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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속한 사람 (사 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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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인간이므로 가지는 기본되는 욕구가 있습니다. 그 기본되는 욕구 중에 하나는 소속감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이 어느 집단이나 어 느 단체에 소속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은 어린아니 나 어른을 가릴 것없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어느 집단이나 단체에 소속하지 못하고 외톨이가 되어버린다면 그 는 그 한가지 이유 때문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가 오늘 읽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거기에는 허무주의의 깊은 함정에 빠져버린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나라를 잃어버리고 고향을 잃 어버리고 집과 일터를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허탈상태에 떨어져 희망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이역만리 바벨론 나라로 포로로 끌려와서 눈 물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가졌던 모든 거가을 잃 어버린 것도 큰 불행이거니와 그것보다 더욱 더 큰 불행은 이들의 조상으로부터 이들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이들과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일이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고아와 같은 사람들이라" 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가장 복된 소식이 전달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이사야를 통하여 이들에게 전 달되었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 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 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 소식은 낙망 속에 빠져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최대의 희소식이었습니 다. 이 이상의 기쁜 소식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다시 용기를 가 지고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며 우리들은 하나님이 아들 딸이다" "언제인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해방시켜서 꿈에도 그리던 고향산천을 볼 수 있 게 하겠지." 이들의 삶에는 더가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현실이 비록 고달프고 어려 워도 희망이 있기 때문에 참을 수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하나님께 버림 닫은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 소속된 존재라는 사실을 믿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그들의 생활에 의미를 주었고 그들의 생활에 용기를 주었던 것입 니다.

 여러분!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불안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별로 불안할 것도 없는 것 같은데도 불안 속에 떨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 신학자 폴 틸리히는 인간을 가리켜 "던져진 존재"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던져 진 존재인 인간은 언제나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했습니 다. 왜 인간이 던져진 존재요 불안 속에 살 수 밖에 없느냐 그는 인간이 시간 적으로 불안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인간은 그 능력이 아무리 확대된다고 하더라도 5분후의 일을 알 수도 없고 또 그 일을 자신에게 유리하도 록 만들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참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언제 어떻게 될는지 아무도 모르고 살아가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시간의 불안 속에 하루하루를 초조하게 살고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리고 틸리히는 인간은 공간적으로 불안한 존재라고 했습니다. 서울에는 자기 집을 쓰고 사는 사람보다 셋방살이를 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셋방살이를 해본 사람들만 아는 불안이 있습니다. 남의 집에 일시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생활의 터전인 주택 에 대한 불안이 떠날 수 없습니다.

"혹시 집 주인이 이 집을 팔고 다른 집으로 이사하지나 않을까" "혹시 집세를 더 올리지나 않을까 혹시 나가달라고 하지나 않을까" 그래서 셋방살이하는 사람들은 늘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는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는지 모르나 이 지상 어디에 가든지 어느정도 불안이 없는 곳 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가 자기 집이 있든지 없든지. 나라가 군사적으로 안정되어 있든지 그렇지 못하든지 간에 근원적으로 공간적인 불안 속 에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자기 땅이라고는 단 한평도 가지고 있찌 않는 사람도, 한평에 수백 만원이나 되는 땅을 수십만 평을 가진 사람이라도 영 원토록 자기 소유의 땅은 없기 때문에 결국은 모두가 같은 처지의 사람들입니다.

누구든지 결국은 빈 손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또한 틸리히는 인 간은 자신이 어디서부터 왔으며 지금 자신이 누구에게 근본적으로 소속되어 있으 며 장차 누구에게로 돌아가야하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불안 속에 살 수 밖 에 없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달을 정복했습니다. 가령 미국 우주선 본부에서 정확히 쏘아올린 아폴 로 우주선이 지금 지구를 떠나 우주여행을 하고있습니다. 우주선이 지구의 궤도 를 벗어나버리면 그때부터는 넓고 넓은 우주공간을 여행하게 됩니다. 만약 이때 에 우주선이 고장을 일으켜서 가야하는 궤도를 잃어버리고 무중력 상태인 우주공 간을 떠돌아 다닌다고 가정해보십시요. 지상 관제소와는 소식이 끊어져버렸습니 다. 이 우주선이야말로 " 던져진 존재" 가 되고 만 것입니다. 가령 이때에 이 우주선에 타고 있는 우주인들에게 먹을 식량이 충분하고 입을 의복에 대한 걱정 을 할 필요가 없으며 잠 자고 싶을 때 자고, 쉴 때 쉬고, 일할 때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다 갖추어져 있다고 해서 그들이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이들이 다른 모 든 조건이 다 갖추어져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사로잡고 있는 근본적인 불안은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들의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가지 뿐입니다. 다른 어떤 길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 길이란, 그들이 다시 지상에 있는 관제소와 연락이 되고 우주선은 지상관개소의 지시를 따라서 그 본래의 궤 도를 찾아서 목적지인 달세계를 무사히 다녀 올 때에야만 비로소 그 불안이 해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위에 사는 사람은 모두가 우주공간에 던져진 우주선과 같은 상태에 있습니 다. 인간이 어디서 누구에게서 출발했으며 장차 그가 누구에게로 돌아갈 것인지 를 아지 못핫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불안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리고 틸리히는 인간의 불안이란 보이는 모든 것이 다 변해가고 있다는데서 생 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어느 것 하나라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존속하는 것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현대를 가리켜서 급변하는 시대라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변하는 것은 만물보다 인간 자신들입니다. 자꾸 변해가다보면 인간이 자기 자신마저도 잃어버리고 말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유행이라는 병 에 걸려 자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가진 가치관도 급변하고 있습니다. 어제 좋던 것은 오늘 이미 좋지 않은 것으로 그 가치가 변하고 맙니 다. 오늘 새 것이라고 하는 것은 내일이면 이미 낡은 것이 되고 맙니다. 이러 한 생활을 무질서하게 반복하다가 보면 어떤 것이 좋은 것인지 어떤 것아리 나쁜 것인지, 어떤 것이 새것인지 어떤 것이 낡은 것은지 분간할 수 마저 없어져버립 니다. 좋은 것도 나쁜 것처럼 보이고 나쁜 것도 좋아 보입니다. 그래서 현대 청년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고 있습니다. 가치관이 확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인간의 실존입니다. 인간은 매우 현명하고 인간은 매우 위대하고 인간이 이루어 놓은 과학문명은 매우 웅장한 것 같으나 실상 인간은 그 속에서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틸리히가 말한대로 "던져진 존재"가 틀림 없습 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 근원적인 불안에서 잠시라도 해방을 받을까해서 술을 마십니다. 고고클럽에 가서 정신없이 미쳐버립니다. 대마초를 피우게 됩니다.

자, 여러분! 이렇게해서 인간의 근본적인 불안이 해소될 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술로 인 하여 그 몸을 망치는 사람이 많습니다. 감각능력이 흐려지고 사고능력이 감퇴해 지는 무서운 알콜중독에 걸려가면서도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간장이 녹고 굳어 져버려도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뇌 세포가 파괴되어 결국은 페인이 되어버리는 것을 알면서도 대마초를 피우고 있습니다. 도대체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하여 존재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 자신이 서 있는 처지 를 모르는 사람,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용기를 가지고 있지 못하는 사람의 형 편이 바로 이렇습니다. 언제나 불안하기만 합니다. 언제나 만족이 없습니다.

그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모시지 못한 사람, 마음에 하나님 없는 인간의 결국은 그렇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의 형편은 마치 누가복음 15장에 소개 된 탕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것입니다. 그는 가진 돈을 다 써버린 후 갈 곳 마 저 없어져버렸습니다. 결국 그는 돼지를 치면서 돼지와 함께 딩굴고 돼지와 함 께 먹고 돼지와 함께 자는 처지로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이지만 동 물의 위치로 떨어진 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제 표현이 좀 과격할는지 모르지 만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께 소속되어 있지 않은 모든 사람의 생활이 동물과 같은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먹을 수 없는 것을 먹고 좋아하 며, 가지 못할데를 가면서 좋아하는 무질서한 인간들의 생활은 결국 인간 그 본 래의 모습에서 떨어져서 동물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청년 여러분! 우리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십시다.

"정말 내가 이시간, 바로 이 시간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되셨습니까" "정말 그리스도인 되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그리스도인의 긍지를 가지고 있 습니까" "정말 하나님의 자녀 되었음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생활 이 여러분의 그리스도인임을 증명할만 합니까" 교회에 나오기는 하는데, 찬송을 잘 부르고 성경을 많이 알고 있기는 하는데 생 활은 하나님 없는 사람의 생활을 하고 있지나 않습니까 교회 안에서 청년들 안 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양심 없는 사회인들에게도 용납될 수 없는 일들이 있지나 않습니까 이제 다시 오늘 읽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십시요 1절 중간에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를 불안으로 몰아넣는 모든 세력권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이 오직 여기에 있 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불안에 허덕이지 말라" 고 하십니다 왜 무엇 때문에 "내가, 나 혀호와가 너 불안에 떨고 있는 너를 구원하였다. 내가 너를 많은 사 람들 가운데서 지명해서 불렀다. 그러므로 너는 이제부터는 비록 부족한 점이 많지만 내 백성이다. 내 소유다." 하나님은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던져진 존재" 가 아닙 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매여진 존재,그에게 소속된 존재"입니다. 우리가 우리 의 어떤 잘한 일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의 은혜로 그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 제 우리는 그의 저주와 심판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의 사랑과 축복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아마 우리 그리스도인들만큼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많이 쓰는 사 람들도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서는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하셨으니만큼 그리 스도인들이 모든 일에 감사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것처럼 많은 수의 그리스도인들이 "감사 합니다." 라는 말만을 즐겨 쓸 뿐 실제로는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 생활 전체가 감사로 연결되지 못한 채 "감사합 니다" 라는 말만을 즐겨 쓴다고 그것이 진정 감사하는 생활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자, 여기 두 종류의 샘 근원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 물이 항상 맑고 깨끗하고 다른 하나는 더러운 물이 솟아나오는 샘입니다.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두 샘 은 다 더러운 물로 가득차버렸습니다. 사람들이 두 샘물을 다 깨끗이 펴낸 후 맑은 물로 가득 채워놓았습니다. 이제 둘 다 깨끗해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에 보니 하나는 여전히 깨끗하고 맑은데, 다른 하나는 더러운 물로 가득차버렸습 니다. 다시 더러운 그 샘물을 깨끗이 퍼내고 맑은 물로 채웠습니다. 그러나 얼 마 후에는 또 다시 더러워졌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하나는 샘 근원이 맑고 깨끗한데 다른 하나는 그렇지 못한 데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에 대한,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어 구원 얻은데 대한 원천적인 감사가 우리 마음 속에서부터 깊히 샘솟지 아니하는 한, 일시적으로 우 리의 처지가 좋게 되었다는 것으로 감사하는 마음만 가지고서는 정말 진정으로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 용서함을 받고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는 감사가 우리의 마음 속에서 샘울이 터지듯 터져 나오게 된다면 우 리가 일시적으로 당하는 괴로움이나 시련도 능히 이기고 감사할 수가 있는 것입 니다. 우리가 구약성서에서 발견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감사의 원천은 그들의 처 지가 어떻게 변화하느냐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저 감옥같은 애굽에서 해방받은 출애굽에 대한 감사였던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0장 을 보면 저 유명한 십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삶의 규범 을 주시기 전에 먼저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 나는 너를 애굽땅 종되었던 집에 서 인도하여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라" 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되 마지 못해서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계명을 지켜야 할 것을 가르쳐주신 말씀이신 것 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우리 가 실천해야할 생활의 의무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억지로 마지 못해서 형벌 이 두러워서가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긍정적으로 실천해야할 의무인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그리스도인되신 일에 대하여 감사하십시요.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의 명령을 따라 살아간다는데 대한 자부심을 가지십시요 오늘 이 세대와 내일의 세대에 청년 여러분이 해야할 사명은 참으로 큽니다. 오 늘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 중에는 나이 많으신 분들이 가진 문제보다도 청소년들 이 가진 문제가 더욱 큽니다. 두 주먹을 힘차게 부려쥐고 허리 띠를 한 칸 더 당겨 매고 내일을 향한 힘찬 전진을 계속하면서 오늘의 이 병든 사회를 물려받아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할 오늘 청년들의 형편이 어떻습니까 하나님 없는 사 람. 하나님께 소속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기대를 걸 수 없고 이 사회를 맡길 수 없습니다. 이 병든 사회를 맡을 사람은 오로지 하나님에게 소속한 사람. 하나님 의 아들 딸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기대를 걸고 계실 것입 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알고,하나님의 능하신 손에 잡힌줄 알고 힘찬 신앙의 전진을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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