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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녀을 위한 믿음 (창 43: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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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그 나라의 소망은 젊은이들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젊은이에게 소망 이 있다고 해서 모든 청소년이 한국의 희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바르고 힘있게 자라는 청소년만이 이 나라의 참다운 희망의 재목이 됩니다. 바라기는 오늘 우리 교회의 청소년들과 우리 성도의 자녀들은 모두가 바르고 힘있게 자라 기를 축원합니다.

이 시간에는 야곱의 일대기를 통하여 어떻게 하면 우리의 자녀들을 바르고 힘있게 양육할 수 있을까를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야곱은 자기의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을 가지고 있엇습니다.

 야곱은 누구보다도 어린이의 권익을 신장해준 선구자였습니다. 야곱은 어린 아이를 존중히 여기는데 앞장을 서는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그러기에 자기의 어린 자녀들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다 맡기며 길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 녀들을 너무나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만이 자식들을 사랑하는 최선의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여러가 지입니다. 그러나 바람이 불면 날아 갈까 놓으면 꺼질까 지나치게 우대하는 것 만이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족장들은 자기의 자녀들을 사랑하면 사랑할 수록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본문14절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 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 보내 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피맺힌 말입니다.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로다"고 하는 말씀 못 지 않게 비장한 말씀입니다. 야곱은 자기의 열두 아들 중에 11째 아들인 요셉을 일찍이 잃어버린 슬픔을 당하였습니다. 더구나 그 아들의 어머니 라헬이 일찍 죽고 엄마 없이 자라난 아들이었기에 더욱 슬펐던 것입니다. 그렇게 슬픔의 세 월을 보내는 동안 그 땅에 흉년이 들어서 애굽으로 량식을 구하러 보내누 자식 도 인질로 잡혀서 돌아오지 못하고 마지막 남은 어린 아들 베냐민까지 데려오라 고 하는 압력을 받고 너무나 고심하였습니다.

43:36에서 야곱이 말하기를 "너희가 나로 나의 자식들을 잃게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야곱의 장자 르우벤이 아버지께 간청하기를 "내가 그를 아버 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나의 두 아들을 죽이소서"했습니다. 그러나 야곱 은 기어코 베냐민을 안보내겠다고 버티었습니다. 그럴 때 야곱의 아들들은 다시 간하기를 우리가 베냐민을 데리고 갔더라면 벌써 두 번이라고 다녀왔겠다고 졸 라댔습니다. 그 때에 야곱은 너무나 고심하다가 결국은 자기의 자식들을 자기가 붙잡아 둔다고 해서만 되는 것이 아님을 믿고 애굽으로 보내기를 결정을 하면서 "내가 자식들을 잃으면 잃으리로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신앙입 니까 모세의 어머니 요게벱의 믿음을 보십시요. 애굽의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 중 에 아들을 낳으면 무조건 다 죽이는 때였습니다. 요게벱은 자기의 사랑하는 자 식을 죽는데 내어 주기가 싫어서 3개월 동안이나 숨겨서 길렀습니다. 도저히 더 이상은 숨길 수가 없다고 판단될 때 갈대로 상자를 만들고 역청을 발라서 모를 그 속에 담았습니다. 그 아리를 나일강으로 가지고 가서, 거기서 강물에 띄워 보냈습니다. 그 때에 사랑하는 아들을 강물에 띄워보내는 어머니의 심정을 상 상해 보십시오. 그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죽이시면 죽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살리시면 살리로다 하는 믿음으로 보내지 않았겠습니까 요게벱이 얼마나 기도 핸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진정으로 여러분의 자녀를 사랑하십니까 사랑하시면 하나님의 손에 여러분의 자녀를 맡기십시오. 우리가 자녀를 양육할 책임도 있고, 또 교육시킬 책임도 있습니다. 또 병들면 치료할 책임도 있습니 다. 그러기에 자녀들의 장래를 위해 념려를 합니다. 자녀를 위한 근심과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도 이상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 할 수가 없는 것이 아 닙니까 죽고 사는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버려야 합니다. 저들이 잘되고 못되는 문제를 맡겨버려야 합니다. 시37:5"너희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고 했습니다.

 2,야곱은 항상 자녀를 데리고 례배하기를 힘썼습니다.

 창35:3절에 보면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날에 내게 응답 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 노라."고 했습니다. 또 창46:1"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발행하여 브엘세 바에 이르러 그아비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니"라 했습니다. 야곱은 항상 예배하는 재미로 살았습니다. 어려운 일은 만나면 이전에 도와주시던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도와 주시기를 바라고 또 기쁜 일, 감사한 일을 당해도 하나님께 제 단을 쌓고 희생을 드렸습니다. 자기 혼자서만 예배하지 않고 온 가족과 함께 례배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녀를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교육은 다 무의미한 것입니다. 인간 됨됨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는도 하나님께 례배하는 것 이상 좋은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 는 발명의 왕 에디슨을 봅니다. 에디슨은 학교에 들어가자 천치라고 하는 낙인 이 찍혀 버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1=2라고 100번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아 무리 해도 그 머리에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몇 번이고 가르쳐 놓으면 도로 1+1=1 이라고 답안지를 것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때려도 안듣고 달 래보아도 안들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담임 선생님은 에디슨의 어머니를 불렀습 니다. 선생님은 어머니를 향하여 "이 아이를 데리고 가십시오. 이 학교에서는 더 이상 가르치지 못하겠다고 판단이 되었답니다."했습니다. 어머니가 묻기를 왜 그러십니까하니 선생님은 말씀하시기를 "당신의 아들은 천치에 속한 아이입 니다. 1+1=2도 이제까지 모르니 머리가 정상이 아니지 않습니까" 에디슨은 마지 막까지 고집하기를 1+1-1이지 왜 2가 됩니까 하고 이유만을 캐는 것이었습니 다. 하는 수 없이 어머니는 에디슨을 데리고 집으로 와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 습니다. 그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하나님, 세상 사람들은 다 쓸모가 없다고 하나 하나님께서는 이 아이를 쓰실 데가 있으실 것이니 이 아이의 머리를 좀 열 어 주시옵소서 그래서 당신이 원한는대로 써 주십시오"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 렇게 길러 놓은 에디슨은 곧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통하여 전기를 비롯하여 수 없이 많은 것드을 발견하였습니다.

륜리적인 면에서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이상이 없습니다. 오늘의 사회교육 이 실패한 것은 미국의 철학자 죤듀이의 자발적으로라는 교육철학 때문이었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교육을 받은 미국의 청소년들이 교회로 부터 멀어졌습니다. 그 후에 미국의 많은 청소년들이 탈선하여 오늘의 사회의 제 일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가 자 발적으로 교회에 나오겠지가 다 불신의 원인이 되어버린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성경의 교육철학이 최고 오래된 것이며 최고 발달된 것입니다. 앉았을 때에든지 걸어가면서든지 부지런히 성경을 가르치면 참 사람이 된다고 했습니다.

 3.야곱은 죽는 순간까지 자녀들에게 축복을 하는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창49:1절이하에 보면 그의 12아들들을 위하여 일일이 축복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은 147년 간의 생애를 통하여 인생의 항로는 험악하였습 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철저히 깨달았던 것입니 다. 오직 자녀들에게 물려줄 최대의 유산이 있다면 하나님의 축복이요, 신앙이 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원해 수완이 좋고, 처세에 능란하고 사회에 적응력이 좋아서 어떠한 난관에서도 현실타개에 능수하였습니다. 그리고 생활면에서 생존경쟁에 누구에게 져보거나 물러서는 일이 결코 없었습니다. 그의 계획하는 바를 관철시키는데 영 특한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성공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영적으로 모든 것이 실패였습니다. 잘 되었다고 생각한 모든 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 와 축복인 것을 뒤늦게야 깨닫았습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자식 들에게는 이 같은 하나님의 축복을 물려주어야 될 것을 결심했을 것입니다.

 야곱이 자기의 자녀들을 축복하되 몇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1)자기의 장자부터 차례대로 축복하였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되 반드 시 형님과 동생의 차서를 지키도록 지도해야 된다고 하는 원리입니다. 야곱은 막 내 아들이 어리고 불쌍하다고 해서 베냐민부터 축복하지 않고 르우벤부터 축복 했습니다. 성도는 언제나 어른과 아이의 차서를 지키도록 가르치고 사랑해야 합 니다.

2)골고루 축복했습니다. 조금도 편애가 없이 축복하고 사랑했습니다.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다 축복했습니다. 자녀의 장래를 망치는 것은 자식을 편파적으 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3)자녀에게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했습니다. 창49:28"그 아비가 아들들에게 말하고 축복하였으되 곧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자녀 의 장래를 망치는 것도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그 중에도 자녀의 역량도 알지 못하면서 무조건 크게, 무조건 훌륭하게, 무조건 높게 축복 받기만 원하기 때문 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육신이 잘 되기 보다는 영혼이 잘 되기를 바라야 합 니다. 자식의 육신을 낳아서 기르는 것만으로 다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영 이 거듭나야 하고 영혼이 자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어버이의 믿음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항상 제단 쌓는 어버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 고 항상 축복하는 어버이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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