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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의인은 믿음으로 (합 0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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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4절 하반절을 다시 한번 읽어 봅시다. '그러나 그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늘은 1517년에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지 475주년 종교개혁 주일입니다. 루터는 방금 우리가 다시 읽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 암아 사리라]는 이 말씀을 일고 행위와 의식에 빠진 로마 카돌릭에 대하여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것입니다.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우리 성도들은 믿음을 가지고 믿음으 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은 약삭빠르고 수단 좋은 사람이 더 잘사는 것 같고 더 잘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래도 성도들은 믿음의 방법대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시대를 탓하고 세월을 나무랄 것이 아니라 우리는 오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기록자인 하바국이란 이름의 뜻은 포옹한다 라는 뜻으 로 위로 하는자 혹은 다른 사람을 자기 팔로 안는자란 뜻인데 바벧 론의 우리가 언뜻 보기에는 하바국은 의문이 많은 선지자 였습니다.

하바국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는 남족 유다왕국이 망하기 직전의 혼란하던어려운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였던 것입니다. 하바국 선지자는 가슴 속에 몇가지 의문 스러운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도 마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많은 의문을 품은 선지자였던 것입니다.

 1장 3절에 보면 [ 어찌하여 잔악을 보게 하시나이가] 13절에도 [어지하여 궤휼한 자를 방관히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자를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14절에 [어찌하여 사람으로 바다의 어족 같이 하시며 주권자 없는 곤충같게 하시나이까] 이것을 요약해 본다면 왜 이 땅에서 의인이 고통 당하는가 왜 악한 사람이 오히려 이 세상에서 잘 되는가 왜 의인이 범죄하면 그냥 하시지 악한 사람들을 통하여 하시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바국은 이와 같은 의문을 가졌지만 자기 연민에 빠져 있지는 않았습니다. 의심하며 회의를 불러 일으킬려고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 풀려고 고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자신이나 가정이나 사업에 문제가 있습니 가 하나님 앞에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될줄 믿으 시기 바랍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문제를 가지고 파수하는 높은 곳에 서서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그 기도는 이와 같은 의문점들을 하나님 앞게 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마치 파수꾼이 망대에서 살피듯이 하바국은 영적인 파수꾼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려고 하나님을 우러러 보는 심령으로 그는 망대에 서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자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라 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 습니다.

성경말씀은 간절히 나를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도 하바국 처럼 심령의 파수대를 세우고 하나 님 앞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바국에게 응답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에게도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2장 전체가 다 하나님의 응답으로 되어져 있습니 다. 2절 말씀을 봅시다.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 되 달려 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여기에 묵시는 하바국 선지자의 의문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리고 바벧론의 멸망에 대한 것입니다. 그 내용을 [명백히 새기라] 그러시면 서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도록 크게 똑똑하게 새기라] 고 했습 니다.-무슨 뜻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없이 성취되기 때 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인지라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도 시간이 자나면 잊어 버 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놓고서는 하나님께 또 응답해 주옵소서. 왜 이와 같이 고난을 주십니까 하나님 앞에 원망합니다. 우리 하나님서 는 하바국에게 다시는 의문을 가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응답을 잊지말 고 명백하게 달려 가면서도 볼수 있도록 하라고 하신것입니다. 왜 그 러까요 낙심되고 좌절할때마다 분명하고 명백한 하나님의 말씀을 일고 의심하지 말고 때를 기다리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3절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응답이 어떻게 오시는지 볼가요 [정한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말씀은 묵시가 이루어질 시간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작정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온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다스리시며 섭리하시고 계시는 것 입니다. 우리가 자명종의 시간을 맞출어 놓고 잊어버리고 잠을 자지만 시간이 되면 우리는 것고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응답은 오고야 말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종말이 속히 이른다]고 했는데 원문에 는 속히라는 말이 없습니다. 어른 보아서는 4절과 관계되는 말씀처럼 보여서 속히라는 단어를 넣은 것 같지만 상관이 없는 말씀인 것입 니다. 여기에서 종말은 묵시가 성취되는 때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묵 시가 목표성취를 위하여 애를 쓴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우 리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곧 정한 때가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 실 때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더디다 의 와 반대의 말인 지체없이 라는 말을 같이 쓰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일 까요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심리에 비추 어 보면 그것은 더디게 여겨질 수가 있습니다. (벧후3:9-10) 예를 들어 사람기다리는 것과 차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지루합니 까 자꾸 시계를 보며 더딤을 느끼는 것 같이, 하나님의 약속의 성 취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목을 빼든 기린과 같이 기다리다 보니 지칠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오래 걸리면 낙심하고 좌절합니 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낙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달려가 면서도 읽을 수 있도록, 그 약속의 말씀을 확실히 믿고 위로받을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분명히 새기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체되지 않고 정녕응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즉각적으로 이루어 지지 않고 더디므로 악인들은 마음이 교만하고 정 직하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비아냥 거리며 조롱 하지만 그래도 성도들은 믿으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슴하신 것입니다.

4절 이하의 그는 악인의 상징인 바벧론을 말힙니다. 유다는 믿는자 의 상징인 의인을 말합니다. 의인 곧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만이 죄악에서 구원받는 삶이 아니라 금생과 내생에 참 생명을 누리 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천국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소유 했기에 이세상 악이의 길을 갈 것 이 아니라 고난과 어려움이 있다고 할 지라도 오직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때 14절의 말씀 처럼 악인과 세상왕국의 상징인 바벧론이 멸 망 받을 찌라도 하나님의 영광은 세상에 가득하게될 것입니다. 궁극 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승리할 것이기 때문에 성도는 믿음으로 살아 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히 성취된는 줄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도 반드시 성취될 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더딜 지라도 낙심치말고, 낙심 될때 마다 하바국 처럼 기도의 망대를 높이 세우시기를 바랍니다. 그래도 낙심이 될때면 명 확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바라보시고 일고 확신하여 믿음을 잃 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드려서 하나님을 기쁘시게해드리시는 저와 여러 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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