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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 강림과 한국 교회2 (행 0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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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오심과 그 능력을 덧입는 일이 처음 그리스도교회의 성립과 그 선교사명 수행에 필요조건이었다면 그것은 오늘 모든 교회를 위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우선적으로 오순절에 사도 공동체에 성령이 오실 수 있었던 상황과 성령이 오신 목적과 그 결과가 무엇인가를 살피고 그것을 현 교회현실에 조명해 보면-우리가 주님이말씀을 듣고 순종할 의지만 있다면-본문이 오늘교회에 주는 말씀의 내용은 확실하다.

첫째, 약속된 성령께서는 사도공동체가 함께 모인 곳에 강한 위험과 권능으로 임하셨다. 주님을 사랑하여 갈릴리로부터 온 여인들과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신실한 사람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전심으로 기도에 힘쓰고 있었다 (1:13-14). 당시 이 공동체가 얼마나 깊고 강한 응집력을 가졌는가를 우리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한 성령을 기다리고, 성령의 권능 받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기 위하여 이들은 혼연일체가 되어 전심으로 기도하는 상태로 열흘간이나 몰입하였다. 2:1절에 `그들이 한곳에 있었다'는 표현은 문자 그대로 장소뿐만 아니라 모든 차원에서 같은 위치에 유기적으로 존재하였으며 하나같이 하나님과 주님만을 생각하고 바라보았다. 제자 서열상 누가 더 먼저인가를 다투던 사도들이 이제는 모든 신자들과 함께 일체가 되어 주의 약속이 성취되기만을 기도하였다. 이것이 성령께서 폭풍과 불같은 위엄과 권능으로 임하실 수 있는 준비된 상태이다.

이에 비추어볼 때 전체적인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각 교단적으로 또는 노회적으로 교회들은 어떤가 우리는 모두 한 곳에 있는가 개교회 형편은 어떤가 개교회적으로는 전 교인이 한곳에 있는가 만일 한 곳에 있다면 어떤 곳에 있는가 초대교회의 모체가 되었던 그 공동체가 있었던 그 곳에 있는가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은 우리 각 사람과 우리들이 속한 교회에 오시기를 원하신다. 성령께서 능력과 권세로서 우리들의 교회에 임하실 수 있도록 모두가 한뜻으로 한곳에 모이기를 노력하자.

다음으로 성령께서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므로 성령충만을 위하여 기도하는 우리들의 의도를 조명해 보자. 본문 2:11을 보면 성령의 임재로 말미암아 사도들은 '하나님의 큰 일'선포하게 되었다. 누가는 우리가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할 우선적인 당위를 주님의 증인이 되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데서 발견한다 (행 1:8). 이러한 성령활동의 주요목적은 요한복음 15:26절에도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다"라고 명시되었다. 이처럼 성령의 주된 사역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이란 사실은 사도행전의 모든 내용에서 확인된다. 물론 성령은 신자 각 사람에게 오셔서 그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도록 역사하시고 보증하시지만 성령의 능력과 권세로 임하는 성령의 충만함은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도의 복음증거를 위한 목적에서 주어지는 것이 확실하다. 오늘 교회지도자나 신자들이 성령의 충만을 기도할 때 그 목적이 자기중심적인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바른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함인가 많은 지도자들이 목회의 성공을 위하여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간구하고 또는 수없는 신자들이 신앙을 통한 축복과 성공을 소원하면서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구하는 것은 그 자신의 지도력이나 성공의 비결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대로 전하기 위한 소원에서인가

세번째로 오순절 성령이 오신 결과는 무엇인가 큰 바람소리를 듣고 불길이 각 사람에게 임하는 것을 본 사도들의 주관적 경험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가 사도들의 엑스타시(ecstasy) 경험은 분명히 성령이 오신 결과이다. 그러나 그 현상은 다른 목적을 위한 과정일 뿐이다. 성령이 사도들에게 임하신 진정한 결과는 사도들이 각각 다른 언어로 하나님이 행하신 큰 일을 말하게 한 것이며, 그들이 말한 내용을 세계 각 곳에서 모인 청중들이 자신의 고유한 언어로 분명하게 들을 수 있도록 한 사실이다. 우리가 외국인을 만났을 때 자신의 묻는 말이 통하지 않고 상대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의 장벽보다 안타깝고 답답한 것이 세상에 또 있겠는가 오순절에 오신 성령의 처음사역은 인간의 한계인 언어의 장벽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행하신 역사를 일시에 함께 알도록 하신 것이다. 즉 언어의 통일을 이루어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한 한 공동체가 되게 하신 것이다. 성령께서는 혼연일체가 되어 한 곳에 모인 공동체 위에 임하실 뿐만 아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통할 수 없을 만큼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될 수 없을 정도로 깨어진 관계들을 하나로 만드신다. 에베소 4:3에도 공동체를 일치시키는 성령의 역사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성령이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이러한 성령의 활동이나 그 오심의 결과에 비추어 이해한다면 오늘 우리의 교회현실은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시는 분으로서 활동하는 현장인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 안에서 우리 모두를 성령께서 평화의 띠로 하나가 되도록 묶어주시기를 간구하고 그러한 성령의 역사가 지속되도록 힘써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각하고자 하는 바는 성령께서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임하셨다는 사실이다. 예루살렘이 과거에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곳으로 시은소(施恩所)였을지라도 초대교회가 성립되던 당시 예루살렘은 형식은 남았으나 내용은 몹시 왜곡되고 율법의 본질에서 멀리 벗어난 유대교의 중심지이다. 바로 얼마 전에 종교 지도자들은 이곳에서 예수님을 박해하고 체포하고 부당하게 재판하여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어 하나님을 노엽게 한 장소이다. 이 예루살렘에 성령께서 오셨다. 그 오순절은 어떤가 절기의 모든 행사는 예수께서 극단적인 책망을 받은 타락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아예 성직을 자신의 세속적 부와 지위를 지탱하는 방편으로 사용하는 제사장들의 인도에 진행되고 있지 않는가 오순절 축제에 참여하기 위하여 국내외에서 온 순례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와서 제사 드리고 축제에 참여한 것으로 만족하고 위안을 삼지는 않는가 이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도둑의 굴혈로 만드는 행동에 아무런 느낌이 없는 사람들은 아닌가

이처럼 형식화된 유대교의 절기를 기점으로 하여 성령께서 교회를 탄생케 하신 사실은 무엇을 느끼게 하는가 비유적인 적용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이러한 아이러니컬한 사실에서 희망을 발견해야할 만큼 우리들이 이룬 교회는 변질되었다. 한국교회가 아무리 수없이 다투어 하나님을 노엽게 하고,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의하여 그 정체성을 상실할 위기를 맞아 교회답지 못한 현실일지라도 오늘 성령께서 오셔야 할 곳은 이 타락한 교회 외에 어디이겠는가 지도자들이나 신자들이 당시 유대인과 다름없이 하나님의 뜻을 힘써 복종치 않으면서 자기들의 영광과 만족만을 구하는 이 현실에서
한국교회의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그 오순절에 그 예루살렘에 강한 폭풍과 불길로 오신 성령께만 있다. 한국교회에 임하셔서 우리의 더럽고 부패한 죄악을 깨끗이 태우시고 새롭게 권능을 덧입혀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또 각각 흩어진 지도자들을 말씀 안에서 하나되게 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로 살리시는 성령님의 강한 임재와 역사 외에 이렇게 멀리 빗나간 한국교회의 희망은 어디에도 없다.
그 성령님께서 임하시기를 한마음으로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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