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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포스트―다빈치 코드 시대를 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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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다빈치 코드에 이어 영화 다빈치 코드가 상영되고 있다. 그간 교계의 영화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은 기각되었고 1인 시위를 통해 소설의 위선을 고발하는 등 진리 수호를 위한 행동도 있었다. 또한 ‘소설은 역사를 바꿀 수 없다’는 식의 비판도 있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 있다.
우리는 역사에서 시 한줄,소설 한편,노래 하나가 시대를 바꾼 사례를 알고 있다. 그것은 작품 자체가 위대해서라기보다 그 작품을 통해 동시대인들의 정서가 응집되고 폭발된 이유에서다. 그래서 작품 하나가 시대적 감성의 통로가 될 때 엄청난 결과를 낳는다. 이 점에서 소설은 소설이고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방관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다빈치 코드는 진실을 왜곡했지만 시대적 상징성을 띠고 있어 단순하지 않다. 그 상징성이란 이렇다고 본다.

첫째, 종교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는 것을 뜻한다. 종교는 터부의 절대 성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일을 의심해 보는 시대가 된 것이다. 둘째,문화의 게릴라들이 광활한 문화의 블루 오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힘과 권력으로,제도와 체제로 막을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게다가 거기는 누구도 어떤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신대륙과 같은 곳이다. 셋째,또 다른 무혈혁명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이성에 대한 감성의 혁명,제도에 대한 정서의 혁명,좌뇌에 대한 우뇌의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교계는 그동안 신학적 논리,제도적 교회에 의존해왔다. 앞으로는 기성의 신학계에서 고민하지 않았던 질문들이 쏟아질 것이다. 기성 교회에서 의문시 하지 않았던 생각들이 터져나올 것이다. 기성 크리스천들이 당연시했던 교리와 신앙에 대한 궁금증들이 봇물 쏟아지듯 등장할 것이다. 과거처럼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라’고 나무랄 수만은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오른쪽 뇌는 우리에게 감성적으로 질문하고 감성적으로 대답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성이 개념과 논리,합리성을 내세워 교과서적인 답을 주려 했다면 감성은 정서 느낌 직관 이미지 상상력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벧전 3:15)들에게 진리의 복음이 피부에 느껴지고,손에 붙잡혀지고,마음 속에 그려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프랜시스 셰퍼가 말했던 ‘문화적 변증’을 육화(肉化)해야 하는 것이다.
/추태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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