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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의 승리 (호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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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는 자기의 죄 값을 감당하여야 했고 멸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 의 죄란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다. 13장에서 이스라엘이 "바알에서 송아지" 우 상에게로 옮겨오고 옮겨가는 그러한 반역 행위는 마침내 앗수르의 칼을 불러들 여 백성들은 넘어지고 흩어지고 모든 가문의 맥은 끊어지게 되었다. 칼에 엎드려 진다는 말은 끊어진다는 뜻이다. 어린아이는 부숴뜨리우며라는 말 역시 신체 의 사지가 조각 조각 떨어져 나가는 처참함을 의미했다. 이러한 일은 일찌기 엘 리사가 앗수르의 하사엘을 보고 예언했던 말이다. 엘리사는 이 말을 하면서 통곡 했다고 하였다(왕하 8:12). 이제 그 일이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었 다.

 I.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께 돌아오라(1-3).

우리는 1-3절까지의 말씀을 통하여 남아서 환란을 겪은 이스라엘이 어떻 게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올 것과 회개할 것을 권면하는 선지자의 마지막 애절 한 호소를 듣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왕국은 망하여 없어졌어도 백성들이 없어 진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의 포로생활에서 정치적으로는 나라가, 종교적으로 는 그들의 우상종교가 다같이 파괴되었다. 그러나 백성들 중에는 남은 자가 있었 다. 그들을 통하여 이제 하나님은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 나가실 것이라고 하셨다.

그들의 계속되던 방황생활은 끝날 것이고, 그 후에 저들은 돌아와서 그 하 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여 마침내는 여호와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는 호 3:5의 예언과 연결되는 또 다른 예언설교로 14장을 맺고 있다. 하나님 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여호와께 나아오라"고 외치신다. 이 말은 단순히 하 나님을 바라보기만 하라는 말이 아니다. 완전히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라는 말이 다. 우리는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 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마음이 어두워지면 사람은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마음이 어두워진 자는 하 나님께 돌아올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밝혀주셔야 한 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 야 한다. 2절 말씀에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 돌아와서"라고 하셨다. 하나 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제물이 아니다. 그것은 "순종"이다. 그리고 우 리의 입술을 통하여 고백되어지는 신앙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는 먼저 우리 의 입술에서 불의를 제하라고 하셨다. 이는 모든 죄악을 완전히 제하라는 강조 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회개의 절차를 거친 자들과 새로운 서약을 맺으신다고 하 셨다. 그 서약은 첫째,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말라. 둘째, 보이는 군사를 의 지하지 말라. 세째, 다시는 우상으로 하나님을 삼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실제 로 이들은 과거에 여러 차례 하나님보다도 앗수르를 의지했었다. 그 결과는 의지 했던 앗수르의 포로생활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솔로몬처럼 병력의 힘에 의해 국 권을 유지하려 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외국의 힘을 이용하여 자신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외교적 인 방법과 병력의 힘을 이용하여 나라를 굳게 하는 방침, 백성들의 마음을 통일 하기 위해서 어떠한 미신적인 허황한 것에 맹종하도록 선전하거나 강요하는 행 위가 있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이라는 것으로 백성들의 정신을 휘어잡 고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에서도 지난날 단군신전을 짓겠다고 했던 적이 있다. 또 지난번 공화국을 스포츠 공화국이라고 불렀었다.

오늘날 우리는 과다한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다. 하지만 군비증강이 나라 를 살리는 길은 분명히 아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지 않으면 파수꾼의 수고도 헛 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해 주셨다. 이방에 흩어져 고아처 럼 유리 방황하는 생활은 그들의 완고한 고집을 깨뜨렸고 어두워진 눈을 뜨게 해 주셨다. 어느 길이 바른 길인지를 알게 되었다.

 II. 하나님은 돌아오는 자를 즐거이 사랑해주신다(4-9).

사람의 본성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은 자신의 욕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고통의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인도로 애굽 을 탈출하였음에도 그들은 여호와의 은혜를 잊어버렸고 여호와의 가르침을 따르 지 아니하였다. 이것은 비단 이스라엘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는 이러한 우리의 패역한 마음을 고쳐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이 얼마 나 큰 은혜인가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해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원 히 주님께 돌아갈 수 없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패역을 고쳐주신다는 말 씀은 귀한 은혜이고 사랑의 증거이다.

우리는 5절 말씀에서 "이슬"이라는 말씀을 대한다. 이슬은 비에 비하면 미 미하다. 그러나 이슬은 땅을 적신다. 물론 한꺼번에 적시는 것은 아니다. 매 일 매일 내려서 초목을 소생시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도 이슬같이 임한 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성도들이 이러한 은혜를 입을 때 우리는 백합화처 럼 될 수 있다. 백합이란 순결을 의미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듭남 을 체험할 때, 우리는 죄에 대하여 백합처럼 순결을 누리게 된다는 말이다. 이것 은 오직 은혜로만 가능하다.

6절 말씀은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을 것이라고 하 였다. 이는 끊임없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계속되어지는 소생 을 의미한다. 또한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같으리라" 고 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뜻한다. 렘 11:16에는 하 나님의 백성을 가르켜 "좋은 행실 맺는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내가 너희에게 이슬 같으리니"라고 하였다. 이슬 은 비처럼 시원스럽지는 못하다. 어떤 면에서는 답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슬 은 땅 속에 심겨진 씨앗을 싹트게 한다. 하지만 비는 오히려 땅을 굳게 한다. 그 래서 씨가 싹을 트는데 도리어 어렵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 게 이처럼 넘치는 은혜를 약속해 주셨다.

8절 말씀은 하나님께 돌아온 자의 특징을 말해준다. 그들은 "내가 다시 우 상과 무슨 상관 있으리요"라고 했다. 구원받은 자의 특징은 생활에 열매가 맺힌 다는 사실이다. 물론 우리의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 들이 혼동을 일으킨다. 구원받았으니 아무렇게나 내 하고싶은대로 해도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이론을 전개한다. 마치 무율법자와 같은 이론이다.

그러나 8절의 말씀은 이러한 문제에 가장 정확한 대답이 될 것이다. "내 가 다시는 나의 옛 생활과 관련을 맺지 않겠다"는 강력한 신앙고백이요, 자신 의 과거가 잘못되었음을 고백하는 내용이다. 성도는 마땅히 열매맺는 생활을 해 야 한다. 그러나 이는 힘으로도, 억지로도 안된다.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만 가능 하다.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기 때문에 오직 의인이라야지만 깨달을 수 있다. 다니 엘은 "악한 자는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있는 자는 깨달으라"(단 12:10)고 하였다. 그런데 의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호세아는 의인이 된 자 라야지만 우상을 떠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의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가 능하다. 그런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죄 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는 긴 시간에 걸쳐서 호세아서를 살펴보았다. 어떻게 보면 재미없 는 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복을 원한다고 해서 꼭 복이 임할 수는 없 는 것처럼 호세아서는 하나님의 강력한 주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면면이 강조 해 왔다. 그리고 우리에게 많은 허물이 있음에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 신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나님은 끊없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여호와 를 알자. 알되 힘써 알자. 아는 길은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되는 길 뿐이다.

(회개/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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