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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 충만한 교회 (행 02:3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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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땅위에 갈보리 교회를 세워 주신 지 9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한국에서는 드물게 독립 교회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갈보리 교회가 한국 교회의 모범적인 교회요, 세계에 자랑이 되는 교회가 되도록 우리 모두가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모범적인 교회가 어떤 교회입니까
아름다운 교회요, 생동하는 교회요, 전진하는 교회요, 빛을 발하는 교회요, 능력 있는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의 모습을 어디서 찾아 볼 수 있습니까 그것은 초대 교회에서 그 원형을 발견하게 됩니다.
9년 전 우리 교회가 시작하는 주일 제가 ‘초대 교회 같은 교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린 기억이 납니다.
초대 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초대 교회에 무슨 복잡한 조직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여러 가지 직분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어느 교단에 속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지나다 보니 이런 조직, 저런 기관, 또는 교단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한마디로 말하면 성령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저는 오늘 창립 9주년을 맞이하는 갈보리 교회를 설립하고 담임하고 있는 목사로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 갈보리 교회가 초대 교회같이 성령이 충만한 교회되게 하여 주옵소서.”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는 재벌이 출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권ㄴ력자도 출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굉장한 학자가 출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이 말은 교회에 재벌이나 권력자나 학자가 다녀서는 안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다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교회가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하려고 할 것이면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굉장한 예배당을 짓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놀라운 사업을 하는 것도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성령이 충만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두 가지 명령을 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명령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긍정적인 명령입니다. 긍정적인 명령은 부정적인 명령과 마찬가지로 권위를 가집니다. 기독교는 소극적이 아니라 적극적입니다. 부정적이 아니라 긍정적입니다.
술 취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빈 병에는 공기가 가득 들어있지만 그 병에 물을 담으면 병속에있던 공기는 물러나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둘 중에 하나로 차 있습니다. 세상의 것으로 가득 차 있든지 아니면 하늘의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를 내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을 받고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하나님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는 자녀의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지 아니하면 사랑해야 할 줄은 알면서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항상 감사하는 생활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인줄 알면서도 감사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 마음속에 항상 평화가 있어야 할 줄을 알면서도 실상은 마음속에 평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를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대로 할 힘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하면 엄격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필수 조건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를 간절히 원하지 않으면 이루어 질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기 전에는 만일에 우리에게 낡은 습관이 있으면 그 낡은 습관이 자꾸만 우리들을 그 전의 상태로 이끌어 내려가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성령 충만을 의식적으로나 혹은 무의식적으로라도 간절히 바라면 이 세상에 속한 육신의 정욕과 근심, 분노와 시기 같은 데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을 위해서는 죄에 대하여 예민해야 합니다.
죄라는 것은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순간적으로 소멸시킵니다. 우리 마음속에 어떤 죄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 곧 그 자리에서 회개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죄를 간직하고 있을 때 성령의 역사는 소멸되는 것입니다. 죄의 흉악한 얼굴이 우리 앞에 나타나려 할 때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죄의 용서함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보세요.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회개는 미루었다 할 것이 아니라 죄라고 느껴지는 그 순간 어디서든지 해야 합니다. 회개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오순절 날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아니하고 죄를 회개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우리에게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불의 혀와 같은 것이 임하게 되었고 모였던 120명의 문도들이 이 사실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성령이 충만한 사도 베드로의 설교가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그는 학교라고는 별로 다녀 본 일이 없이 갈릴리 바다에서 어부 생활로 잔뼈가 굵어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성령이 충만할 때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얼마나 권위가 있고 힘이 있고 감화력이 있었던지 듣는 사람이 그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죄를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회개가 무엇입니까 여기 신앙생활을 하신 지 얼마 되신 분은 회개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으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회개에 대해서 말을 하면 별로 관심이 없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실 것이 있습니다. 회개는 신앙 생활의 입문입니다. 회개의 문을 통과하지 아니하고는 신앙생활의 첫발을 내디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회개가 무엇입니까 원어의 뜻은 반성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다시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생각한다는 것은 먼저 생각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다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변화’를 의미하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정직한 사람이라면 ‘마음이 변화’할 때 자연히 ‘행동의 변화’가 따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이 두 가지 요소가 함께 내포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회개는 마음의 변화와 행동의 변화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변했다는 것을 무엇으로 압니까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 압니다. 마음은 착한데 행동이 나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 보세요. 사람이 먼저 마음으로 변해서 나쁜 일을 하려 하지 아니합니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여전히 육신이 옛날 생활을 좋아해서 그리로 가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옛날 김유신이란 젊은이가 화랑도의 생활을 하면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승마 연습을 하고 활을 쏘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녁마다 기생집을 드나드는 생활을 했습니다. 나중에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고 이 젊은이에게 호된 책망을 했습니다. 어머님의 말씀을 듣고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을 내가 했구나 생각한 청년 김유신이 이제는 내가 전에 하던 생활을 청산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기생집엘 가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고된 훈련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만 너무 피곤해서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 “아이고, 오랜만에 오셨어요.”하며 맞이하는 간드러진 기생의 목소리에 잠이 깬 청년 김유신은 깜짝 놀라 말에서 내려 칼을 뽑아 말의 목을 잘라 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마음은 바르게 살려고 하지만 몸이 옛 생활에 배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죄악된 생활로 흘러내려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로마서 7장에서 사도바울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지 않고 도리어 미워하고 있는 것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하려는 의욕은 내게 있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일이 없습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않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 행한다면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죄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에서나는 한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곧 선을 행하려는 내게 악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그 마음으로 결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행위가 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참된 회개는 그 마음이 변하고 그 행위가 변하는 것입니다. 그 동안 가던 길을 온전히 돌아서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어떻게 됩니까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과거에 범한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죄의 용서함을 받아야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할 수가 있습니다. 참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회개 하면 과거의 죄는 용서함을 받고 장래에는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회개했으면 어떻게 같은 죄를 거듭 범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살기 때문에 악과의 싸움에서 승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힘만 의지하면 패할 수밖에 없으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반드시 승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참된 회개를 하는 순간 과거의 모든 두려움과 불안에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참된 기쁨과 평화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서 살면 그 동안은 죄의 종이요 두려움에서 벗어 날 수가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온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죄를 범하면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합니다. 무서워서 그럽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피하여 동산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동산 나무 뒤에 숨는 것이 숨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피해 숨는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여러분, 죄인이 하나님을 피해 숨을 곳은 어디도 없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회개하면 참 해방과 자유를 얻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옮겨 주십니다. 기억도 안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사랑과 기쁨과 화평 그 밖의 모든 아름다운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초대 교회가 오순절 때 이런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성령이 충만한 초대 교회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1.배우는 교회였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42절에 “저희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하였습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는 배우는 교회입니다. 어떤 사람이 배웁니까 겸손한 사람이 배웁니다. 교만한 마음의 소유자는 배울 수가 없습니다. 겸손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2.힘써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더러 대통령이 기도하느라고 공연히 시간만 낭비한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내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지 아니하고는 내게 맡겨진 이 중대한 직분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했다고 합니다. 너무 우리 가슴에 와 닿는 말입니다.
교회사를 보면 크게 일한 사람들은 다 열심으로 기도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도 열심히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시면서 일하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지 않고 일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승리하려면 우리의 힘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힘을 기도를 통해서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기도하면 잘해 낼 수 있습니다. 성령에 믿음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기도해야 세상의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3.세상이 두려워하는 교회였습니다.
43절에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라고 말씀했습니다. 세상 사람이 경외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비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두려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얕보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해서 교회가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할 때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두렵게 생각합니다. 거기에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4.놀라운 일이 생기는 교회였습니다.
43절에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했습니다.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더러운 사람이 깨끗하게 사는 일이 생기고 이리 같던 사람이 양처럼 되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병들어 고생하던 사람이 고침을 받고 건강하게 회복되었습니다. 귀신이 쫓겨나고 온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갈보리 교회에 나오시는 여러분에게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우리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 할 때 우리에게 이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약한 심령이 강하게, 불안하던 심령에 평화가, 미워하던 마음에 사랑이 넘치고, 목마른 심령에 생수의 강이 넘쳐흐르게 되고 기진한 심령이 새 힘을 얻게 되고 탄식과 한숨 속에 살던 심령이 감사와 찬송으로 넘치게 될 것입니다.
삶의 의미를 못 찾고 헤매이던 심령이 의미와 보람을 찾게 될 것이고 세상을 해치던 사람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기적이요 성령의 역사입니다.

5.서로 나누는 교회였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령 충만한 초대 교회는 빈부를 가리지 아니하고 나눠가지고 나눠먹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 고민이 무었입니까 빈부의 격차가 아닙니까 많은 사람이 교회도 돈 벌어가지고야 나간다고 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교회가 이 일을 잘 감당 못해서 이런 말을 듣습니다.6.날마다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46절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모이는 곳입니다. 예배당 건물이 교회는 아닙니다. 교회는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힘써 모일 때 은혜가 됩니다. 요사이 우리 나라도 자동차가 많아지면서 연휴가 되면 앞을 다투어 교외로 빠져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답답한 도시 생활을 하다가 쉬는 날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날을 범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열심으로 모이는 교회가 되십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충성하게 은혜주실줄을믿습니다.

7.교제하는 교회였습니다.
46절에 “집에서 떡을 떼며” 했습니다. 떡을 뗀다는 것은 교제를 의미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입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성도의 교제입니다.
사도신경에도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하는 고백이 있습니다.

8.기쁨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46절에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고 말씀했습니다.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입니다. 성경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기쁨입니다. 우리교회에 나오는 분들은 기쁨이 넘치는 생활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쁨이 되십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은 힘을 얻습니다. 기쁨이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힘든 것을 모릅니다. 여러분 가정에 기쁨의 축복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9.범사에 감사하는 교회였습니다
47절에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했습니다. 감사는 사막에서의 오아시스와 같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감사를 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바울과 실라는 역경 중에 감사했더니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0.칭찬 받는 교회였습니다.
47절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라고 말했습니다. 성도의 입장은 욕을 먹든지 칭찬을 받든지 두 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백합꽃이 살아서 향기를 발하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죽어서 썩으면 백합처럼 더러운 냄새를 피우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렇습니다. 살아서 향기를 발하면 칭송의 대상이 되고 죽어서 더러운 냄새를 피우면 빈축의 대상이 됩니다.
사랑하는 갈보리 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디 가서 무엇을 하시나 칭찬과 존경의 대상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통해서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이 많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1994년 6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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