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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벧엘에서 (창 28: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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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는 인류의 역사를 6천년으로 봅니다. 6천년전 부터 오늘에 이르 도록 사람들의 마음속에 풀리지 않는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본재여부입니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은 과연 계신가''계시다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궁금증이 끊이지 않고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많은 노 력을 해오고 있습니다.

 신학에서는 이런 사람들의 노력을 합리론적인 유신론 증명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이성적인 사고로 하나님의 존재여부를 증명해보려는 시도를 뜻하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유신론 증명에는 네가지 있는데 첫째는, 본체론적 유신 론 증명, 둘째는 우주론적 유신론 증명, 셋째는 목적론적 유신론 증명, 넷 째는 도덕적인 증명입니다.

 이중에서 본체론적 유신론증을 살펴보면,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를 믿든 지,안믿든지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마음 속에 있다고 합니다. 누구나 태어 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마음 속에 하나님이라고 하는 분이 어떤 분이시며, 어디에 계신가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추적해 나가서 하나님을 발견하려는 것이 본체 론적 유신혼 증명인 것입니다. 안셀렘이나,데카르트같은 유명한 신학자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우주론적 유신론 증명을 주장하는 존 로크나 토마스 아퀴나스,아리스토텔 레스같은 신학자들이 우주론적 논증은 인과율의 법칙에 의한 논증입니다.

어느한 존재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연구하다 보면 인류 최초의 조상 이 나타나게 되고, 그 인류 최초의 조상은 바로 하나님이 만들었음을 주장 함으로 하나님의 조재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목적론적 유신론 증명을 보게되면, 우주의 삼라만상에는 질서가 있고 분명 한 조화가 있음을 설명합니다. 우주의 대 자연계의 질서와 조화는 우연이 아니라 그것을 주장하시는 분이 있고,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플라톤이 그렇게 주장했고, 키에르 케고르가 그렇습니다.

 마지막 도덕적인 유신론증이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내면에는 양심이 있는 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주장합니다. 인간의 마음 속에 양심이 있는 것을 보면 그 양심을 만드신 하나님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임마누엘 칸 트는 주장했습니다.

  무신론과 유신론 =

위에서 살펴본 철학자들의 연구노력은 역사와 더불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간의 방법으로는 하나님의 존재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하나님을 발견하려는 사람들은 세가지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두번 째는 하나님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만날 수는 없다는 생각이빈다. 셋째는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이 만든 법칙으로 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하나님의 조재를 확실히 알고, 느끼고 계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계신 것도 같고 안계신 것도 같은 답답한 마음입니까 그것도 아 니면 하나님의 조재여부에 대해 관심도 없이 그저 가족친지에게 이끌려 교 회를 나오십니까

여러분, 오늘 우리가 분명히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헤아일 수 없을만큼 많은 종교가 생겨나고 저마다의 신을 만들어 내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 어딘가에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고자 하기 때문입 니다.그러나 이런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확연하게 증명하지 못 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이 무신론 에 빠지게 되고 세상 속에서 죄를 먹고 마시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 많은 신학자들과 성직자들이 참석하는 학술대회 가 열렸습니다. 그 참석한 많은 신학자들 중에서 무신론자인 프랜시스 에어 롤스하는 철학자가 무신론적 입장에서 논문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오늘날과 같은 도덕과 윤리의 세계에서 인간은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윤리와 도덕에 근거를 두고 세상을 살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도 살아나갈 수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논문을 마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습니다. "나는 여러 분의 신앙과 경쟁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희망이 없기 때문입 니다."이상의 후랜시스 에어롤스의 말에서 우리는 무신론의 허구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수없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강조합니다. 시편 14편 1-3 절을 보면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 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 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려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서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말합니다.

 몇년 전에 한 목사님이 정부의 허락을 받고 북한에 갔었습니다. 유명한 이 북교수들과 함께이야기를 하던 중에 북한의 교수 한 사람이 이 목사님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당신은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 모양인데 하 나님의 모습을 한 번이라고 봤습니까 아니면 목소리를 들어봤습니까 무 엇으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그 북한 교수에게 목 사님은 논리적으로, 성경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잘 설명해 나가니까 이 북 한 교수는 예수님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고 예수쟁이들은 말을 잘한다더니 그말이 정말이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나오지만 내가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과연 계실까내 가 정말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일까 정말 하나님이 계시다면 한번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계 심을 확신하는 계기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야곱을 통한 교훈 =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살던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곱은 형의 장자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빼앗고 눈먼 아버지의 축복을 가 로챈 죄 때문에 형 에서의 미움을 받고 야간 도주를 하게 됩니다. 어머니가 주신 쌈짓돈,기름 한병,빵 몇개를 가지고 경황없이 도망을 가다가 지쳐서 루스 들판에서 처량하게 잠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돌을 베개로 삼고 잠을 자던 야곱은 꿈속에서 천사들이 사닥다리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환상을 보 게 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됩니다. "야곱아, 나는 네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네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다.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너와 너의 후손 에게 줄 것이다. 이 땅에 너의 자손이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고,동서남북을 편만할 것이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고 어디를 가든지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며,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 나지 아니하리라." 그 황홀하고 두렵고 찬란한 꿈을 꾼 야곱을 놀라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에 계시 거늘 내가 알지 못했도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리고 야곱은 자신에 비고 자던 돌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께 서원의 기도를 하게 됩니다.

 위의 말씀은 야곱이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 못하다가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 게되는 놀라운 신앙적 체험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신앙에 힘이 없습니까 하나님이 바로 나와 함께 계신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힘은 한 님의 존재 여부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야곱의 이런 놀 라운 사건이 여러분에게도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야곱을 살펴보면 하나님을 모를 때는 신앙생활이 형편없었습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났고 신앙교육도 잘 받았지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모를 때는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팥죽 한그릇에 형 에서의 장자명분을 빼앗는 탐욕의 죄를 지는가 하면 형의 옷을 입고 어머니가 만들어준 별미를 이용해 서 눈먼 아버지를 속이는 속임수와 거짓말하는 죄를 지었으며 죄를 짓고 불 안에 떨며 도망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어떤 사람들이 죄를 짓습니까 하나님이 지금 나를 보고 있다 고 생각하는 사람은 죄를 짓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 면 야곱과 같이 탐욕의 죄에 빠지고 맙니다.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도망을 다니게 됩니다.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야곱이 루스 들판에서 잠을 자다가 꿈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보고 느끼고 체험하고 확신한 다음 생활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

17절에 보면 "이에 두려워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 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라는 말을 합니다. 하나님 에대한 외경심이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 사람은 말이 달라집니다. 하나님 중심의 말을 하게 됩니다.또한 생활자체도 달라지게 됩니다. 본문 18절에 보면 야곱은 베고 잤던 돌을 세워놓고 그 위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 기름은 여행객에게는 필수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돌 위에 모두 부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며 헌신하는 야곱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이 있는 사람 은 시간도, 물질도, 모든 것을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는 사람은 기도하게 됩니다. 본문 20-22절을 보 면 야곱의 서원 기도가 나옵니다."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 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 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4둔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느끼는 사람은 깊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 원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는 데는 인간이 먼저 하나님을 찾는 추구의 방법과 하나님께서 인간을 찾아주시는 계시의 방법이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절망적인 환경에 처해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꿈을 통해서 찾아오셨습니 다. 그러므로 야곱이 꿈을 꾼 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것인데 오늘날 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본재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말씀을 보고 듣는 사람입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꿈에서 본즉","또 본즉"."또 본즉" 이 렇게 보았다는 말이 세번이나 나옵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고, 또 보고, 또 보십시오. 성경을 보고 또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셨다는 엄청난 보혈의 역사를 마음 깊이 체험할 것입니다.

 진정으로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뜨거움이 있고, 회개가 있고 영적 인 느낌이 강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교제하는 사람은 하나님 이 살아계시는 실존의 역사를 마음속에 느끼고 체험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 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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