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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만드시는 가정 (창 02: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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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이 5월에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이 만드시는 가정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가정은 사람의 생각이나 뜻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만드시고 그가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시며 그를 깊이 잠들게 하신 후 그의 갈비뼈를 취하여 하와를 만드시고 아담을 내조해 가정을 이루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건강하고 튼튼하게 서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지혜와 가르침을 받아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시작하신 가정이니 하나님께서 계속하여 돌봐 주실 것은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가정이 파괴되고 상처를 입는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인본주의적으로 가정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이기주의와 탐욕이 가득해서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하며 상처를 입고 입히는 삶을 만들고 만 것입니다. 이러한 삶에서 속히 벗어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 본래의 모습을 찾기 위해 가정과 가족관계 전반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가정과 부부 관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부부관계를 동물적인 욕망 달성을 위한 관계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로 마음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곧장 헤어져 버리고 맙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전혀 가정을 신성시 하지 않습니다.
제가 구라파에 선교여행을 가서 타고 가던 택시의 젊은 기사에게 나이와 결혼 여부를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나이는 서른 다섯이구요, 결혼은 했기도 하고 안했기도 합니다.”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게 무슨 말이요”하고 물었더니 한 여인과 5년 동거하다가 헤어지고 지금 또 새 여자를 구하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왜 그렇게 사느냐고 질문하니 그는 가정이나 결혼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면서 좋으면 함께 살고 싫으면 헤어지면 그뿐이지 법적으로 얽혀 매어 살 필요가 무엇이냐고 오히려 제게 물었습니다. 요즈음 유럽 젊은 이들 중 결혼해서 얽매어 살려고 하는 이는 없다고 덧 붙였습니다.
여러분, 가정이란 생물학적인 필요 이상의 신성하고 순결한 사랑의 관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서 하와를 만들었다는 것은 그들이 둘이 아니라 하나로서 가장 친밀한 관계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흙으로 만드셨으니 하와도 흙으로 만드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태여 아담의 갈비뼈를 취했다는 것은 가장 친밀한 사랑의 관계가 가정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육체적인, 그리고 동물적, 생물학적인 관계 뿐 아니라 영과 영, 영과 혼이 통하는 유대관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이 하와를 보고 이는 나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항구적인 관계를 말하는 것이며 잠시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일시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정이란 하나의 깊은 협동관계로 살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남자는 돕는 배필이 필요하다. 그래서 돕는 배필로 여자를 만들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여자의 도움없이 살아갈 수 없고, 여자는 남자의 돌봄없이 살아갈 수 없는 보완관계로서의 한 가정을 주님께서 세워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부부의 위상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남편은 머리가 되고 아내는 몸과 수족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머리가 몸을 이끌어 가지만 그러나 수족이 머리를 받들어 주어야 됩니다. 머리도 감겨주고 세수도 시키고 머리의 명렬에 따라 옷도 입는 등 모든 것을 해주어야만 합니다. 머리의 생각을 실제로 행동화하는 데는 수족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가정에서 남편이 머리가 되고 리더가 되지만, 그러나 남편의 생각대로 움직여 주는 수족인 아내가 있어야 모든 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머리는 몸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사랑은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꾸 달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를 희생하고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게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의 구원을 위해 독생자를 주신 것과 같이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머리는 몸을 사랑함으로 먹이고 씻기고 아름답게 입히고 평안하게 하고 보호하고 치료시키고 행복하게 만들며 올바르게 인도해야 하는 것처럼 한 가정의 가장이요 리더인 남편은 그의 수족이요 몸된 아내를 돌봐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활비를 주어야 됩니다. 어떤 남편은 부인에게 생활비도 주지 않고 밤낮 때리기만 합니다. 가정은 이렇게 폭력을 행사하는 곳이 아닙니다. 부인은 가정의 화초와 같습니다. 부인을 아름답고 평안하게 살 수 있도록 여러 어려움과 위험에서 보호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인이 병들면 정성을 다해 치료해 주어야 합니다. 자기 몸이 병들 때 치료하지 않는 머리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지도력을 발휘해 생활을 잘 인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태도인 것입니다.
성경은 남평들이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은 우리의 영적인 남편이고 우리는 아내가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남편되신 예수님께서는 신부인 우리들을 먹이시고 씻기시고 아름답게 입히시고 평안하게 보호해 행복하게 해주시고 치료해 주시고 천국에까지 이끌어주시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멋있는 신랑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세상의 남편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서 멋있는 남편으로서의 자기의 위상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몸은 또한 머리를 받들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아내된 사람은 남편을 리더로 받들고 살게 됩니다. 수족이 머리를 받드는 것처럼 받들어야 됩니다. 머리를 받들지 않고 자기 스스로가 마음대로 행하려고 하면 병든 가정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못난 남편이라도 태어날 때부터 심리적으로 남편은 리더로 태어나지 종으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인정을 안해주어 집에서 짓밟힌 남편은 회사에 가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부인은 못된 머리라도 머리로 만들어주어야 하고, 그 머리에 복종하고 공경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남편으로 만들어 주고, 머리로 만들어 주고, 리더로 만들어 주고, 그리고 남편을 공경하고 복종하며 따라간다는 것은 굉장히 현명한 일입니다. 그렇게 할 때 자기도 행복하고 가정도 행복하고 자녀 교육도 잘 되는 것입니다.
머리와 몸이 하나인 것처럼 남편과 아내는 항상 마음으로 함께 있고 끊임없는 대화를 해야하는 것입니다. 머리와 몸이 서로 떨어져 있어서 머리는 머리대로, 몸은 몸대로 움직이면 그것은 벌써 죽은 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항상 나편과 아내는 일체의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2. 가정과 부모자녀 관계
자식은 야웨의 주신 기업이요, 선물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결합으로 우연히 얻은 생물학적인 산물이 아닙니다. 자식은 하나님께서 천국백성을 양성하기 위하여 맡겨 놓으신 하나님의 사업입니다. 자식은 개인 소유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성을 기울여 하나님의 사업으로서 자식을 길러야 됩니다. 학자들은 어린이가 한 살에서 여섯 살 때에 그 인격의 기초가 다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부모 밑에 있을 때에 말을 배웁니다. 특별히 어린 아이들은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이북 남자하고 경상도 여자하고 결혼을 해서 사는 집에 심방을 가보니 그 애들이 전부다 경상도 말로 ‘목사님, 오이소’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그저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오고 애들은 늘 어머니와 생활했기 때문에 어머니의 언어를 배운 것입니다. 말은 그 인격을 지배합니다. 그 언어가 바로 그 사람의 인격을 주장하는 큰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은 집에서 사랑과 미움을 배웁니다. 사랑은 받은 사람이 줄줄도 압니다. 저는 과학자들이 원숭이 새끼를 가지고 실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없이 우유를 먹여 자라게 하고 부모의 사랑없이 자라게 한 원숭이를 나중에 수컷과 짝을 지어주니 새끼를 낳아도 새끼를 늘 두들겨 패지 사랑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원숭이 부부 사이에서 사랑을 받고 어미 원숭이에게 매달려 자란 새끼 원숭이를 나중에 결혼시켰더니 새끼들을 역시 끌어안고 살며 사랑을 주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은 사랑을 할 줄 알지만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사회의 문제아들은 왜 생깁니까 가정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가정에서 따뜻한 사람과 인정을 받지 못할 때 그들은 사랑을 베풀 줄 모르고 사회를 적대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긍정적, 혹은 부정적 삶을 배웁니다. 부모님들이 밝게 인생을 살면 밝은 인생관을 갖게 되고 부모님들이 어두운 인생관을 가지고 늘 불평, 원망, 탄식 속에서 살면 그와 같은 인생관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윤리와 도덕관도 집에서부터 배웁니다. 학교 교육은 가정 교육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가정에서의 신앙 교육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어린아이 때부터 하나님 경외함을 가르치고 기본신앙 실천과 사랑을 가르쳐야 합니다. 말씀을 귀중히 여기고 읽고, 열심히 기도하고 성수주일하고 헌금하고 전도하고 봉사하는 일들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됩니다. 성경은 어린 아이에게 가르친 것은 백발이 되어도 그 어린 아이에게 남아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어린 아이들에게 신앙적인 교육을 시키고 그리스도를 그들의 마음에 심어주는 것이 어떠한 재산을 남겨주는 것보다도 귀중한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인이 되어서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어느 한 남자가 제게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그가 중학교 시절에 학교 대 학교 야구시합을 했는데 열심히 응원을 하고 고함을 치고 그러다가 자기 학교가 아슬아슬하게 한점차로 이겼다는 것입니다.
흥분해서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식구들과 이야기하는 중인데, 그가 “아버지, 오늘 우리 학교가 야구시합에서 이겼습니다. 아주 치열한 경쟁으로 이겼습니다”라고 말씀드리자 아버지가“시끄럽다.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무슨 소리냐”고 호통을 쳤다는 것입니다. 그말에 그는 일생에 잊을 수 없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는 개와 고양이와 한가지다. 나의 지극한 관심사에 대해서 아버지는 추호도 관심이 없다’는 생각으로 그는 아버지에게서 돌아섰고 40대가 되었는데 그 나이먹은 아버지에 대해서 추호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여러분, 어린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어른들 보기에는 보잘 것 없는 사건이지만 자기에게는 굉장한 사건이기 때문에 그걸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에게 삶에 참여의식을 갖게 해서 가정의 크고 작은 일들을 아이들과 같이 의논을 하고 그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것 뿐만 아니라 제가 부모인 여러분들께 정말 부탁하고 싶은 것은 어린 아이에게 좋은 추억을 많이 남겨 주라는 것입니다.
제가 친하게 지내는 어디스 퀴너 목사님은 아버지가 90이 다 되셨는데 토요일이면 꼭 아버지가 집을 찾아가 자동차로 아버지를 모시고 함께 골프를 치러 갑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해서 당신은 매주 토요일마다 아버지께 그렇게 합니까”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이 대답하시기를 “목사님, 우리가 자랄 때 우리 아버지가 바쁘셨을텐데도 토요일이면 반드시 우리와 함께 낚시하고 등산하고 야구를 가르쳐 주시고 골프를 가르쳐 주시고 하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장성한 사람이 되었으니 토요일이면 아버지를 모시고 나가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기고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추억을 통해서 끊임없이 솟아납니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들과 잊을 수 없는 역사를 만들어 주십시오. 저는 교회를 세운다고 너무 바빠서 아이들과 놀아준 적이 없는 것을 참으로 후회하는데, 언젠가는 꼭 한번 막내를 데리고 설악산에 놀러가서 함께 일주일을 지낸 적이 있습니다. 저희 막내는 저와 이야기를 할 때면 늘 아버지하고 설악산에 갔다온 것이 참 즐거웠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부모와의 추억이 있어야 그것이 기초가 되어 부모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솟아나오는 것입니다.

3. 가정과 일가친척과의 관계
부모와 결혼한 자녀 부부와의 관계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전통적인 대가족 제도는 좋은 면도 있지만 가정에 깊은 시름을 가져왔습니다. 왜입니까 함께 있음으로 말미암아 시어머니와 며느리,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갈등과 알력이 생겨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제가 신앙상담 중 가장 괴로운 상담이 고부간의 갈등 문제인 것입니다. 이 갈등이 매우 심각하여 아들이 마음의 평화를 잃고 집에 돌아오기를 싫어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할 수만 있으면 남자는 그 부모를 떠나 아내된 여자와 함께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경제 등 여러 여건으로 함께 살게 되더라도 심적으로는 부모로부터 독립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 역시 아들을 장가보내면 그 자식을 떠나 보내야 합니다. 일일이 간섭하고 지배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지만 자식은 부모를 그렇게 사랑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식에게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시며 상급으로 그렇게 하면 이땅에서 복되고 장수하리라고 축복까지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결혼하면 자기 처자를 사랑하게 됩니다. 따라서 부모에 대한 사랑이나 공경은 자연발생적인 것이아니고 의식적인 노력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식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고 자식은 부모를 도와드리려고 애를 써야만 되는 것입니다. 사정상 함께 살아야 할 때는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간섭하거나 지배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신 섭리에 의한 관계를 정립해야 합니다.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여자와 연합하여 한몸을 이룰찌니”하신 말씀대로 부모와 아들은 마음의 탯줄을 끊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하에 있는 관계에서 자연발생적인 부모공경을 자식에게 기대하지 말고 시어머니가 먼저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흉이나 보고 미워하지 말고 따뜻한 말로 칭찬해 주고 이해해 주어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공경하는 마음이 우러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며느리는 시어머니는 친정 어머니처럼 진심으로 대하며 공경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심은대로 거두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자신도 시어머니가 되었을 때 그만한 대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시어머니 섬기는 것을 본 며느리가 그대로 본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이해와 동정, 사랑으로 잘 지내야 내 아들, 내 남편이 고통없이 평안하게 지냅니다. 이 점을 잘 생각해서 이번 가정주간에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같이 살든지, 따로 살든지 주어진 현실을 하나님의 정하신 뜻으로 받아들이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를 공경하는 일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실천할 때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가정이 불행하면 삶 전체가 파탄이 납니다. 행복한 가정은 생명체와 같습니다. 정원사가 꽃밭을 가꾸는 정성보다 더한 정성으로 온 가족이 함께 노력해야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은 하늘가정의 그림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고 예수님은 신랑, 우리는 신부이고, 우리들은 다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크신 사랑을 기억하고 지상 가정 뿐 아니라 하늘의 아버지 하나님, 신랑 예수님을 지성으로 섬기고 사랑하며 형제간인 성도들과 우애있게 살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크게 사랑하시고 복내려 주실 것입니다.

-기 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늘 아버지와, 우리의 신랑 예수님의 돌보심과 사랑 가운데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처럼 지상 가족들에게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부모요, 부부요, 자녀, 고부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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