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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성실한 이스라엘까지 사랑하신 하나님 (호 01:1-2:1)

첨부 1


호세아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사랑’ 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주전 8세기, 예수님 오시기 전 800여년 전 북왕국에서 태어나 남쪽 나라에 와서도 예언을 했던 선지자입니다.
자기 가정의 비극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던 하나님의 신실한 종입니다.

1.불합리한 명령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1:2중)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 방법이 참으로 이상합니다.
호세아에게 길거리로 나가서 창녀를 취해서 아내를 삼고 부정한 자식들을 낳으라고 하십니다.
거룩하시고 정결하신 하나님, 거룩한 자녀를 이 세상에 두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어찌 선지자들에게 이 같은 말씀을 하시는가. 그처럼 무리하고 하나님의 계명에도 어긋나는 그러한 결혼을 요구하시는가(레21:13-14).
이성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명령이요 신앙으로도 납득이 되지 않는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거리의 여인과 결혼한다는 것은 양심의 문제요, 자존심의 문제요, 세인의 멸시를 당할 부담을 안고 있는 문제였습니다.
또한 하나님 편에서 보더라도 선교 활동에 막대한 어려움을 초래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이성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음성이 우선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의 일생을 망치는 길인 줄 알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지체없이 거리의 여인과 결혼하여 세 자녀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짊어지우신 십자가를 말없이 지기로 하였습니다.
이 결혼을 통해서 호세아는 다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합니다.
‘음란한 자녀들’ 은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의 악한 열매를 상징합니다.
‘음란한 아내’ 고멜은 결혼하기 전에도 거리의 여인이었는데 결혼 한 후에도 남편을 떠나 여러 차례 도망을 간 부정한 여인입니다.
고멜은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본래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거리의 여인과 같은 백성들이었는데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이스라엘을 불러 주시고 하나님께서 또 자기를 버리고 도망가는 이스라엘을 여전히 사랑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시고 그 백성을 자기 품안에 안으신다는 사실을 호세아의 가정의 비극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고멜과 같은 누추한 우리들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으나 그의 사랑을 저버리고 곁길로 갈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다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계속 사랑하십니다. 이 깊은 사랑, 이 놀라운 사랑을 늘 기억합시다.
199

4.
3.15 화요일 새벽기도

2.깨어진 사랑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음란한 아내와 결혼한 호세아는 세 자녀를 얻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통하여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제시합니다.
1).이스르엘
“그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1:4중)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참으신다는 뜻인데 비슷한 이름인 ‘이스르엘’은 하나님이 흩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불성실한 백성을 흩으시는 것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너의 쫓겨간 자들이 하늘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신30:04 )
“만일 내게로 돌아와서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부터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컨대 기억하옵소서”(느01:09 )
하시던 하나님이 그들을 흩으시겠다고 하시니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 현실화되었습니다.

①.정치적 현실화
악한 왕 아합이 나봇이라는 사람의 포도 원을 빼앗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나봇은 갈멜산 만쪽 에스트레론 골짜기, 이스르엘이라고 불리워지는 골짜기에 사는 사람입니다.
아합은 처음에는 나봇에게 다른 포도원을 줄 테니 그 포도 원을 달락 간청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것이니 줄 수가 없다고 거절하였습니다.
다음에는 돈을 줄 테니 팔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거절당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왕후 이세벨의 간계를 따라서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나봇을 죽이고 포도 원을 빼앗았습니다.(왕상21:1-16)
하나님께서 예후라고 하는 사람을 일으켜서 예후가 나봇의 포도 원을 빼앗은 아합왕을 길르앗 라못에서 죽게 하고 이세벨은 사마리아에서 살해케 하였습니다(왕상22:34-35,왕하9:36)
이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예후가 하나님의 손이 되어서 대신해서 원수를 갚아 준 일을 했지만 마침내는 예후도 살인한 결과로 죽임을 당하는 일이 성경에 나타납니다.

오늘 국가 민족의 흥망성쇠, 개인의 흥하고 망하는 모든 일을 보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오히려 부자가 되고, 권세를 잡아서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면서 죄를 짓고 있는 사람을 망하게 하지만, 마침내는 그 불신자도 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극악한 죄를 짓는 개인이나 국가를 불신자를 통해서 망하게 하시고 마침내는 그 불신자도 망하게 하십니다.
중국의 기독교가 부패하고 타락하여 중국 10억의 소망이 되지 못하자 하나님은 모택동을 들어서 장개석을 내쫓고 중국 땅에 기독교를 완전히 전멸시켜 습니다.
30 년이 지난 후에 중국 사람의 마음속에 기독교도, 유교도, 불교도 없어지고 완전히 공허해진 다음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셨습니다.
몇 분 동안 몇 마디 말만 해도 그 빈 마음을 가진 중국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데 상해에 5천명이 모이는 교회가 생기고 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불신자를 통해서 자신의 뜻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재물도 건강도 하나님이 흩으시면 무력한 자가 됩니다.
인격도 하나님이 흩으시면 비참한 자가 됩니다.
자녀도 가족도 흩으시면 별수 없는 인생이 됩니다.
큰 교회, 전통 있는 교회도, 하나님이 흩으시면 순간적으로 무너집니다.
영적인 동물인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면 일상적인 삶이 흩어짐을 잊지 맙시다.
아무리 모으려고 애를 써도 하나님이 흩으시면 모을 자가 없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②.민족적 현실화
‘이스르엘’의 예언은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민족적으로 현실화되었습니다.
주전 721년에 앗수르를 통해서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셨습니다.
그 후에 바벨론, 그리스, 로마로 이어지면서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일 저리 끌려가고 상처받고 망하고 또 망한 백성이 되어 마지막 근대 사회에서는 나치당에가지 엄청난 고통을 당하여 전세계에 흩어지는 참상을 자아냈습니다.
활이 꺾였으니 권세가 땅에 떨어진 것입니다.
자기를 배신하고 떠나는 백성을 하나님은 이렇게 철저하게 보복을 하시는데 자기 민족에게만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타민족에게도 그렇게 하십니다.

공산당이 승한 것같고 김일성이 성공하는 것같으나 여기에 하나님의 뜻이 계십니다.
김일성이 없으면 새벽기도 안할 것이요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몸부림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김일성의 도전을 우리에게 허락하시므로 더욱 허리를 동이고 민족이 하나 되어 경각심을 갖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잠시 고통이 오고 어려움이 오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더 귀한 것을 얻기 위함인 것을 믿음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낙심할 것이 아니니 이 어려움을 통해서 귀한 것을 얻게 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므로 참고 인내하며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이키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2).로루하마
“그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사하지 않을 것임이니라”(1:6하)

(히,로)는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루하마’는 ‘사랑한다, 동정한다, 애정을 쏟는다’ 는 뜻입니다.
특별히 아버지가 그 아들에게 베푸는 사랑,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시103:13)사용 되였고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베푸시는 사랑 또는 긍휼을 의미하는 데에(시30:18)사용되었습니다.
시편136편에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26회사용)했는데 여기 인자라는 말은 선택적 사랑을 말합니다
이렇게 사랑이 영원하신 하나님이 ‘로루하마’ 사랑하지 않을 것이요 반드시 그들이 대적이 될 것이다, 로 번역되어 있으며 영문 번역에는 ‘그들에게서 모든 것을 거두어 버리고 아무것도 남겨 두지 않겠다’는 뜻으로 번역되었습니다.
하나님 스스로가 그들을 대적하는 자가 되겠다는 강한 말로 번역된 것입니다.
‘사하지 않을 것이요’는 그들을 허무하게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오늘 이름은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신부, 장로, 권사, 집사, 교사인데, 사람 보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인데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하나님의 가슴에 못을 박고 배신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로루하마’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없도다 말씀하십니다.
내 개인, 내 민족, 내 교회가 이 이름을 갖지 않아야 됩니다.
민족의 죄악을 보며, ‘로루하마’ 의 분노의 음성을 기억하고 가슴 찢으며 통곡의 기도를 드립시다.

(3).로암미
“그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1:9하)

‘아미’는 ‘내 백성’이란 듯인데 ‘로암미’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본래는 ‘아미’라는 칭호를 들었던 백성입니다.
이 언약은 출애굽 시부터 있었고(출4:6,레26:12,27:9), 대대로 확인하였던 칭호였고(시29:11,33:12) 유효하였던 칭호였습니다.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고로 그 크신 이름을 위하여 영원히 버리지 아니하실 그런 선민이었습니다.(삼상12:22)
이러한 백성들이 ‘로암미’(내 백성이 아니라)라는 불호령을 듣게 되었으니 참으로 비극 중의 비극입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이라’ 는 ‘나는 네편이 되지 아니하리라’ 는 뜻입니다.
호세아의 자녀들의 이름은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징계의 단계적인 깊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스르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 말이요 ‘로루하마’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거두실 것을 밝히신 것이요, ‘로암미’는 두 자녀의 이름보다 더 강한 징계를 표시하는 말씀입니다.

원문의 뜻은
‘나는 너를 위해 있지 않다’ 도는 ‘나는 너희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말입니다.
구주요, 피난처 시요, 반석이요, 이스라엘의 소망이요 아버지였던 하나님이 이제 그들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아니라 하시니 심판 중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편이 되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두려움 가운데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죄를 미워하십니다.
죄를 이같이도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품성을 알고 계십니까. 죄를 품고 있는 한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와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조를 멀리 해야 합니다.
로암미의 호칭을 듣지 맙시다.
죄를 미워하고 버리므로 암미로 회복합시다.
하나님은 암미에게 모든 것을 다 주실 것입니다.

3. 옛 언약의 회복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2:1)

하나님은 흩으시기만 하는 분이 아니시고 모으시고 싸매시는 분이십니다.(1:11)

호세아가 심판으로만 끝났다면 우리는 소망이 없었는데 2장 1절의 말씀을 보니 회복과 소망의 말씀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르엘’ 은 ‘흩으신다’ 는 뜻도 있지만, ‘모은다’ ‘꽃을 심는다’ ‘씨를 뿌린다’는 뜻도 있습니다. (2:23).(1:10-11)절에는 다시 모으시겠다는 약속에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전에는 내 백성이 아니었는데 다시 모아 내 자녀 삼고, 내 백성 삼고, ‘암미’ 라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불성실한 이스라엘까지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인 것입니다.
‘로루하마’ 하나님 스스로가 대적이 되셨던 자리에서 이제는 하나님 스스로가 모든 저주를 물리쳐 주신다는 뜻이니 축복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2:13-15)
이스르엘(흩으신다) 에서 로루하마, 로암미로 저주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이스르엘(삼는다) 에서 암이로, 루하마로 다시 회복해 주십니다.(1:10-2:1)
이로써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완전한 화해를 이루고 옛 언약의 완전한 회복을 이루게 됩니다.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와 같이 번성하리라” 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아가서는 이스라엘 자녀들에게 주셨던 그 언약이 회복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으실 때 하나님 앞으로 돌아옵니다.
모으시는 하나님 앞에 빨리 돌아옵니다.
자녀도 가정도 생업도 민족도 국가도 교회도 하나님이 모으시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돌아온 자에게 하나님은 번창의 복, 결합의 복, 성공적인 지도자의 위치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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