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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르심의 응답 (삼상 03:1-10;고전 06:12-20,요 01:43-51)

첨부 1


이 구절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 사무엘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는 이야기입니다.

사무엘은 성전에서 잠을 자고 있다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가 엘리 제사장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사무엘 에게 자기는 부르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비로소 엘리는 세번째에 으르되 사무엘을 부르신 분은 하나님이시리라는 것을 깨닫고, 사무엘 에게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듣겠나이다 하라”(8절) 고 명하였습니다.

사무엘은 그대로 행했습니다.

(10절)“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 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의 세례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세상에서의 사역과 사명 수행을 위해 예수님을 부르신 사건과 같은 것입니다.

 사무엘처럼 예수님은 응답했고 예수님은 팔레스틴에서 선포와, 가르침과, 병고침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막1:21,34).

막01:21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막01:34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 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

1.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는 일 (삼상3:8)

삼상03:08 “여호와께서 세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귀를 기울여 경청하고 그의 부르심에 응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무엘도, 세례 요한도 그리고 예수님도 응답하셨습니다.

또 주님의 제자들 역시 2000여 년 동안 응답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크고 분명하게 그가 말씀하시는 것을 듣도록 하시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부르십니다.

기도와 명상으로 우리와 계속 대화하시면서, 하나님은 세상에서 자신의 사역을 행하도록 부르십니다.

 이것 때문에 그리스도인에게는 공적인 예배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경청하고, 그의 말씀 가운데서, 들어야 할 것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실제로 믿음에 굳게 서게 되고, 주님의 사역에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무엘과, 예수님은 신앙 안에서 성장할 때 서로 비슷한 점이 있다는데 초점을 맞출 수도 있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께 순종하신 모습이며, 사무엘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듯이,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들도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예수님을 따른 사실을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2.부르심에 따르는일 (요1:43)

요한복음 1:43-51 요01: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요01: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요0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요01: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요0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요01:48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요01: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요01:5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본문은 요한이 두 제자 즉 안드레와 시몬 베드로 앞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요한은 외쳐 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36) 그리고 안드레는 시몬 베드로를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요1:41)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빌립과 나다나엘은 안드레와 베드로의 고향인 벳세다 출신이었습니다.

 나다나엘에게는 도마와 같은 의심이 있어서 그는 빌립이 말한 것을 믿기 전에 먼저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에게 “간사가 없다” 고 말했고 무화가 나무 아래서 그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이 나다나엘의 대답 가운데 나타남니다.

 (49절)“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이들 제자들을 부르신 후에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는 상황 속에서 메시아로서의 자신을 인식시키고 있습니다.

 요01: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다음날,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두 제자들 면전에서 말한 것이었습니다.

 “보라 세상의 구세주며” (요1:36)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라고 고백하며,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지체없이 그를 따라야 합니다.

 만일 따르지 않는 것은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이 됩니다.

 그럼으로 세례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어떤 길에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따르라’ 는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 전체를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권위에 굴복시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과, 사업과, 우리의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인도하시도록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말 하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헌신을 통해 우리의 내적인 생활과 외적인 사회 생활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어린양을 따르 십시요, 그는 우리의 지도자이십니다.

세례 받은 자들은 반드시 순종하며 따라야 합니다.

 세례는 바로 예수님의 것인 동시에, 세례는 우리의 것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명하신 삶을 반드시 순종하며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3.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 (고전6:20)

고린도전서 6:12-20 고전06: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 고전06:13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 을 위하시느니라 고전06:14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고전06: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 니라 고전06:16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고전06: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고전06: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고전0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전0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에 있는 영지 주의가 팽배해 있었고 부도덕한 문제들과 일종의 성적인 음행의 문제들이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불륜의 관계를 맺은 것으로 보았고 교회 안에서는 성도끼리 서로 서로에게 음행을 행한 관계로 보았습니다.

 바울은 성적인 타락이란 첫째로 그리스도와 성도들이 있는 교회에 대적한 죄이며, 둘째로는 ‘성령의 전’으로서 몸의 타락임을 지적했습니다.

 성적인 죄는 사람들이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의 의해 거듭난’ 사실에 대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적인 죄는 말씀과 성례전 가운데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신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 되는 것이 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모든 사상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황 속에 들어냈습니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19-20절)

그 당시에 그리스도인들도 세속적인 인간처럼 모든 성행위는 법적인 나이가 되면 마음 데로 즐길 수 있는 권리라는 잘못된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성생활을 절제하지 않고 마음대로 즐겨도 되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 아닙니다.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성접촉에서 오는 질병인 AICS나 성병, 혹은 원하지 않는 아이들의 출생이나 미혼모들 때문에 자신이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괴로워하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인 것입니다.

 때로는 교회에서조차 도덕적인 타락 때문에 평신도들 뿐만 아니라 성직자까지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순종의 본을 보여야 할 사람들이 말씀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살아갈 때에 그 결과는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중세 시대에 (카톨릭에서 고아원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라, 성령의 세례를 받은 성도들은 자신의 ‘몸으로 ’ 즉 자신의 인격을 마음껏 즐겨서는 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대로, 합당하게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나 됨은 그리스도의 은혜인고로 우리는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나 같은 죄인을 부르시어 자녀로 삼아 주신 하나님, 오늘도 어려움 속에 살아가면서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저희를 용서 하여주옵소서, 겸손히 주의 음성을 듣고 주를 따르는 순종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순종의 삶 속에서 이 몸을 산 제물로 드려 주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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