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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실패와 성공의 비결 (아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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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도도 벌써 21일이 지나가고 있다. 어떤 한해가 되어야 할것인가
스위스의 한 노인이 80세를 맞게 되었다. 노인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 보면서 시간의 양(量)으로 계산한 통계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다. 그의 80년은 대개 이렇게 소비되고 있었다. 그는 26년동안 잠을 잤다. 움직이지도 않고 생각도 않는 시간을 어떤일보다 많이 썼던 것이다. 그리고 21년 동안을 노동에 바쳤다. 또 6년이라는 세월을 식사하는데 사용했다. 남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기다린 시간이 무려 5년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5년을 불안스럽게 혼자 낭비해 버렸다. 수염을 깎고 세면을 하는 것에 228일을 보냈으며, 아이들과 노는 것에는 26일을 썼다. 넥타이를 매는데 18일이 걸렸고, 담뱃불을 붙이는 일에는 12일이 소모되었다.
그가 마음 속에 행복을 누렸던 가장 기쁜 시간들을 찾고 찾아 보았을 때 그것은 약 46시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지난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가
성공적으로 보냈는가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당시에는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도 있고, 실패했다고 생각했는데 성공한 것도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삼손은 나라를 구하기도 하고 공을 세우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방 여자 때문에 인생을 망쳤습니다. 술람미라는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데 실패했다가 나중에는 성공했습니다. 술람미는 시골 처녀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과 사랑의 관계를 맺음으로 성공하게 됩니다.

본문3:1에 보면 술람미는 침상에서 사랑하는 자를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교회로 비유된 술람미여인은 밤이 이르기 전에 신랑(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렸으나(2:17) 이제는 피곤하여 침상에 누워버렸습니다. 여기 "침상"이란말은 영적으로 어느 정도 타락됨을 비유합니다. 신자는 영적대망이 계속되지 못하고 긴장이 풀릴 때에 타락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열처녀의 경우도 그와 마찬가지지요(마25:5). 주님(혹은 주님의 은혜)이 더디오셔도 대망의 긴장을 계속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다윗은, 그런때에도 참아 견디며 "여호와여 어느때까지이까"하면서 은혜의 때를 기다렸다(시13:1).
"마음에 사랑하는 자"란 말은 "나의 영혼이 사랑하는 자"라고 개역해야 됩니다. 우리는 영혼으로부터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조금더 쉽게 구체적으로 적용해 보십시다. 침상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안일과 나태입니다. 안일과 나태가 우리의 생애를 실패하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땀과 피와 눈물을 흘리는 노력이 있어야할 삶인데 안일하게 게으르게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너무나 잘아는 말씀이지만 자주 어기는 구절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성경은 “부지런하여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했으며 “세월을 아끼며 죽도록 충성하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시간들이 우리에게 기회로 주어졌습니다. 다시 오지않는 시간들이죠.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축복을 누구보다 풍성히 누리려면 주님안에서 땀과 피와 눈물의 원리대로 전진하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흘리고 있는 액체는 무엇입니까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본문 2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를 길거리에서 찾았다는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에 내가 일어나서”-이 구절은 술람미 여인이 지금 꿈속에서 솔로몬을 찾으로 나선 사실을 언급한 구절로 보기도 한다(Delitzsch,Wycliffe). 어쨌든 침상에있다가 이제 밖으로 나선 것은 솔로몬을 필히 만나고 싶어하는 의욕을 더강렬하게 표출시키는 행동이라 하겠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신부된 성도들 또한 좀더 주님과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기 위해 주님을 간절히 찾는 마음의 자세를 지녀야할 것을 예시합니다.
성중으로 돌아다니며-'성중'이란 '예루살렘 성내'를 의미하는 것으로 봅니다(Delitzsch, Lange).
거리에서나 큰길에서나-'거리'나 '큰길'은 각각 '쉐와크'와 '레호브'로서 성내의 대로(大路)나 넓은 광장(대하32:6;느8:1)을 가리키며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암시합니다.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중으로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구나”-여기 "성중"은 예루살렘 도시를 가리키는데 교회를 상징합니다. "거리"나 "큰길은 통행이 복잡한 곳으로서 일반 대중이 많이 다니는 곳입니다. 신자는 일반 대중속에서 주님을 만나기 어렵죠. 그 이유는, 일반 대중은 신앙의 지도자의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만날 수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데 있다(왕상19:12).
우리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으면서 성경말씀과 및 하나님의 붙드시는 교역자("순행하는 자")의 교훈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12살때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가셨습니다. 그런데 하룻길이 지난후에 부모들이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을 깨닫고 거리에서 찾았으나 헛수고하였습니다. 그러다 결국은 성전에서 찾았습니다. 성전중심의 삶은 100%성공을 보장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본문3:3에 보면 성중에 순행하는 자들은 인간들입니다. 인간들과 의논한다는 것이 실패의 원인이 됨을 살펴볼수 있습니다.
성중의 순행하는 자들을 만나서 보았느냐 하고-2절은 '만나지 못하였구나'로 끝나는 반면에, 본절은 '만나서'로 시작된다. 이러한 시적기교는 오매불망 연인을 만나기만을 희구하는 술람미여인의 내면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준다.
본절은 술람미여인이 야간에 순찰하면서 성백성들을 보호하는 야경꾼들을 만나 그녀의 사랑하는 연인을 보았느냐고 묻는 장면이다. 델리취(Delitzsch)는 계속적으로 본절 역시 1,2절과 같이 술람미 여자가 밤에 꾼 꿈을 독백형식으로 말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본절이 꿈을 회상한 내용이든 실제행동을 묘사한 것이든, 중요한 것은 솔로몬을 찾고자하는 간절함 바로 그것이다.
또한 이본문은 주님을 사랑하여 찾는 자의 노력이 끝까지 계속됨을 볼수있다. 그는 도시 가운데서도 찾아 보았고, 거리와 큰거리에서도 찾았다. 그래도 만나지 못했으므로 그는 이제 파수보는 사람들에게 묻기에 이르렀다. 하나님은 이렇게 간절히 찾는 자를 만나 주신다. 그런데 주님을 찾다가 중단하는 사람이 있다. 그가 그렇게 되는 원인이 무엇인가 그것은 주님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 때문이다. 주님을 끝까지 찾는 사람은 주님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성도는 자기 자동차가 아이를 치었을 때에 계속하여 암5:4의 말씀("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을 외우면서 그 아이를 병원으로 운반해 갔다. 이상한 것은 그 아이에게 아무 상처도 없다는 진단을 받았으며, 그는 주님께 감사하였다고 한다.
또한 여기 "순행하는 자"는 파숫군을 가리키는데 이는 선지자나 복음의 사역자를 말한다. 술람미 여인(교회나신자)이 신랑(그리스도)을 만나기 위하여 순행하는 자(하나님의 사자)에게 문의 한 것은 잘한 일이다. 하나님의 사자 곧 파숫군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자이다, 그런데 술람미여인(교회)이 그들을 만난 즉석에서 신랑(그리스도)을 만난 것은 아니고 그들을 떠나자마자 그를 만났다. 이것은 사역자에게 대한 교회(신자)의 마음의 자세가 어떠해야 될 것을 가르쳐 준다. 곧, 신자는 사역자 자신에게서 주님을 찾을수있는 듯이 생각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이다. 물론 파숫군(교역자)이 신자로 하여금 주님을 찾도록 지도해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게 되기는 파숫군을 초월하여 성령으로 말미암아서만 실현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람들을 의지하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의지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사랑하며 섬기며 헌신하십시다.

조금 다른 각도에서 술람미라는 여자의 성공의 비결을 살펴보십시다.
3가지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여자는 실패의 원인을 모두 버렸습니다. 3:4에 "그들을 떠나자마자"란 말씀은 지난날의 과오에서 깨끗하게 떠나는 것, 잊어버리는 것, 벗어버리는 것이 중요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도 사람을 죽였던 과거를 잊어버리고 생각을 돌이켰을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떠나야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을 떠났듯이 신앙생활에 방해되는 것들을 떠나야겠습니다. 끊어야 할 것들을 끊어야 하겠으며 버릴 것은 다 버리고 전진하십시다.
또한 본문4절에 보면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만나야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면 일생 동안 예수를 믿는다고 했어도 답답할 뿐입니다. 제대로 체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헬렌 켈러가 1950년도에 일본 공장에 도착했을 때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행복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냐고, 그녀는 대답하기를 "사랑하는 예수님으로 마음을 채울 수 있다면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본문4절에 보면 "그를 붙잡고 내 어미집으로 나를 잉태한 자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 중심의 삶을 사는 자들은 성공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가정의 자녀들은 교회에 심겨지도록만 하면 성공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유태인을 위대한 민족으로 만든 것이 있다면 성경과 회당과 탈무드라고 어떤 분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나온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며 교회 생활에 게으르지 않았는지 반성해 보고 더욱더 성전중심의 삶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그 분에게 물어가며 살아서 놀랍게 성공하시는 한 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예 화
`노만 빈센트 필'박사의 일화가 있습니다. 52세의 남자가 사업에 실패하고 실의에 빠졌을 때, 미국의 필 박사를 만나라는 친구의 권유로 사무실 문을 노크했습니다. 그는 앉자마자 "모든 것이 끝장나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사라졌습니다. 희망도 없고 이제 재생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습니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었고 완전히 좌절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필 박사는 "그렇다면 오늘 이시간 당신의 귀중한 재산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한번 봅시다."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적는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한번 적어 봅시다-부인은 계신지요"
"결혼생활 30년에 한번도 곁을 떠난 적이 없으며 나를 위로하며 살아왔습니다." "자녀들은 몇이나 되시지요" "예, 셋인데 착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친구가 있습니까" "예, 정말 좋은 친구가 몇 있습니다." "건강은 어떤가요" "건강은 좋아서 누워있던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미국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할 일 많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예, 믿습니다."
"우리 서로 대화중에 찾아낸 재산목록을 적어 봅시다. ①훌륭한 부인이 있다. ②사랑스런 자녀가 셋이 있다. ③의리있는 친구가 있다. ④건강이 있다. ⑤미국에 할일이 있다. ⑥신앙이 있다.
필목사는 이 중년신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잃어버린 사업과 여기에 기록된 재산중 어느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부끄러운듯 빙그레 웃었습니다. "당신에게 상상할수없이 큰보화가 현재 남아 있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그리고 몇년후 대성공자가 되어 감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현재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찾아 발견하는 자만이 무한한 가능성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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