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그리스도인의 사치

첨부 1


사치가 사회의 문제가 되고 있다. 99.6.21 자 타임지는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교수의 장문의 논문을 게재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가 너무 일찍 경제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다시 무너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내용이 주요 강조점이었다. 최근에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 사건이 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던 사람들이 보지도 듣지도 못한 수천만원 대의 호랑이 무뉘 밍크 코트를 입었다니, 사주었다니, 대납을 요구했다느니 하는 말들을 듣게 된 것이다. 이것이 사치라는 어리석음의 대열에 그리스도인들도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현실이다.사실이다. 그러면 '사치하는 그리스도인'이란 말이 모순임을 증명해 보자.

1. 사치의 심리
사치는 일종의 보상심리이다. 내적인 공허감과 무의미감의 보상으로써 외적인 사치를 추구한다. 고급 의류의 50% 이상은 유흥가의 여성에게로 팔린다는 통계가 있다. 자신의 천박과 무가치함을 보석과 고급 옷으로 위장하려는 것이다. 이들의 심리나 사치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동일하다. 사치란 내적 수치감에 대한 위장인 것이다.

2. 사치 문화
사치 문화는 목적 상실의 문화이다. 푯대가 없는 사람이 가는 마지막 길이 사치인 것이다. 보통 목욕탕 문화와 음식 문화가 발달하면 망조가 깃든다고 한다. 로마에는 8종류의 목욕탕이 있었고, 많은 음식을 맛보기 위해 먹은 것을 토하게 만드는 노예가 있었다고 한다. 사치 문화가 횡행한다는 말은 그 사회에 희망이 없고, 목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면,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꾼다. 다시 말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엄청난 소망에 휩싸인다는 말이다. 성령의 사람은 세속의 사치에 마음을 빼앗길 여유가 없는 것이다. 사치하는 그리스도인과 성령의 소망을 어찌 양립할 수 있겠는가? 사치하는 자, 그는 소망이 없는 목적 상실의 방황자일 뿐이다.

3. 그리스도인 문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에 대한 뚜렷한 목적이 있다. 우리는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는 존재들'이다(빌3:14). 그리스도인의 문화는 사치 문화가 아니라 '단순한 삶'(simple life)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푯대를 향하여 뛰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체중을 줄여야 일할 수 있다. 성2도의 목표는 '성장'이지 '비만'이 아니다.

4. 그리스도인의 사명
그리스도인은 목적없이 방황하는 세상사람들과 같이 사치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단순한 삶을 통해 일하는 존재들이다. 그리스도인은 사명을 맡은 청지기이다. 그러므로 사치에는 심판이 있다.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약5:5)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부자의 범죄가 사치였음을 잊지말자! 사치에는 심판이 있다.
수천만원 대의 밍크 코트 입고, 회개의 기도를 하겠다고 기도원에 들락거리는 그리스도인!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무엇일까?
/전병욱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