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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안에서지어져가는성전 (엡 0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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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 풍속을 쫓던 구습과 육체의 욕심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화해와 은혜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예수 믿는 신자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아직은 능력이 없어서 이 세상 풍속 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끊임없이 유혹을 받으며 넘 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이 믿음의 길을 나아가는 자 들입니다.

우리는 제자리 걸음을 해서는 안되는 자들입니다. 뒷걸음질 쳐서는 더욱 더 안됩니다. 오직 성장과 성숙의 길이 우리가 가야할 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성숙이 무었이며 신자됨이 어떤 축복인지에 대하 여 올바른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바람직한 성장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1.그리스도 밖에 있었을 당시의 비참함-구원 전의 상태(11-12절).

1)버림받은 이방인이었습니다(11절).

 예수 믿기 전의 우리의 상태가 이교도의 우상과 미련한 세상 풍습과 육 체를 따라서 살아갔던 이방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어두움 가 운데서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야만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가만히 두어도 저절로 영원한 형벌을 면치 못하는 처지로 전락되어 있었 습니다. 물론 스스로는 대단한 식견과 야망과 자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모두가 다 바람을 잡는 것같은 허풍이었던 것입니다.

 2)구원 받기 전에는 그리스도가 없었습니다(12절).

 12절에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라고 말씀합니다. 하나 님의 백성들과는 원수로 지냈으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축복도 약속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구원의 약속, 성령의 약속 축복의 약속, 영생 의 약속은 모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이므로 그리스도 밖에 있 었던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축복들이었습니다.

인생의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하실 유일하신 분이신 그리스도가 없음으로 희망도 없이 스스로 멸망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지들이었습니다.

 3)그러니 자연히 소망이 없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12절).

 소망이 있다면 이 땅 뿐입니다. 이 땅에 대한 소망을 어찌 소망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다 변하고 지나가고 사라져 허무하게 되고 마는 것 들 앞에서 인생의 장래는 정처가 없었던 것입니다.

 4)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없는 자의 처절한 실상입니다(12절).

 2.화해자(화평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13-18절).

1)그리스도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화평케 하셨습니다(16절).

 본문 16절에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반목을 예수님께서 자진하여 지신 십자가로 화해의 길이 열어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하신 죽음이 하나님 의 죄악에 대한 공의를 만족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 에 가로 막힌 실제적인 장벽이 허물어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그리스도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화평을 이룩하셨습니다(14-15절).

 본문 14-15절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방인과 유대인 간의 적대적인 감정과 관계를 하나로 묶는 하나의 새사람을 만드시고 화평케 하셨다고 말 씀하십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민 의식과 율법으로 거룩하다는 우월의식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개 같이 취급하고 상종 하는 것조차 꺼려 했습니다. 반면에 이방인들도 유대인들을 외골수 편견과 아집으로 똘똘 뭉쳐진 악독한 족속으로 낙인을 찍어 놓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의 화평의 십자가로 화목하게 만들었으며 하 나로 묶어 주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서는 결코 영원한 반목과 원수가 있 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화평케 하며, 화해케 하는 십자가 아래서 여전히 시기가 있고 용서치 못하는 마음이 있고 원수가 있다면 이 얼마나 아이러 니가 아닙니까

3)그러므로 진정한 화해와 화평과 평안함을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시켜야 합니다(13-14,18절).

 본문 13절에서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 졌느니라."고 하였으며, 14절에서는;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라고 하였으며, 18절에서는;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화해와 화평이 없이는 진정한 마음의 평안이 없습니다. 세상의 평화 조약 과 화해의 제스츄어는 모두 그 가운데 믿지 못할 불안이 도사리고 있습니 다. 왜냐하면 그 약속을 지켜야 할 인간들이 신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은 절대 확실한 보장을 받을 수 있는 약속 이기에 이 약속을 믿고 살아가는 성도들의 심령에는 강같은 평화가 환경을 초월하여서 항상 흘러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인종이나, 빈부나, 배움의 정도나, 신앙의 연조에 편견을 갖고 서 로 선을 긋고 불신하고 불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직 하나가 되지 못한 형제는 없습니까

3.하나님의 몸된 성전에 속한 성도들은 모두 하나님의 권속들입니다(19-22 1)몸된 성전에 속한 성도들에게는 신령한 특권들이 주어졌습니다(19절).

 성도들은 천국 시민권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이 땅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 나라에 속한 자라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속 한 것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반목하던 구습을 청산해야 합니다.

영원토록 하늘 나라의 왕국에서 같은 시민으로 살게 될 것인데, 잠시 잠 간의 이 세상의 이해관계에 얽매여 영원한 성도의 관계를 무시해 버린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주의 몸된 교회의 성도들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권속들입니 다. 한 가족들이라는 것입니다. 지상의 가족들이 있어서 다양한 성품과 기 호와 재능과 경향과 표현을 가지고있지만 서로가 깊은 이해로 서로를 받아 들이고 용납함으로 사랑으로 하나로 결속되는 것처럼 성도들은 하늘나라 가족들로서 서로의 연약함을 돌보고 다양한 가운데 사랑으로 조화를 이루 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교회는 확고한 그리스도의 모퉁이 돌 위에 서 있어야합니다(20절).

 주춧돌은 기둥을 떠 받들고 집을 견고하게 세우는데 있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만일 그 집에 주춧돌이 없다면 그 집은 순식 간에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있는 성전의 모퉁이돌이 요, 주춧돌입니다.

그리고 모퉁이 돌은 건축에 있어서 목재든 석재든 철재이든 그것들을 서 로 잘 연결시켜 주는 가교의 역활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퉁이돌은 건물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면서도 자기의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기둥 밑에서 묵묵 히 자기 직분을 잘 감당하는 것으로 자족해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와같이 은밀한 희생으로 우리를 섬기고 계시는 것입니 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가 우리를 위해 말 구유에 탄생하시고 가난하고 소외 당하는 병든자들을 위하여 수고하시고 종국에 가서는 죄인들을 위하 여 그의 몸까지 내어 주셨건만 사람들은 그를 미천하게 여기고 귀히 생각 지 않았던 것입니다.

 3)교회는 성령으로 온전한 처소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22절).

 지상 교회는 여전히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온전한 교회로 지어져 가는 것입 니다. 교회는 두 사람 이상이 모인 성도의 모임입니다. 이 교회를 교회 답 게 만드시는 이는 사역자도 직분자도 아니라, 오직 성령께서 그 일을 해하 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사역에 민감하게 순종하고 복종할 따름인 것입니다.

 <결론>

우리 교회의 모임은 하나님께서 거하실 만한 아름다워져 가고 있습니까 그렇게 될려면 이 교회에서 가장 귀하고 중요하게 대접받아야 할 분이 한 분 계십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교회가 그리스도보다 목사가 중심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의 행정 에서 그리스도보다 행정 실무자가 중심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구역에서 그리스도보다 구역장이 중심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각 여전도회 남전도 회에서 그리스도보다 회장이 더 중심이 되어있지는 않습니까 보이시지 않다고 무시하는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으로 주님을 기뻐시게 해 드리는 참된 교회의 지체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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