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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승리자의 삶 (창 37: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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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아름다운 꿈을 꾸었습니다.

그것은 풍년과 축복의 꿈이었습니다. 그는 그 꿈을 꾸고 좋아하고 자 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꿈과 현실의 차이는 너무나도 큰 것이었습니다.

그 아름답고 영화로운 꿈에 비하여 요셉의 현실은 참혹 바로 그것이었 습니다.

오히려 아름다운 꿈을 꾼 그것 때문에 현실의 비극은 더했습니다.

 I. 바뀌지 않는 목장의 현실 (37:12-24)

요셉이 그 꿈을 꾼 이후에도 그 현실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의 삶의 현장은 여전히 목장이었고 그의 삶의 현실은 여전히 고달팠 습니다.

 1. 요셉은 여전히 목장으로 보냄을 받았습니다.(37:12-17)

아버지께 순종하며 갔습니다. (37:12-14)

37장 12절에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이 세겜에서 양 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 보내리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요셉은 [내가 그리하겠나이다]라고 흔쾌히 답하였습니다.

요셉은 꿈을 간직한 채로 여전히 아버지에게 순종하였습니다.

 야곱의 형제들이 왜 세겜까지 가서 양 떼를 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야곱에게 있어서 세겜은 온갖 회한으로 가득찬 장소였습 니다.

그것에서 그의 딸 디나가 봉변을 당했으며 그의 아들들이 끔찍한 만 행을 저질렀던 곳이었습니다.

또한 그로인해 야곱의 가족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떨었던 곳이었습니 다.(창34장) 그후 약 20년이 지났지만 그의 두려움은 여전했을 것입니 다.따라서 그는 요셉을 세겜에 보내어 아들들의 안부를 알고자 했습니 다. (37:14)

맡은 사명에 충실하여 갔습니다. (창37:15-17)

헤브론(마므레)으로부터 세겜가지는 약 100KM의 먼 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광야 길이요, 17세의 소년이 가기엔 결코 순탄한 길이 아니었 습니다.

그럼에도 요셉은 아무 불평없이 즉시 길을 떠났습니다. 요셉이 세겜에 도착하였을 때 그곳에 그의 형들과 양떼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 서 그는 [들에서 방황]하였습니다.

이 모습을 본 어떤 사람이 그에게 형들이 간곳을 알려 주었는데 그곳 은 세겜에서도 약 30KM나 떨어진 도단이라는 곳이었습니다.

 도단은 [우물] 을 뜻하는 [도트]의 쌍수로서 [두 우물]이라는 뜻입니 다. 한편 고고학자들은 그 당시 사람들의 거주지를 이지역에서 발견함 으로써 이곳자[ 세겜보다 더 좋은 목초지가 있었음을 입증했습니다.

 이런 자료들로 미루어보아 요셉의 형들은 세겜보다 물과 목초가 풍성 한 도단으로 양떼를 이끌고 옮겨간 것 같습니다.

도단까지는 도보로 약 4시간 거리이므로 이미 먼 길을 걸어온 요셉에 게 그 길은 결코 쉬 갈 수 있는 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포기하지 아니하고 맡은 사명에 충실하여 도단까지 갔 습니다.

 형제들을 사랑하므로 갔습니다 (창 37:15)

요셉은 자신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형들이었지만 그들을 사랑했습니 다. 또한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염려를 잘 알고 있었고 자신도 동일한 염려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겜에서 형들이 보이지 아니하였을 때 [들에서 방황]했던 것 입니다.

[들에서 방황했다]함은 요셉이 형들을 찾아 헤메는 모습의 간절성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말입니다.

 요셉의 이러한 걸음은 분명히 하나님 아버지의 명을 받고 이 세상에 오신 에수 그리스도의 모습에 대한 예표라 할 수 있습니다.

 2. 요셉은 목장에서 잡혔습니다. (창37:18-24) 1) 요셉은 형들의 살인 음모에 빠졌습니다. (창37:18-20)

계획적인 음모였습니다. (37:18)

목장으로 오고 있는 요셉을 본 형들은 요셉을 죽일 살인 음모를 획책 했습니다. 본문 18절은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평소 요셉을 시기하고 질투하던 마음이 살인을 계획하게 하였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자는 자](요일 3:15) 라는 말씀에 반 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정면도전 이었습니다. (창37:19-20)

형들은 요셉을 가리켜 [꿈 꾸는 자가 오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꿈 꾸는 자]라는 말은 [꿈들의 주인][꿈들의 명수][꿈쟁이][몽상가] 라는 말로 조롱과 경멸 그리고 증오심이 섞인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을 죽인 후 [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 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요셉을 죽이려는 이유가 요셉이 꾼 꿈 때 움이었음을 시사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을 죽이려는 형들의 살인 음모는 단순히 살인에서 그치 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정면 도전이 되고 만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데 일치단합했습니다. (창 37:20)

요셉의 형들은 이 일에 함께 모의하고 의기투합 하였습니다.

그 표현이 20절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 우리가... 우리가 볼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우리는 창세기 11장에서도 발견케됩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도발적인 모의에 대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 라고 하는 표현은 그들이 악을 꾀하는 일에 얼마나 분주하였으 며 열심이 있었는가를 나탸내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2) 요셉은 구덩에에 던져졌습니다 (창37:21-24).

 그 형제들 중에 맏형인 르우벤은 대단히 동정적이었습니다. 그는 요 셉을 구원 할 방책으로 말하기를 [우리가 그 생명은 상하지 말자] (창 37:21) 고 했습니다.

그때에 현장에 도착한 요셉에게 형들은 달려들었습니다. 요셉이 입었 던 채색옷을 벗겼습니다. 그리고 그를 잡아 깊은 빈 구덩에에 던져 버 렸습니다. 그리고 형들은 둘어앉아 음식을 먹었습니다.

아브라함가에 일어난 비극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사람은 비록 그가 육신의 혈통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일지라도 본래에 있어서 죄인임을 다시 한번 배우기 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꿈 꾸는 자, 꿈을 가진자, 꿈을 자랑하는 자를 두고는 못 사는 습성이 있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과 정의에 불타는 자들을 잡고 구 덩이에 던지고 죽이려는 음모에 언제나 익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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