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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원한 평안과 안전 (사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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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절 말씀을 다같이 읽어 봅시다.

성도 여러분의 가정위에 화평과 평안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평안을 히브리 말로 살롬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인의 인사가 살롬입니다. 우리나라 인사말인 안녕하십니 까 도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죽을 놈이 아니라 살롬이니 좋은 말임에 는 분명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평안하기를 원하고 있고 평안하기 위하여 노력을 하고 있는 것 입니다. 불안을 좋와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평화를 살롬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온전하다, 완전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건강이 온전한 것도 살롬입니다.

정치적으로 나라가 전쟁이 없고 평안한 상태가 바로 평안입니다.

전신적으로 행복한 상태가 바로 평안입니다.

자녀나, 물질적으로는 번영하는 것을 평안이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바로 평안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평안을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세상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니 세 상에서 평안을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입니다.

솔로몬은 평강의 왕입니다. 유대인들리 구하는 것이 살렘입니다. 그런데 이스라 엘에게 있어서 진정한 살렘의 시대는 얼마되지 않은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세상에는 참 평안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평안은 세상적인 평안이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평 안 참평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도 두종류의 평안이 있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세상적인 평 안과 진정한 참 평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1. 세상적인 평안.

9절 이하 14절까지 보면 안일할 여자들에게는 심판의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안일한 부녀들은 자기 만족을 느끼고 자만하는 부녀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염려없는 여자들은 자신 만만하게 살아가는 여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안일한 부녀들, 곧 염려없는 여자들이라고 다섯번이나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 세상적인 평안함을 누리려는 여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시대적 상황이 그러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세가 죽은 이후 남 쪽 유다가 우시아 시대에 부강해 졌던 것입니다(왕하26:8). 경건했던 우시아도 죽 고 그아들 요담이 15년 동안 치리하다가 죽고,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었을 때는 바알 우상과 더불어 온갖 우상이 유다에 성행했던 것입니다. 앗수르 왕에게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 성전에다가 그들의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은 유다를 더욱 낮추었던 것입니다(대하28장).

 나라가 이지경인데도 유다의 부녀들은 안일에 빠졌던 것입니다. 국가가 종교적인 위기가 닥쳤음에도 무사안일주의에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종교적으로는 상관없이 그냥 나만 평안하고 우리 가정만 평안 하면된다는 그런 의식에 빠져있었던 것이었 습니다. 자기만족을 느끼고 자만하며 무사안일주의 빠져들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물질의 풍부함 속에 사치를 즐기며 마치 세상이 자기것인양, 자기위주로 육신의 평안을 도모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었습니다.

 선지자가 더욱 여자들에게 책망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여자들이 하나님의 말씀 을 받는데 대하여 남자들만 책임을 져야하는 것으로 생각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러 므로 하나님 앞에서 책임져야할 일에 대해서는 남편들을 의지하고 책임을 회피했던 것입니다.

 아마 현대사회도 그런 경향이 두드려진다고 하겠습니다. 사회정의나 세상정치에 대 하여 관심있는 여자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저 내새끼, 내남편, 내 가정만 평 안하면 된는 안일주의와 이기주의에 젖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먹고 사는 문제에 직접 시달리다 보니 그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살게되면 자신의 노력과 재능의 결과인 양 안일하게 살아갑니 다. 자기 중심에 살아갑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가져야 할 책임을 잊고 물질 의 풍부함 속에서 사치를 즐기며 육신의 평안과 쾌락을 도모하며 살아가는 것입니 다. 결국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세상이 가져다주는 기쁨입니다. 세상적인 평안 곧 육신의 안일만을 도모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여자들을 향해 성경은 말하기를 그 평안이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는 것입니다.

 화란의 유신론적 실존주의자인 케엘 케골은 인생의 한 면모를 후회하는 오리에 비 겨 표현했습니다. 혹한을 피해 남쪽으로 떠나려고 준비하는 오리떼들은 늦은 늦 가을 밤에 모든 체비를 갖추고 파티를 준비했습니다. 큰 농장에 모여 곡식을 잔득 주워 배불리 먹으며 내일 주터 펼쳐질 고통의 장도를 위해 힘을 축적하는 것이었습 니다. 드디어 출발의 시간이 왔습니다. 그러나 이때 큰 오리 한 마리가 주저하며 말했습니다."이곡식은 참 먹기가 좋으니 나는 좀더 남아 이것을 충분히 먹고 떠나 기로 하겠다." 다른 동료들이 떠나고 난 뒤에 맛있는 곡식을 마음껏 배를 채운 그 오리는 하루만 더 머물다가 출발하기로 작정을 했다. 그런데 그 다음 날도 또 하 루만더, 하루만 더 하며 며칠이 지났다. 오리는 매일 습관처럼 이제 남쪽으로 날 아가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결행을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세찬 겨울 바람이 천지를 뒤덥고 더이상 거기에 머무를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대늦은 오 리는 비로소 날개를 펴고 농장 마당을 가로질러 날으려 했다. 그러나 불행이도 오 리는 날을 수 없었다. 너무나 살이쪄서 날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단의 순간을 망 실한 오리는 남쪽으로 향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 것이다. 후회하는 오리에게 찾 아오는 것은 매서운 북풍뿐이었습니다.

 톨스토이의 단편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자를 만났습니다. 도망을 치는데 칡넝쿨을 잡고 웅덩이로 들어갔습 니다. 그런데 바닥에 보니 뱀이 혀를 낼름 거리고 있습니다. 조금있으니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나와서 칡넝쿨을 갉아 먹습니다. 그런데 코앞에 보니 벌들이 모 아둔 꿀이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꿀을 먹는 것이 인간의 심리라는 것입니다.

붙들고 있던 줄이 언제 떨어질줄 모르는데고 불구하고 순간의 달콤함을 취하는 것 이 우리 인생입니다. 낮과 밤의 흰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우리의 시간을 갉아 먹 는 데도 불구하고 결국은 지옥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고도 의식하지 못하 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심판은 평안하다 평안하다 할때 갑자기 오는 것입니다. 어떤 심판입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면 당황하게 됩니다(10). 원어적 표현으로는 몸서리치는 일 이 일어날 것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슴을 치게될 것입니다(12).

왜그렇습니까 포도의 수확이 없기때문입니다. 그원인은 자연적인 재해때문이 아 니라 나라가 황폐해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적군에 의해서 나라가 완전히 망하게 될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니 희락을 좋와하던 성읍이 가시나무와 찔 레나무가 나는 곳이 되어 버리고, 궁궐이 폐허가 되며 성읍이 사람이 살지않은 적 막한 곳이 되고 짐승이 사는 곳이 될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회개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안일하고 염려없는 여자들에게 일어나라고 외칩니다. 지금은 편안이 안일하게 누 워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입니 다. 앞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때문에 옷을 벗어서 허리를 동이라는 것입니 다. 이것을 채찍을 맞을 준비를 하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반드시 안일한 여자들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하지 않고 세상적인 잘못된 안일함과 세상적이 평안에 빠져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적인 평안과 안일만을 추구해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하 는 것입니다. 결국 멸망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안일함은 우리의 진정한 평안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2. 진정한 평안 진정한 평안에 대해서는 시간관계상 다음 주에 한번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세상에는 진정한 평안이 없습니다.

아하스 왕이 세상적인 평화의 수단으로 다른나라와 화해의 수단으로 성전에다 다메 섹의 신상을 만들고분향을 하고, 제물을 앗수르왕 디글랏 빌라셋에게 주었지만 글 들이 오히려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것입니다.

 부녀들이 안일하게 지내며 염려없이 지내는 것이 행복으로 생각했지만 결국 하나님 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세상의 안일함이 진정한 평안이 될 수 없습니다.

행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만 주변적 상황이 신체적요건에 부합될때 만족을 느낄 분입니다. 만족하다고 평안을 느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만족을 느 낀다고 해서 평안한 것은 아닌것입니다. 더우기 세상의 만족은 일시적이라는 것입 니다. 시간이 지남에따라 요구되는 상황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참평안은 세상이 가져다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참평안은 세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위로 하늘에서 부터 오는 것입니다. 곧 하 나님의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곧 우리의 의가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신 사람만이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 보장되는 것입니다(요 14:26-27).

그러므로 참 평안을 세상에서 찾으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참평 안이 없습니다. 세상이 주는 것은 그럴사 하게 보이는 일시적인 것뿐입니다. 영원 한 평안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만족함이나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기 위해서 평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주님만이 우리의 평화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부터는 위로 부터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 참된 평안과 안전을 추구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으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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