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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갈릴리 회상 (창 35:1-3, 마 2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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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감격이란 얼마 지속되지 못한다. 기쁜 일이 있어도 금방 괴로운 일을 생각하고 기쁨을 쉽게 망각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의 기쁨 보다 고기가마와 떡을 더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기쁨보다 괴로움을 더 생각하고 예수님의 죽으심을 비통해 하고 있었으며 예수님의 부활과 갈릴리에서 있었던 감격을 잊고 있었다. 예수님은 정치의 도시요 경제의 도시인 예루살렘을 떠나서 소박하고 시골인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보리라고 하셨다. 공생애를 함께 사시던 갈릴리로 가서 제자들을 보리라고 하신 주님의 갈릴리 회상은 우리의 신앙적 회상이어야 한다.

1. 갈릴리 회상은 처음 부르심의 회상이다.

예루살렘에서의 제자들의 모습은 초라하고 무력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몇 번이나 수난예고를 하셨고 준비를 시켰지만 일이 닥치자 뿔뿔이 흩어졌고 입성할 때는 누가 크냐고 하는 자리다툼을 하였지만 잡히실 때는 다 도망하였다.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제자들에게 다시 처음 그들을 선택하시던 그 감격의 자리고 이끌기를 원하신다. 한사람 한사람을 신중하게 불러주시고 그들에게 능력을 주시던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 그 감격을 회복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감격의 상실은 패배를 느끼게 한다. 처음 부르신 감격의 자리는 새로운 용기로 교회를 세우고 전도하게 한다. 우리도 주님의 품을 떠나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처음 은혜를 받던 그 자리로 돌아가는 회상이 필요하다.

2. 순수한 신앙의 회상이다.

예루살렘의 정치는 술수를 동반하고 경제는 이기심을 동반한다. 예루살렘을 입성하면서 서로 높아지려는 정치적 미련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원래의 자리 갈릴리고 돌아가라는 것이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회개를 의미한다. 갈릴리는 회개의 자리이다. 이런 정치적 기회주의적 자리를 벗어나서 회개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갈릴리로 가는 자만이 주님을 만난다. 갈릴리는 순수한 예수님과의 만남의 자리였고 기적의 자리였고 말씀의 자리였고 은혜의 자리였다. 순수한 신앙의 회상의 자리인 갈랄리로 돌아가기를 주님께서는 원하신다. 제자들은 주님이 돌아가신 다음 섭섭한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죽으려면 왜 불렀느냐는 비판과 섭섭한 마음도 갈릴리에서는 다시 순수한 신앙으로 돌아갈 수 있다.

3. 전도와 열정의 회상이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군림하신 주님과 함께 일거에 세상을 정복하리라는 기대를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마귀의 방법이다. 천하를 다 주겠다는 권력과 꿈은 예수님의 방법은 아니었다. 갈릴리에서는 개인적으로 사람을 취하셨다. 자신을 선택하신 개인적 관계를 주께서는 원하신다. 한사람의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고 취하시기를 원하시는 갈릴리 전도의 방법으로 제자들을 다시 이끌어주신 것이다. 생명은 갈릴리의 방법으로 얻어진다. 예루살렘의 방법은 생명을 얻는 방법이 아니라 결국 무기력하게 하는 방법이다.

자신의 욕망을 지키려는 예루살렘을 떠나서 갈릴리에서 주님이 주시는 방법으로 세상을 얻고 주님을 만나는 갈릴리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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