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명동의 문화

첨부 1


어제가 결혼 20주년이었다. 결혼초 가끔 가던 명동을 찾았다. 예나 지금이나 젊음이 넘친다. 어느 새 20년이 지났으니 그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골목들이 단정하게 손질되어 청결하고 그늘을 드리울 수 있는 느티나무가 거리를 두고 서있어 좋다. 느티나무를 보니 가을걷이를 해놓고 동네 잔치를 벌이던 어릴 때 추억이 새롭다. 음식점마다 각양각색의 음식들이 전시되어 있어 풍요롭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한가하다.
이렇듯 명동은 다양한 문화로 반죽되어 공생하는 모습에서 긴 역사가 은근하게 풍겨온다. 명례방골이던 명동은 개화기에 청과 일본의 상권이 자리잡고 경쟁하듯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던 곳이다. 세월에 몇번이고 헹궈오면서 해방후의 문화는 문인이 모여 슬픔을 노래했던 곳이기도 하다. 독재에 항거하던 젊음의 역사가 지금도 명동의 한구석에 서려 있다. 일터에서 쫓겨나 추워지는 가을 저녁에도 어깨를 움츠리며 살길을 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오늘도 존재하니 말이다.
성경에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는 말씀이 관광특구인 명동에서 살아나길 고대한다. 명동의 문화가 다양하게 거듭나길 빈다.
/정종기 교수(인간관계회복연구소장)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