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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지막의 시작 (계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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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침묵에 대한 추억이나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합격자 발표를 기다릴 때의 침묵, 경연 대회를 치르고 입상자 발표를 기다릴 때의 침묵은 기대의 침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수가 법정에서 판사의 마지막 선고를 기다릴 때 법정에 감도는 침묵, 이것은 죄인에게 두려운 침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가 하면 어느 날 갑자기 입을 다물어 버린 남편이나 아내의 침묵 , 어렸을 때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불려갔는데 아무 소리 안 하 고 우리를 노려보기만 할 때의 침묵, 그것은 우리에게 죄책을 느 끼게 하기에 충분한 침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혹은 상하고 불쾌한 역경의 삶의 장 (장)에 섰을 때,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전혀 들 어 주시지 않고 침묵만 하시는 것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이 풀려 가지 아니하는 상황 속에서 우리 가 바라보아야 하는 하늘의 얄궂은 침묵! 어떤 사람들은 이런 침 묵을 견디지 못하고 아무래도 하나님은 안 계신 모양이다 하면 서 하나님을 떠나기도 합니다.

 역사 속에는 종종 이런 하나님의 침묵의 순간들이 있었던 것이 사 실입니다. 그러나 이 과(科)의 본문인 요한계시록 8장에는 역사 의 마지막 침묵이 소개됩니다. 인류 역사가 막을 내리기 직전에 있는 최후의 침묵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1절을 보십시 오.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이것은 폭풍 전야의 침묵 같은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마 지막의 시작을 알리는 침묵입니다. 이 침묵에서부터 시작하여 인류 역사의 마지막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이 마지막 드라마에 하나님 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십니까? 이번 과(科)에서는 요한계시록 8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세 가지 모습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기다리시는 하나님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1절) .

반시간은 대단히 짧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 짧은 시간의 침묵은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8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 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이 죄악 많은 세상을 보시면서 당장 에 심판을 하시고 싶은데 참으셔야 했던 하나님에게는 하루가 천 년 같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지상에서의 고통을 끝내고 난 우리 구원받은 자들을 만나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기다림은 천 년이 하루 같은 그런 기다림일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의 말 씀을 보십시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 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 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라.

사도 베드로가 소개하고 있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의 시간은 하나 님의 기다리심의 시간입니다. 회개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의 편에 서 볼 때 이 시간은 자비의 시간입니다. 그렇지만 회개할 가능성 이 없는 사람, 회개를 거절한 사람들에게 이 기다림의 시간은 오 히려 심판을 준비해야만 하는 두려움의 시간일 것입니다.

 우리가 답답하고 억울하고 괴로운 일을 당해서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응답이 속 시원히 나타나지 않을 경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 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이 침묵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가 스 스로를 살피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정립할 수 있기를 원하시는 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회개와 뼈아픈 자기 정리의 작업을 통해서 이 침묵의 시간에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이 시간은 복된 시간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의 응답이 오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기다려 주시는 것과 같이 하나님을 기다릴 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것이 시편 기자의 고백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깊은 데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대 주여 누가서리이까 그러나사유(赦宥)하심이 주 께 있음은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이다 나 곧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救贖)이 있음이라(시 130:1-7).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시간에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이 있다면, 우리도 하나님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신뢰를 뜻합니다.

 들으시는 하나님 침묵은 결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심이 없으시다는 의미가 아닙니 다. 이 침묵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의 소리를 듣고 계십 니다. 본문 3,4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또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 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香煙)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 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하늘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 침묵 속에서 성도들은 울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고통과 부조리와 아픔을 경험했던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애통한 부르짖음을 토해 냈습니다. 그런데도 하늘 은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망각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의 기자는 저 영원한 세계의 커튼을 열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 을 보여 주었습니다. 한 천사가 성도들의 기도를 받아서 향연과 함께 그 기도를 하나님 앞에 올립니다. 보이지 않는 무대의 저편 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셨고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장면에서 배울 수 있는 두 가지 교훈이 있다고 생각합 니다.

 첫째로, 기도의 중요성을 배워야 합니다.

환난과 고통이 찾아올 때,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된다는 확 신이 있든지 없든지 그리고 내 기도의 흔적이 내 눈앞에 당장 나 타나든지 안 나타나든지 상관없이 우리는 계속해서 그분 앞에 기도 를 해야만 합니다.

 둘째로, 교회적 기도의 중요성을 배워야 합니다.

제단을 보여 주고 제단에서 모든 성도들이 함께 기도드리는 광경을 보여 줍니다. 고난이 올 때 특별히 온 교회가 함께 마음을 합 하여 기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공동체적 기도가 없이는 고난의 시대를 이겨 나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은 성도들의 공동의 기도, 특별히 교회의 기도에 대해서 하나님은 특별한 응답을 약속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9절을 보십시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 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 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이 구절만 읽으면, 아무 데서나 두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면 하나 님이 응답하신다는 의미로 해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이것이 특별히 교회를 통해서 드리는 기도를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앞 절 두 절을 보십시오.만일 그 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교회를 통한 합심 기도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 으로 모여서 주님의 이름으로 합심하여 기도할 때 땅에서 풀면 하 늘에서도 풀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기도는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를 읽어 보면, 사도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연합하여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마 그 기도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기도 응답을 나타냈을 것입니다 . 기도회가 진행 중인 상태에서 베드로가 감옥에서 풀려나왔기 때 문입니다.

이런 교회적 기도의 중요성을 우리가 배우기 시작하면, 개인의 고 통이나 어려움에 대해 혼자 기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교회에 기도 요청을 할 것입니다. 기도로 불붙는 한국 교회가 되도록, 가능하다면 24시간 내내 기도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고 몇 분 이 같이 그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도가 응답되는 과정에서 누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하 나님 앞에서 우리의 기도를 올려가는 역할을 하는 자는 천사입니다 . 어떤 성경학자들은 여기의 천사가 어쩌면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 난 예수 그리스도일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분은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것은 보이지 않는 역사의 무대 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광경입니다. 하늘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시간에도 천사들은 부지런 히 활동하고 있었고, 성도들의 기도는 바쁘게 하나님 앞에 열납되 고 있었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일 뿐만 아니 라 우리의호소와 애원과기도를 듣고 계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 드디어 침묵을 깨는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합니다. 일곱번째 의 인봉은 그야말로 심판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그러나 8장 1절 과 6절을 잘 보십시오. 예수께서 일곱째 인을 떼시면서 일곱 인 봉의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일곱 나팔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 일곱번째 인이 뜯어질 때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가를 세부적으로 다시 나눈 것이 첫째 나팔부터 일곱째 나팔까지입니다. 그리고 천사가 일곱째 나팔을 불 때 그 나팔은 다시 일곱 대접으로 나뉩 니다. 그러므로 일곱 인봉은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의 내용을 모 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공부할때는 이점을 조심해야 합 니다.

 반시 동안 고요한 정적이 있다가 나팔소리와 함께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이 전개됩니다. 성경학자들은 흔히 일곱 나팔로 이루어진 마 지막 심판의 단계를 칠 년으로 생각해서 칠 년 대환난이라는 용어 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칠 년 중에서 전(前) 삼 년 반의 내용 에 해당되는 것이 여섯 나팔의 심판이고, 후(後) 삼 년 반의 내용에 해당되는 것이 일곱 대접의 심판이라고 합니다. 칠 년이라 는 기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기간은 예수님 오시기 전에 역사 속에 일어날 마지막 심판의 시간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곱째 인이 떼어지면서 드디어 첫번째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 8장에서는 네번째 나팔까지 나타납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 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직과 공의가 실현되지 못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보면서 정 말 하나님은 살아 계실까 하고 의심도 하고 침묵하시는 하나님께 불평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분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나팔소리와 함께 행해지는 심판의 내용을 볼 때 애굽에서의 재앙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심판을 내리 실 때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나타내기 위한 목적으로 그렇게 하셨 습니다. 역사의 마지막 단계의 심판에서도 하나님은 동일한 목적을 갖고 계십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참으로 의로우신 하나님을 역사 속에 계시하시기 위함입니다.

 둘째로, 이 심판이 기도의 응답으로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통해서 의롭고 선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마다 늘 기도하던 바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언제까지 역사의 악을 그대로 두고 보시겠습니까? 하나 님, 언제 이 불의와 죄악을 심판하시겠습니까? 드디어 그 기도가 응답되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심판조차도 기도의 응답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8장에 나타난 각 나팔의 심판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

첫째 나팔/땅의 재앙 이 심판이 목표로 하고 있는 재앙은 땅입니다. 땅의 삼분의 일 이 망가지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망가집니다. 물론 이것은 상 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문자 그대로 사실일지도 모릅 니다. 피 섞인 우박과 불이 쏟아진다고 했는데, 그것도 문자 그 대로 볼 수도 있고 상징적인 표현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피 섞 인 우박이라고 하면 현대의 핵무기들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과거에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불을 내리시던 하나님이 역사의 마지막에 불 을 통해서 지구를 심판하신다고 하셨을 때, 그분은 자연적인 재해 를 사용하실 수도 있지만 인간이 만든 무기들을 사용하실지도 모릅 니다.

 둘째 나팔/바다의 재앙 두번째 심판의 대상은 바다입니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어 버리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바다에 떠다니던 배의 삼분의 일이 깨어진다고 했습니다. 불붙 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운다고 한 것을 보면, 이것 은 아마도 상징 같습니다. 걸프전에서 유도탄이라든지 미사일 같은 것이 항공모함에 떨어지는 장면을 연상해 보십시오. 어떤 책을 보니까 1980년대에 지구상에 소위 상업용 배가 약 25,000 척이 바다에 떠 다녔다고 하던데, 그 중에 삼분의 일이 깨지면 적어도 8000척이 깨지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한 경제상의 손 실은 얼마나 엄청나겠습니까? 또 바다 전체가 피로 물드는 광경을 연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소름 끼치는 장면입니까? 이것이 두번 째 심판의 단계입니다.

 셋째 나팔/강들과 물샘들의 재앙 이때 심판의 대상은 강들과 물샘들입니다.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 진다고 했는데, 이것을 세균탄 같은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 니다.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물이 쓰게 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물 을 마실 수가 없습니다. 수질 오염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는 큰 강들만 적어도 100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그것들의 삼분의 일이 못 쓰게 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물을 마시지 못해서 아우성을 칠 것입니다.

 넷째 나팔/천체의 재앙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는 천체의 재앙을 연상해 보십시오. 얼마 든지 가능합니다. 화산이 한번 폭발하면 그 먼지 때문에 대낮에도 새카만 밤처럼 어둡다고 합니다. 그런데 핵폭탄이 터졌다고 생각 해 보십시오. 아마 이 지구는 캄캄한 어둠으로 완전히 덮일 것입 니다. 이것이 심판의 네번째 단계입니다.

 이제 서서히 인류 역사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절정으로 향해 갑 니다. 나머지 세 개의 나팔이 역사 속에 결정적으로 이루어질 최 후 심판의 재앙을 보여 줄 것입니다. 그런데 남은 나팔 세 개의 심판 내용이 소개되기 직전에 매우 불길한 광경 하나가 삽입됩니 다. 8장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 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이 외에도 세 천사의 불 나팔 소리를 인함이로다 하더라.

독수리가 떠 다닙니다. 독수리는 주검이 있는 곳에 모입니다. 독 수리가 화, 화, 화라고 외칩니다. 그러면서 역사의 마지막 심판 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나팔과 함께 이루어지는 이 마지막 심판의 광경을 공부하다가 이 것이야말로 땅의 지옥이 아니고 무엇일까?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마지막 심판의 광경은 어떤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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