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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독교 가정의 공동체 (신 06:4-9, 엡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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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엔이 정한 "가정의 해"이다. 유엔이 1994년을 가정의 해로 정하게 된 것은 1989년 제 44차 총회의 결의를 통해서였다. 우리사회 는 5월을 가정의 달로 정하고 5일은 어린이날로 8일은 어버이날로 지 키고 있다. 핵가족시대에 있어서 부모에 대한 효도는 중요한 가정의 원리가 되었다. 한국은 500여년동안 유교문화와 봉건사회의 대가족제 도와 가정의 윤리화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현대 도시산업사회로 말미 암아 유교문화의 대가족제도는 무너지고 새로운 핵가족제도로 바뀌게 되었다. 가족의 제도와 윤리와 생활양식이 대변혁을 가져옴에 따라 우 리는 가정의 공동체를 이루어 그 정신과 윤리를 계승해야 한다. 본문 신명기 6:4-9은 이스라엘에 있어 수천년 역사 속에서 불모로 잡혀가고 잡초처럼 짓밟히고 영토도 주권도 국민도 없었는데도 1948년에 돌립하 게 된 원동력은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늘 마음에 시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든지 집에 행할때든지 누웠을 때든지 일어날 때에 든지 이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는 핵심의 뜻은 하나님과의 예배 관계 유지와 가정에서 우선부모가 교사가 되는 교육과 그 교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함에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가정은 예배회복에 있고 이를위해 교회와 가정은 공동노력이 필요하 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민족집단생활을 하면서도 자기의 부모님들에 대해서는 가정에서 자녀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도록 하였다. 두말할 나 위도 없이 기독교의 가정윤리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가르침에서 출발 한다. 그런데 가부장적인 문화가 갈수록 희미해지는 우리의 현실에서 "효"의 이해를 어떻게 해석하고 실천해야 할까 구체적인 답이 나와 있지 않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면서 오늘 우리 가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를 살펴보면 한마디로 부모의 기대와 자녀 들의 소망이 서로 대립하는 갈등구조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 고 또 전통적인 부모의 위치에 집착하는 부모들과 그것을 거부하는 자 녀들 사이에는 해결되기 어려운 관계가 존재하고 이로 인해 가정마다 사랑과 화목이 넘치기 보다는 강요와 반항이 더 자주 일어나는 공동체 가 아닌 공간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음을 보게 된다.

 결국 부모와 자식의 갈등은 사회적으로 만연한 출세주의와 자식에 대한 사랑을 앞세워 복종과 출세만을 강요하는 부모들로 인해 발생한 다고 볼 수 있다. 자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의 의견을 나눌만큼 부모들이 민주화되지 않는한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 가정의 평화와 화목을 위해 노력해야할 교회들이 물질적 가치관에 물들어 출세주의를 부추긴다는 사실이다. 교회는 부모에 대 한 효도와 자녀에 대한 사랑을 강조함으로써 전통적인 "효"의 개념을 기독교 가정에 심어주는데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사회적인 출세를 하나 님의 축복과 동일시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기독교인들에게 출세가 세상 에서의 지상과제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말았다. 그 원인은 한국교회의 기복적 특성과 물질주의 가치관에 있다. 한국교회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올바른 삶 보다는 현세에서 받을 축복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다양한 교인들이 한 교회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류대학을 들어갔다거나 사회적으로 좋다는 직업을 가졌다는 사실이 기독교적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데도 이것을 마치 하나님의 축복인것처럼 강조하는 것은 결국 세속적인 성공을 영적인 성공과 일 치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올바른 부 모자식관계에 있어서 효의 개념은 믿음안에서 공경하고 부모는 믿음안 에서 자녀를 교육하고 양육하도록 함으로써 가정공동체를 이루어 나가 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있어서 가정공동체는 부모에 대한 일 방적인 지시와 또 이를 따르는 자녀들의 순종이 곧 효도인것으로만 인 식되어 왔다. 기독교의 가정에서의 자녀 스스로의 역할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부모를 공경하는데에 있어서 믿음에 앞서 자기들의 부모에 대한 공경이 먼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부모는 하나님이 어 떤 분인가를 가르쳐 주고는 상징으로써 나타난다. 즉 보이는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는자가 보이지 않는 부모를 어떻게 공경할 수 있느냐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가정공동체는 부모와 자녀가 주 안에서 부모는 부모로서의 역 할을 다하고 자녀는 자녀로서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일반 가정에서는 찾을 수 없는 신앙의 공동체 즉, 부모와 자녀간에 함 께 하는 믿음이 앞서야 할것이다.

 가정은 하나님이 이루어주신 인간의 가장 기초적이고도 핵심적인 공 동체이다. 가정이 모여서 지역사회를 이루고 지역사회는 국가를 국가 는 대륙을 그리고 그 대륙들이 모인 전체가 바로 인류가 사는 지구 공 동체이다. 사회의 여러공동체들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작은 모임은 바 로 하나님이 제정해 주신 가정이다.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여야 하고 그 누구에게 사랑을 받아야 인간답게 되며 그렇지 못할때에 인간으로 서의 귀중한 한 요소가 결여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 서 인간을 창조하실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면 서 살도록 하였고 또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더 깊 이 알고 감사하며 살도록 만드셨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중심이 되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 위해서는 인간의 사랑도 경험해야 한다.

만일 인간생활에서 부모와 자녀간에 사랑, 부부간의 사랑, 친구간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그 크고 숭고한 하 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기 본적인 단계는 인간이 인간과의 관계속에서 사랑을 받아보고 사랑하는 체험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기초가 바 로 가정인 것이다. 어린아이는 사랑이라는 말을 알기전에 사랑이 존재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부모의 부드러운 음성에서 엄마의 따뜻한 손길에서 어린아니는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부모는 자녀를 길러보고 사랑하 봄으로써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인 자신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게 되고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체험함으로써 아버지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가정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가정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시는 가운데 모든 일이 이루어 질 때 그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가정으로써 사명을 다하는 참된 가정이 된다. 그리스도안에서 가정의 각 구성원이 각자의 책임과 역할을 다할 때 가정은 사회와 국가와 세계에 새힘을 불어 넣어주는 생명의 원동력 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것은 부모들의 책임이며 부모들도 자녀들과 협력하여 아름다운 가정을 가꾸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호레이스 부쉬넬(Horace Bushell)은 자녀를 영적으로 갱신된는 가능 성의 존재로 보면서 자녀들의 영적 성장을 돕기 위해 다음과 같은 조 건을 제시했다.

첫째, 부모들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신 6:4-5). 신명기에 기록된 유대인의 자녀교육의 장(場)인 쉐마의 첫 조건은 부모들이 신 앙적 모범을 보일것을 강조한다.

둘째, 말씀을 통하여 자녀에게 하나님을 소개해야 한다(신 6:6-7).

여호와를 아는것이 지식의 근본이므로 자녀의 양육을 하나님의 말씀으 로 해야 한다.

세째, 가정의 분위기를 신앙적으로 이끈다(신 6:8-9). 분위기는 말 보다 더 큰 영향을 줌으로 부모의 애정과 보호는 자녀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깨닫게 하며 가족간의 우의와 의미는 세계인류는 한 형 제라는 정신과 동족애를 갖도록 해준다.

기독교가정은 항상 주 안에서 나타난 믿음의 생동력을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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