래로 땅위에는 표적을 줄 것인데, 곧 피와 불과 자욱한 연기다. 20주의 크고 영예로운 날이 오기 전에 해는 어두움으로 달은 피처럼 변할 것이다. 21그리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받을 것이다."

Ⅲ. 원문비평

이 단락이 갖는 여러 원문비평적 문제 중에서 UBS 비평판 헬라어성경 제3판의 각주에서 제기한 내용만을 다루고자 한다.

< 5절 >

`경건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었다' 표현이 여러 사본에 다양하게 나타난 점이다. [에산 데 에이스 예루살렘 카토이쿤테스 유다이오이 안드레스] 가 A B외 많은 사본들에 나타나는 내용이다. C사본에는 가 문법적으로 잘 조화되는 [에이스]으로 대치되어 [카토이쿤테스 엔 예루살렘 안드레스 유다이오이] 로 어순이 뒤바뀌어 나타나고 [유라-베이스]가 생략되었다. 제기되는 질문은 누가는 본래 [에이스]로 썼는데 고전 희랍어의 문법에 맞도록 필기자들에 의하여 [에이스]으로 대치되었는가 아니면 누가는 본래 [에이스]으로 썼는데 필사자들이 변화하는 어법의 추세를 따라 [에이스]로 고쳤는가인데 누가복음서나(4:23; 44; 21:37) 사도행전에서 (7:12; 8:40; 9:21 등등) 누가가 사용한 어법을 참고할 때는 [에이스]가 본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본 절에서 제기되는 또 다른 문제는 [유다이오스와 관련된 것이다. D사본에는 [유다이오스 안드레스]로, E사본에는 [안드레스로 유다이오스] 기록되었고, 알렙 사본에는 katoikounees andres eulabeis로 [유다이오]가 나타나지 않고 C에는 [유다이오스 카이토이퀴네데스]로 E사본에는 [ 유다이오스 카이토이퀴네데스 ]로 J603사본에는 [카이토이퀴네데스 유다이오스]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수많은 사본들이 보여주는 대로 [유다이오스]는 본래적인 것이었으나 이 단어가 [아프로 판도스 에데누스]이란 말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생략했거나 표현을 자연스럽게 하기 위하여 위치를 변경하였을 것으로 본다.

< 7절 >

문제는 [레곤테스]로 된 사본 외에 [레곤테스]의 앞에 또는 뒤에 [프로스 알레우스]를 첨가하여 차이를 보이는 사본들 때문에 제기된다. [레곤테스] 만으로 된 사본은 P74 A B C 크리소스톰 등이며, [레곤테스 프로스 알레우스]로 된 사본은 C D E 외 여러 사본과 어거스틴이고, [프로스 알레우스 레곤테스]로 된 사본도 있다. 그러나 사도들이 말하는 것을 보고 놀라고 이상히 여긴 그들이 그들의 놀람과 의아함을 말할 때 서로간에 말하는 것이므로 [프로스 알레우스]의 첨가는 필기자들의 삽입한 전형적인 예로 보인다. 만일 [프로스 알레우스] 가 본래적이라면 이를 삭제할 까닭이 없이 때문이다.

< 16절 >

대부분의 사본들이 [프로페투 요엘]또는 [요엘 프로페투]의 형태를 취하는 반면에 서방사본 (D, 이레네우스, 어거스틴 등)은 [요엘]을 가지지 않은데 이는 우연한 탈락으로 간주된다.

< 18절 >

P74 A B C E P 등 대다수의 사본이 [엔 타이스 헤메라이스 에케이나이스]로 된 반면 D와 그 외 사본에서 이 구절이 생략되었는데 이는 필기자의 실수이거나 아니면 17절에 [엔 타이스 에스카타이스 헤메라이스] 가 있기 때문에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필기자의 의도적인 삭제로 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가지고 있는 대다수 사본들의 정당성이 보다 유력한 것으로 보인다. [카이 프로페튜수신] 이란 구절이 [엔 타이스 헤메라이스 에케이나이스]를 보유한 사본들에는 동일하게 나타나는 반면 그것을 삭제한 서방 원문에는 이 구절 역시 보이지 않으며 이 생략된 것은 70인역에 일치하는 내용이다. UBS Greek New Testament 편집위원회는 70인역이나 히브리 원문과 일치하지 않는 편이 보다 원래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다.

< 19절 >

[하이마 카이 퓌르 카이 아트미다 카프누]가 사본에 따라 있고 없다. 이 구절이 p74, A B C E P D등의 사본들에 나타나지만 서방사본에는 생략되었다. [하이마 카이 퓌르 카이 아트미다 카프누]표현이 오순절 사건과 연관이 없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생략하였거나 아니면 실수로 빠트렸을 것이다. UBS Greek New Testament 편집위원회는 여러 사본들이 [하이마 카이 퓌르 카이 아트미다 카프누] 구절을 보유하였기 때문에 그 정당성을 인정하였다.

Ⅳ. 본문의 문학적 고찰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보내는 처음 글인 누가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처음부터 정확하게 조사하여 하늘로 올라가신 때까지 그의 행하시고 가르치신 모든 것을 기록하였고 두번째 보내는 사도행전에서는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성령강림사건으로 교회가 탄생하고 교회가 땅끝까지 주님의 증인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실을 기록하였다. 누가에게 있어서 성령강림 사건은 사도행전에서 그의 이야기의 진짜 시작이다. 누가의 관점에서는 하늘로부터 임한 성령의 권능만이 단순한 어부를 두려움 없는 복음의 사도로 변화시킬 수있고 로마 전제국에 교회를 세우는 복음전도자가 되게 하고 이름 없는 유대종파를 30년이란 짧은 시간동안에 세계적인 종교로 바꿀 수 있었다.

누가는 오순절 사건을 묘사함에 있어서 상징과 생생한 묘사로 그 중요성을 전달한다. 이것은 사도 공동체의 절대적인 종교적 경험이었다. 누가는 하나님의 성령이 제자들에게 '바람'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불'로 임하였고 그 결과는 언어의 장벽을 깨고 모든 민족을 일치시키는 복음전파의 시작으로 상징화시킨다. 사도행전 저자와 요한복음 저자 사이에 성령의 오심에 대한 내용의 차이가 보인다. 요한복음 저자에 따르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평안을 기원하시고 제자들에게 숨을 내뿜으시면서 "성령을 받으라"는 명령과 함께 성령을 부여하셨다 (20:22). 그러므로 성령은 오순절 이전에 제자들의 마음과 생각 속에 활동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누가는 교회의 탄생과 그 사명을 수행하게 하는 성령의 강력한 능력과 은사가 오순절에 주어진 것으로 확실하게 묘사한다. 누가는 또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오순절과 성령의 오심을 결합시키므로 성령이 오신 신학적 의미를 강화시킨다.

사도행전의 목적이 최초의 성령 부음과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입증하는 최초의 기적에 대한 신빙성 있는 보도를 제시하는 것이든, 그리스도교 복음 전파와 교회의 부흥, 즉 지상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협력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건들만 기록하려는 것이든, 아니면 임박한 종말에 대한 기대와 확신이 불투명해진 초대교회가 새롭게 그 정체성을 정립해야 할 결정적인 필요에 직면하여 임박한 종말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교회가 지상에서 계속 남아 활동하는 시기를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성취되는 기간으로 보는 새로운 이해 속에 교회를 인도할 목적에서 기록하였든, 어느 경우든 본문은 누가에게 있어서 사도행전을 쓰는 목적을 드러내는 핵심자료이다. 다시 말해서 성령강림 사건은, 교회역사 기록의 목적을 위해서나, 교회형성과 그 사역에 하나님의 개입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위해서나, 또는 성령의 충만을 통한 증인사명을 수행하는 일이 교회의 나아갈 길임을 보여주는 교회안내의 목적을 위해서, 한결같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사도행전의 머릿돌과 같은 중요한 내용이다.

Ⅴ. 본문 이해

< 1절 >

오순절이 되었을 때 [엔 토 쉼프레루스타이]. 누가는 이곳과 누가복음 9:51절에서 [엔 토]와 [쉼프레루스타이](완전히 채우다, 가득 채우다) 동사의 현재 수동태 부정사를 함께 사용하여 한 기간이나 시점을 나타내었다. 예수께서 스스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결심하신 것은 `하늘에 올라가실 날이 찼기' 때문이라고 할 때 동일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표현은 마치 갈라디아 4:4 "때가 차매" `프레루스타이 토우 크로누'를 연상케 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정해진 때를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듯하다.
오순절은 유대교에서 유월절, 초막절과 함께 삼대 절기의 하나로 레위기 23:15-16절에 따르면 유월절 안식일 다음날로부터 50일 되는 날에 지키는 절기로 대개 시반월 16일 (5월 말이나 6월 초)에 해당되고, 칠칠절 (출34:22,신16:10)이라고도 하며 처음 수확한 밀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 제사 드리는 절기이므로 맥추절 (출23:16) 또는 `첫 열매의 날'(민28:26)이라고 불렀다. 더 나아가서 출애굽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율법이 주어진 사건을 기념하는 의미 있는 날이기도 하다. 이러한 유대인의 오순절은 본문에 나타난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교회에서도 중요한 절기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사건이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임을 능력과 확신으로 선포할 수 있는 증인공동체를 만든 성령강림의 결정적인 사건이 오순절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한 곳에. 사도공동체에 성령이 임한 장소가 어디인가 하는 문제는 함께 모인 사람들의 범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한곳에 모인 공동체는 1:13-14절에 나타난 핵심적인 제자들이라고 볼 수도 있고 1:15절에 나오는 120명의 그리스도인들로 생각할 수도 있다. 제자들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여인들과 그 외 신실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며 마음을 같이하여 전심으로 기도에 힘썼다(1:13-14). 본 절에 `그들이 한곳에 있었다'는 것은 앞에서 언급된 상황의 계속 내지는 강화로 볼 수 있는데 이들은 몸만이 아니라 마음과 뜻과 소원의 연합과 일치 속에 함께 모인 것이다. 이들이 1:13-14절에 언급된 사람들이라면 모인 장소는 마가 요한 집의 다락방일 것이다. 그러나 1:15절에 밝힌 120명이라면 이 장소는 마가의 다락방일 수 없고 솔로몬 행각과 같은 성전 안에 있는 어떤 장소일 것이다.

< 2절 >

하늘로부터.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는 제자들에게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이 오지 않는다면 겁많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이들이 어떻게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증거하겠는가 초월적인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는 그들에게 불가피하게 요청되었다. 하늘로부터 임한 폭풍같은 소리가 그들이 앉아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불가항력적으로 완전히 그들을 사로잡고 지배한 사실을 묘사한 것이다.

폭풍 부는 것 같은 소리. 신구약에서 바람은 하나님의 영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에스겔이 골짜기의 마른 뼈들에게 바람이 불 것을 명하였는데 그 바람은 마른 뼈들을 하나님의 군대로 살리는 하나님의 생기였다 (겔37:9-14). 예수님께서도 니고데모에게 바람을 하나님의 영으로 비유하여 영으로 거듭나는 사실을 설명하셨다. 제자들에게 성령의 강한 능력이 임하는 청각적인 영적 경험은 성령의 약동하는 능력의 상징으로 이해하는 외에 분명하게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3절 >

불꽃같은 혀. 직역이지만 실상은 혀모양으로 날름거리는 강한 불길을 묘사한 것이다. 성령강림의 외적 현상은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와 함께 눈으로 볼 수 있는 혀 모양으로 갈라진 불길이 각 사람에게 임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임재나 위엄과 능력을 표상하는 불은 바람과 함께 강력한 힘으로 임재하는 성령의 상징이다. 본 절에서 각 사람에게 성령의 불길이 임했다는 것은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임재하셨다는 것을 의미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강한 위엄과 능력이 그들에게 임하여 그들을 완전히 사로잡고 감동하신 것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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