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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앞을 향해 나아갑시다. (출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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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영예로운 졸업생들에게 본문을 가지고 몇 마디 말씀하려 하니 어 떻게 생각하면 좀 미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환경이 고 대 이스라엘 사람의 그것과 방불한 점이 없지 아니한 고로 특히 본문을 택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4년간이란 긴 세월을 두고 애쓴 결과, 이에 졸 업하면서 영예로운 졸업장을 받게 되었으니 이 이상 기쁨이 없겠지만 여 러분 앞에 놓여 있는 장벽과 험로는 흡사 옛날 이스라엘 민족의 당한 것 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4백년 동안 귀중한 이권을 상실하고 애굽에서 노예의 생활을 하던 이 스라엘 민족은 이때, 본문에는 모세의 인도 하에서 그 지옥생활을 벗어 나 밤으로 낮을 삼아 하나님의 허락하신 땅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도망 가는 중에 있었습니다. 이 민족이 당한 형편이야말로 참으로 곤경중의 곤경중이었습니다. 뒤로는 애굽사람의 군병이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놓여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져있었습니다. 이런 형편을 당한 민중의 고민이야말로 가히 보지 아니하여도 추축할 만합니다.

사람 사람마다 각기 살 길을 찾기 위하여 여러가지 계책을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어떤 이는 "오늘 이 지경에 이른 이상 원수의 칼에 죽는 것 보다 차라리 저 바다에 빠져 세상의 괴로움을 잊어버리는 것이 낫다" 하 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그럴 것 없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하며, 또 한편에서는 "그럴 수가 있느냐 죽더라도 우리는 애굽인과 한번 싸워 나보자"하며, 또 한 무리는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없고 애굽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들과 견주어 싸울 수도 없는 형편인 즉 죽을 때 죽 더라도 한 번 그들을 향하여 고함이나 질러보고 그후 결과를 기다려 보 자" 하였습니다. 과연 그들의 얼굴에는 절망의 흑운이 가리웠고 하나님 의 도우심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인생의 절망은 하나님의 귀히 쓰시는 기회라는 격언이 저희의 생각에 떠오르지 못하였습니다. 이때 모세는 물에 빠져 죽자고 하는 자에게 대 해서는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 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하였고,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하는 자 에 대해서는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 리라" 하였으며, 애굽 사람과 더불어 싸우자는 사람을 대해서는 무모한 행동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고, 고함을 치자는 사람들에게는 "너희는 가만히 있을찌니라" 하였 습니다.

이렇게 하여 군중을 정동시킨 후에 모세는 그 민중이 일찍이 생각하여 보지 못한 다른 방면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구원하 여주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즉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곧 오늘 말하려고 하는 본문의 대의입니다. 과연 이 말씀은 옛날 모세에 게 큰 힘을 준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에게 적지 아니한 교훈이 될 줄로 믿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전진할 것인가 움직임이 없이는 전진이 없고 전진이 없이는 성장이 없는 법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살지 말고 반드시 미래에서 살아야 될 것입니다. 과거에 있어서 유익이 있다고 할 것이면 이는 반드시 과거의 경험을 돌아보아 미래의 과정을 정함에 있을 것이며, 미래를 일층 더 유익하게 또는 좀 더 행복스럽게 하려 함에는 과거에 가졌던 신앙생활보다 좀 더 열심있게 한결 완전한 목적과 좀더 철저한 주의를 하면서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고 나아갈 것입니다. 과연 이 전진이란 말은 어떤 진실한 신자일지라도 언 제라도 잊어서는 아니될 명잠(영준)입니다. 전진하는 신자는 성장하는 신자요, 전진하는 교회는 성장하는 교회입니다. 우리의 앞길이 매우 참 담하고, 우리의 행정(행정)이 아주 험악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지도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쉬지 말고 전진하여 갑시다.

첫째, 지적인 면으로 좀더 나아갑시다. 영어에 졸업하는 날을 'Comm-encement Day'라고 합니다. Commencement란 말은 마친다는 말이 아니라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즉 모든 과정을 끝냈다는 것이 아니라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학교에서는 연구방법을 배울 것뿐이요, 그 방법 에 의하여 모든 연구를 시작하는 길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과연 이 지 식이라 함은 모든 진보의 첫째 계단이라 할 것입니다. 이 지식의 계단을 밟지 아니하고는 진보라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인류생활의 모든 필수적 인 지식도 이제부터 더욱 일보일보 나아가지 아니하면 아니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큰 지식을 우리는 얻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을 분명히 깨닫고 각 방면으로 보이신 그의 계시를 좀더 자세히 배우지 아 니하면 아니될 것입니다.

바울도 이런 의미에 있어서 골로새 교인들을 위하여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기를 기도한다"고, 또한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내가 모든 것을 해로 여김 은 내 주 그리스도 에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고 하였 습니다. 즉 자기의 가장 큰 욕망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아이작. 뉴튼의 말한 바 "나는 넓은 바다에서 몇 개의 조개껍질을 얻 은 어린이에 지나지 못한다"고 한 것은 자기의 자연과학에 대한 지식의 미천함을 탄식한 말이거니와, 사도 바울은 영적 지식에 대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부함을 그 길이와 높이와 넓이와 깊이를 가히 측량할 수 없다고 하였고, 자기는 이러한 하나님의 지식을 만분의 일이라도 얻 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은 경험할수록 더 욱더욱, 그 가히 형용할 수 없을 만치 큰 것을 깨달았으며 따라서 그 사 랑과 그 권능 속으로 일층 더 깊이 들어가기를 간절히 사모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만대 이래로 모든 진실한 신자들은 선배들의 깨달은 바 이와 같은 지식을 더욱 얻기를 사모하며 얻는 대로 이것을 더욱 확충하여 후 세에 전하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재학시에 과정의 하나로 성경 을 배우실때에 어떠한 감상 아래서 얼마 만큼의 취미를 가지고 공부를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그 말씀은 때때로 여러분의 앞길을 도와드 길 때가 적지 아니할 줄로 나는 믿습니다.

과연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 되며 내 길에 빛이 되나이다" 함은 시 편 저자의 감상입니다. 사도 바울은 일찍 이 에베소 장로들을 대하여 "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 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하셨습니다. 과연 그 말씀은 절망의 흑운이 둘려 있을 때에 한 가닥 광선을 비추어 줄 것이며 미로에서 방황할 때에 활로를 보여줄 것 입니다.

바라노니 여러분은 앞으로 더욱 이 성경 말씀을 좀더 연구하여 그 가운 데서 모든 하나님의 감추인 이치를 발견하며 그로부터 영의 양식과 영의 생수를 취하여 영적 생활을 계속할 뿐만 아니라 일층 더 확충하여 먼저 자아의 유익을 얻는 동시에 또한 대중의 활로를 자도하여주시기를 바랍 니다.

둘째, 고상한 생활 방면으로 나아갑시다. 여러분의 앞으로 어떠한 방면 으로 취직을 하실는지 모르거니와 좀더 고상한 방면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미국 어느 대학 졸업생의 말이 "금일 미국에서 할 일은 아메 리카를 개발함에 있다. 하천에 교량을 놓으며 습지를 치수하며 산을 뚫 어 길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들은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금일 미국의 급한 일은 미국을 개발함에 있지 않고 미국인 을 개발함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훌륭한 대화입니까 과연 금일 우리 조선의 급선무는 무엇입니까 천혜의 자원을 개발함도 급하지 아니한 것도 아니며 정치, 경제, 교육 그 방면이 급하지 아니한 바 아니 지마는 우리가 꼭 명심하여야 될 한가지 일은 이러한 건설사업에 착수할 인물 그것입니다.

아무리 지시고가 경험이 풍부한 인사라 할지라도 위로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아래로 민족을 사랑하는 그 사람이 아니면,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의 정신과 생활을 체험하는 사람이 아니면 이 난국에 빠진 백의민족을 건져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신앙으로 기초를 닦고 그 위에 아름다운 건물을 세워봅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일 것 같으면 그의 교훈을 받는 대로 우리 실제생활에 표현하십시다. 믿기만 하는 것이 그 다지 귀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으면 그 믿음이 실현될 것입니다.

뿌리가 깊히 박힌 나무는 자연히 결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닦아둔 이 귀한 신앙의 기초 위에 한층 두층 돌 위에 돌을 놓아 인격을 건설하 여 갑시다. 사도 베드로의 교훈과 같이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 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경건에 형제화목을 더하고 형제화목에 사랑을 더하여" 이로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가 없지 않게 합시 다.

셋째, 좀더 완전한 봉사적 방면으로 나아갑시다. 사람이 음식을 먹는 것은 힘을 얻고자 함이오, 힘을 얻는 것은 그 힘을 쓰려고 함에 있습니 다. 여러분이 4년간 형설의 공을 닦는 것은 한 달란트 받는 자와 같이 흙속에 파묻어 들 것이 아니라 그 얻은 바를 가지고 사회를 위하여 봉사 활동을 하실 것입니다. 혹이 말하기를 종교는 능동적 실행이라 함보다 수동적 정서에 있다 하나 이는 절반의 진리를 가진 것밖에는 못되는 말 입니다. 진실한 신앙이 있을 것이면 그 내적 경험으로부터 반드시 선한 행실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 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이지 아니하는 것이니라"고 야고보는 말하였습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아갈 것이 아니오 오직 내 아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들어갈 것 이라"고 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전진함에는 장애가 없지 아니함을 각오하여야 인생은 순조로운 것만은 아닙니다. 이때의 이스라엘 민족도 말할 수 없 는 역경에 처하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과연 얼마나 전진하였습니까 그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빨랐습니까 그들의 발걸음은 지지부진 더디기 만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 뒤를 돌아다본 것입니다.-뒤를 돌아다봄은 전진하지 못하는 가 장 큰 원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손에 쟁기를 잡 고 뒤를 돌아다보는 자는 하나님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하셨고, 사도 바 울은 자기의 성공비결을 가르쳐 "자기는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오 직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음질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히브리서 저자는 천국의 모든 영웅의 행한 일을 소개한 후 "우리는 참음으로 우리 앞에 있는 달음박질하는 마당에서 달려 예수를 바라보자" 고 하였습니다. 대개 각양 사업에 성공치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줄 압니다.

롯의 처의 예는 가위 만대의 교훈이 될 것입니다. 저는 뒤를 돌아보다 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자는 현대에 있는 모든 흥미 와 미래의 모든 소망을 잃어 버리는 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생선, 오이, 수박, 부초, 파 마늘 등을 생각하고 바로왕의 가혹한 칙령 과 역사, 감옥의 지독한 채찍을 잊어버린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인 동시 에 그들의 앞길에 전진치 못한 원인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썩어질 양식 을 위함보다 썩지 아니할 양식을 위하여 좀더 전력합시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하셨지 않습니까.

둘째, 전진치 못한 둘째 이유는 방황한 데 있습니다.-직행하지 않고 돌아가면 진보는 못됩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수십일이면 갈 길을 40년 동안 돌았습니다. 저희가 어느 곳에서 오랫동안 머문 것은 아닙니다. 가 기는 갔습니다. 그래도 전진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생활도 이와 같이 하루 가고 이틀 가고 계속하여 가는 중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의 운 명을 면할 수 없어 검은 머리가 희어지고 곱던 얼굴이 파리하여 집니다.

여러분들도 몇십년이 지나지 아니하여 한탄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 의 인생이란 그의 시일이 심히 짧은 것입니다. 이 짧은 시일을 여러분은 아무쪼록 잘 이용하시기를 부탁합니다.

전진치 못한 셋째 이유는 그들이 두려워함에 있었습니다.-이스라엘 민족은 앞을 향하여 전진은 하였지만 별로 나아간 것은 없었습니다. 저 희 앞에 있는 원수의 성은 하늘같이 높아만 보이고, 그 거민들은 대장부 요 저희들은 그들에게 비하면 메뚜기와 같이만 생각되었습니다. 그리하 여 저희는 공포에 싸여 전진하지 못하고 동으로 서로 방황하며 귀한 세 월을 40년이나 허송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공포같이 인생의 갈길을 막는 것은 다시 없겠습니다. 나 스스로가 무슨 사업을 하고 나 스스로가 이 난국을 당하였다 하면 그야말로 공포 와 절망을 아니 느낄 수 없겠지마는 우리 앞에는 구주시요 대장이신 주 예수가 계시고 모사이신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시고 배후에 만유 주 여호 와깨서 총사령관으로 계시니 두려울 것 무엇이며 염려할 것 무엇입니까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핍박이나 기근이 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라"(로마서8:35). 여러분이 정의와 인도의 깃발 아래서 백절불굴의 정신을 가지고 최후 일각까지 나아가 기어이 성 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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