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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로 얻은 승리 (출 1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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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세 가지 사실과 만나게 됩니다.

1.430년만에 해방받은 이스라엘의 쫓기는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으로부터 해방받게 된 것은 우연히 얻은 것이 아니라 쟁취하여 얻은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은 바로의 손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건져 내기 위해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렸습니다.
아홉 가지 재앙이 내릴 때까지만 해도 바로는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마음이 없었습니다.그러나 마지막 장자가 죽는 재앙이 애굽 전역을 휩쓸자 바로는 두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모든 이스라엘은 애굽을 떠나 원하는 곳으로 가서 너희들이 섬기는 신에게 예배해도 좋다는 바로의 해방령을 따라 애굽으로부터 탈출하게 되었습니다.벅찬 승리와 함께 애굽을 떠나게 된 이스라엘의 감격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일어났습니다.그들이 홍해 앞에 이르렀을 때 바로의 기병대가 그들 뒤를 추격해 왔습니다.앞에는 홍해가 가로놓여 있고 뒤에서는 기병대의 전차 바퀴 소리가 들려 오고 있을 때,그들이 지녔던 해방의 기쁨은 삽시간에 공포와 절망으로 변했습니다.
그들은 해방의 기쁨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시련과 고난 앞에 서야 했고 원수들의 추격으로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해방의 종이 울렸다는 것만으로 해방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다시 말하면 해방은 진행되는 것이지 만세 삼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해방받은 이스라엘이 바로의 추격대에 의해 추격당한 사실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사슬에서 해방된 이후 겪었던 격동의 역사의 시련과도 같은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해방 이후 42년 동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시련과 격동을 겪었습니다.민족 상잔의 비극적 사건이었던 6.25 동란도 겪었고

4.19,

5.16,10.26,6.29로 이어지는 역사의 격동과 변동도 겪었습니다.물론 지금도 우리 민족은 숱한 시련과 과제를 앞에 놓고 해산의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 해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었다고 해서 그 순간부터 천사가 된다든지 이땅에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죄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게 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부딪쳐 오는 시련과 싸워야 하고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해방은 시작이지 완성이 아닌 것입니다.
해방받은 이스라엘 앞에 홍해가 가로놓이고 뒤에는 추격대가 추격해 왔던 것처럼 죄에서 구원받고 해방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앞에도 홍해 같은 고난이 가로놓일 수 있고 바로의 추격대와 같은 고난의 추적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도 실패할 수 있고 슬픔을 겪을 수 있고 고통을 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2.갈등하는 선민의 모습입니다.
본문 10-12절을 보면 그토록 당당하고 승리감에 도취되었던 이스라엘이 “심히 두려워하였다”고 했고,“모세를 원망하였다”고 했으며,“여호와께 기도하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곧 그들의 갈등과 고뇌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만세를 부르고 애굽을 떠났고 손을 흔들며 행군했습니다.그러나 지금 그들은 두렵고 원망스럽고 고통스러운 존재로 전락한 상태입니다.그들은 하나님의 능력도 목격했고 바로의 가공할 추격대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원망은,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라면 왜 바로의 추격을 허용하셨으며 또한 이토록 처참한 떼죽음을 당하게 하려면 왜 애굽에서 건져냈는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유의 갈등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있습니다.이유는 우리들에게도 해방의 기쁨과 추격당하는 고통이 있기 때문이며,축복받은 기쁨과 고통당하는 아픔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두려워하다가,원망하다가,기도하다가”를 되풀이 하는 것은 우리가 겪고 있는 악순환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온도계의 수은주로 비유한다면 올라갔다 떨어졌다 하는가 하면 기도 역시 쉬다가 다시 하기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그러면서 하나님께 그 책임을 돌리고,원망하다가,기도하다가,사정하다가,하소연하기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3.능력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모세는 전전긍긍하는 백성들에게 다음의 몇 가지를 명령했습니다.13-14절이 설명해 줍니다.1)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이 명령은 큰 일을 행하려는 사람들에게 자주 주신 명령입니다.
여호수아서 1:5-7을 보면 가나안 땅을 점령해야 될 대임을 맡은 여호수아에게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는 말씀은 하박국 선지자에게도 하셨고 엘리야에게도 하셨고 바울에게도 하셨습니다.“두려워 말라”는 말씀의 배후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맹탕으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만용이고 우행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위대한 신앙인 것입니다.
2)가만히 서 있으라고 했습니다.
13절에서 “가만히 서서”라고 했고 14절에서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했습니다.그 무엇인가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우선 심리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에 이상 행동을 취하도록 되어 있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서둘 필요가 없습니다.
미8군이 가까이 있기 때문에 해바다 미국 독립 기념일 저녁이 되면 폭죽을 터뜨리는 소리를 듣곤 합니다.
10여 년 전 수요일 저녁 예배 도중이었습니다.갑자기 콩볶듯 하는 총소리와 대포 소리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꼭 전쟁이 터진 줄 알았습니다.그러나 그것은 미8군이 터뜨리는 폭죽 소리였습니다.폭죽터뜨리는 소리를 알고 들으면 겁이 안나지만 모르고 들으면 겁나는 소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가로놓인 홍해를 바라보면서,그리고 가까와지는 기병대의 말발굽 소리를 들으면서 가만히 서 있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3)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말씀이 중요합니다.그냥 우두커니 서 있으라는 것은 바보가 되라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앞에는 홍해가 가로놓여 있고 좌우에는 산이 가로막혀 있고 뒤에는 기병대의 추격이 가까와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은 소리지르기도 했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고 모세를 향하여 돌을 던지기도 했고 대성통곡을 하기도 했습니다.그때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냥 바보처럼 서 있으라는 것이 아니라,너희를 위하여 하나님이 싸우실 것이며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구원을 행하실 것이니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이스라엘을 고난 앞에 서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그들을 건져 내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본문 14:8을 보면 “여호와깨서 애굽왕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라고 했습니다.하나님은 바로의 교만을 철저하게 분쇄하시기 위해 자신이 해방시킨 이스라엘의 뒤를 추격하게 하셨습니다.아니 본래 이스라엘을 애굽에 들어가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셨고 그들을 해방시킨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게 볼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손 안에 들어 있는 존재들이었습니다.그것은 이스라엘만의 경우는 아닙니다.세계와 역사와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손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하나님이 쥐면 깨지는 것,불면 날아가 버리는 것,바로 그것들이 인간이며 역사입니다.
그날,홍해에서 하나님은 엄청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모세가 손에 든 지팡이로 홍해를 가리키자 동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그리고 홍해 한 가운데로 길이 뚫렸습니다.이스라엘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고 난 후 추격대가 홍해에 들어섰고 하나님은 그들을 수장시켜 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을 그날 두 눈으로 목격한 것입니다.하나님은 홍해를 만드신 분입니다.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은 궁창과 땅과 바다와 물을 만드셨습니다.피조물은 창조하신 분만이 통치하시고 다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그러므로 그 인간을 에워싸고 있는 모든 환난과 고통은 하나님만 해결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홍해나 바로의 추격대가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조용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하고 구하는 믿음이 문제였던 것처럼 우리들의 경우도 시련이나 환난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그 환난과 시련을 해결하시는 하나님을 바라고 믿는 믿음이 문제인 것입니다.
출애굽기 15:3을 보면 “여호와는 용사”라고 했습니다.그리고 15장 전체를 살펴보면 “주의 오른손으로,주의 콧김으로,주의 바람으로,주의 팔로 이기셨다”고 이스라엘이 노래했습니다.
거기엔 핵폭탄이나 중성자탄이나 레이저 광선이 없었습니다.그러나 그런 것들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15장에서 말하는 주의 오른손,주의 콧짐,바람,주의 팔은 한 마디로 주의 은혜를 의미합니다.하나님이 싸워서 얻은 승리지 이스라엘이 싸워서 얻은 승리가 아닙니다.그래서 은혜인 것입니다.내가 죄 가운데서 구원받고 해방된 것도 내 공로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된 것입니다.
우리 민적이 해방 이후 40여 년 간 이토록 번영을 누리며 살아온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하나님은 부족하긴 하지만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 나라와 이 백성을 때마다.위기에서 건져 주셨습니다.앞으로도 그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그 은혜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있고 그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있습니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였고 앞으로 살아갈 것도 오로지 주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구원도 은혜로 주셨고,돈으로 살 수 없는 천국도 은혜로 주셨으며,돈으로 지킬 수 없는 생명도 은혜로 지켜 주셨습니다.그 은혜에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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