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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기에 계시지 않는 하나님 (호 09: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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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알프스산 꼭대기에 라브리 펠로쉽이라고 하는 모임에서 젊은이들을 모아놓고 말씀을 증거하는 쉽이프 박사님의 저서 중에 ‘하나님은 거기에 계시다’ 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소 부재하심을 그 책속에 기록을 해서 전 세계 신학생들이 탐독을 하는 유명한 책입니다.
호세아 9장은 이 책과는 정 반대의 제목으로 ‘하나님은 거기에 계시지 아니하신다’ 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너무나 엄청난 은혜를 받았습니다.
큰 사랑을 힘입었습니다.
그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은 망하고 또 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사랑하시고 그 백성들을 인도해 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보다는 멀리 멀리 떠났던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에 재앙이 떨어집니다.

1.개인에 임한 형벌
“타작 마당이나 술틀이 저희를 기르지 못할 거이며 새포도주도 떨어질 것이요”(9:2)

이스라엘은 풍성한 물질, 풍성한 추수물만 있으면 기쁨은 더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의지하던 타작마당, 새포도주, 술틀에 의해 길리움을 받지 못하고 여호와의 땅에서 내어 쫓김을 당하고 추수의 축복은 끝나고, 탈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성공한줄 알았는데, 모든 열매를 거두는 줄 알았는데 탈취를 당하는 고통은 더 커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추수의 축복도 끝이 나고 모든 열매가 끝이 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것을 상실하는 형별을 당했습니다.

‘에브라임이 애굽으로 다시 가고’ 원수들에게 잡혀 간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의 길을 보이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은 악한 자에게 던지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우리를 지키고 계시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배반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시는 순간에 우리는 원수의 손에 잡혀갑니다.
사탄의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 없는데 그 힘이 사라지게 되니 원수의 땅에 끌려 갑니다.

하나님 대신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가, 나의 술틀은 무엇인가. 나의 타작마당은 어디인가, 풍성한 소출을 얻지 못하고 탈취를 당하고 있는가,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나의 위치는 하나님의 품인가 애굽의 적지인가 생각해 봅시다.

2.선지자의 타락
“선지자자 어리석었고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니라”(9:10하)

선지자는 어리석고 미쳐서 파숫군의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여 그물에서 건져 내어야 할 백성들을 오히려 새잡는 자의 그물이 되어서 새를 잡듯 모든 행위로 올가미에 걸어넣었으니 이 얼마나 큰 비극 입니까. 지도자를 잘 만난 백성이 행복한 백성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환이 되어야 하는데도 오히려 하나님의 집에서 원한을 품는 원수가 되었으니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증거입니다.

나는 선지자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을 거쳐 넘어지게 하는 거침돌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3.끊어진 기도
“청컨대 배지 못하는 태와 젖 없는 유방을 주시옵소서”(9:14하)

10절의 ‘만나다’ 라는 말은 attain to 또는 find로 번역되는 말로 그져 지나가다가 우연히 만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비록 기대할 수 없는 곳에서라도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바라며 찾다가 드디어 얻어낸 것을 말합니다(신32;10).
광야는 거친 모래 바람, 뜨거운 햇볕에 목마르고 탈진이 되기 쉬운 곳입니다.
그곳에서 찾고 찾다가 포도를 찾아낸다는 것은 생명이 소생하는 기쁨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도 이스라엘을 흠모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미움으로 변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15절).
그러나 이 마음은 곧 하나님의 열화와(맹렬하게 타는 불) 같은 사랑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그와 같은 간절한 흠모의 사랑을 입었건만 배역하고, 우상 앞에 절하고 하나님을 듣지 않는 이스라엘의 영광은 새같이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죄를 범하면 혼돈이 옵니다.
구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구하기는 열심히 구하는데 엉둥한 것을 구하고 열심히 찾기는 찾는데 망할것만 찾고 있습니다.
유산할 것과 젖없는 유방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니 얼마나 불쌍한 기도입니까.
하나님을 떠난 사람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는 증거 중의 하나는 기도의 혼돈입니다.
결국 심판 밖에 올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망이(열렬하게 바라고) 있습니까. 광야에서 포도를 무화과의 첫열매를 만나는 그 기쁨과 감격이 있습니까.

4.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

“그 행위가 악하므로 내 집에서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9:15하)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새 계약이 세워지기까지는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율법적으로 보면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모세도 죄인입니다.
모세는 살인자요 노를 발한 자요 타인을 위해서 죽을 수 없었던 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기다림으로 인해서 구원에 이를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인생 가운데 율법으로 구원을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되는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은혜가 쏟아져도 돌아오지 아니하면 그 은혜와 상관이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진리는 영권이 흔들리면 물권이 흔들린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흩어집니다.
개인의 생활도 국가, 민족 사회도 자꾸 흩어지고 일마다 안 되고 고통을 당합니다.
영권이 튼튼해야 합니다.
영권은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우리 기도 속에 하나님의 교회가 튼튼해지고 우리 교회가 잘 되면 우리 믿음이 잘 됩니다.
교회가 시험을 받으면 온 교회가 시험이듭니다.
교회가 든든해지면 국가도 든든해 집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서 드릴 기도는 하나님을 위한 기도,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를 위한 기도, 이웃을 위한 기도, 몸되신 교회를 위한 기도여야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의 마지막 예언이 떨어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예언을 듣고 남에게 들려주는 말로 듣지 말고 내게 주어진 말로 듣고 이제는 돌이킵시다.
이제는 돌아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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