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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주님의 대속적은혜 (사 53: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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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간은 우리 주님게서 1960여년 전에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 당하고 죽어주 신 대속의 사건을 기념하는 고난 주간이다. 이 아침 주님이 오시기 전 700여년전 에 그리스도의 수난을 예언했던 이사야 선지자의 에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은혜 를 받고자 한다.

 <주님의 고난의 형태를 알아보자> 3절. 멸시를 당하였고 간고를 많이 격었다. 천상에서 주님의 얼굴은 감히 천사들 조차도 우러러 보기를 두려워 하여 두 날개로 자기들의 얼굴을 가리우고 다만 주 님을 거룩하다고 찬양하신 분인데, 이런 존귀하신 분을 사람들은 그 얼굴에 침을 뱉았다. 마치 몸쓸 사람을 보듯이 얼굴조차 보기 싫어했다.

오늘 우리는 잔혹한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사형당하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

그만큼 그를 잘 아는 인척이나 그가 처형당하는 날을 알아 교수형에 처해지는 날 방청석에서 지켜 본다. 그러나 주님의 처형은 완전히 모든 대중앞에서 공개된 처 형이었다. 만인앞에서 수욕과 멸시와 수치를 당했던 것이다.

 8절. 곤욕과 심문을 받고 끌려 갔음.

이 땅의 재판은 미리 재판일을 공고하고 한낮에 여러 사람이 방청하는 가운데 실시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을 재판할 때 유대의 최고채판소인 산헤드린은 유대인의 유월절 명절이므로 사형집행을 않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방심하고 있던 바로 규월절 바로 전날, 아무도 모르는 한 밤중에 느닺없이 주님을 체포하여 단 몇시간만에 사형판결을 내렸다. 역사상 가장 어두웠고, 불의한 재판사건이엇다.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을 처형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한 밤중에 모여서 중인들 의 말도 맞지 않은 채 죽석에서 사형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사형권을 갖고 있던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로 끌고 갔다. 빌라도는 그 아 내가 간밤에 꾼 꿈이 이상해서 그리스도를 처형하는 것이 두려워서 처형을 미루 고 헤롯에게로 보냈다. 헤롯은 주님을 시험해 볼려고 하다가 안되니 조롱하면서 다시 빌라도에게로 보냈다. 주님은 짐승처럼 끌려 다녔다. 전직 대제사장 안나스 에게서 현직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빌라도 총독에게로, 헤롯궁전으로, 다시 빌 라도 총독앞으로. 이렇게 멸시받으며 짐승처럼 끌려 다니는 동안 날이 훤하게 새 아침이 되었다.

 5절. 찔림-머리에 가시관을 쓰신 주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팔레스틴 남부 지방에 광야에는 가시가 나는데, 그 가시는 건조한 땅에 나는 것이므로, 매우 날 카롭고 딱딱하여 사람이 한 번 찔리면 상처를 주고 피가 흐른다 함. 그런 가시덤 불로 관을 역어 주님의 머리에 씌움-왕이니가 왕관을 써야 하지 않느냐는 놀 림에서. 상하고 채찍에 맞음-로마 군인의 채찍은 소가죽을 말려 만든 채찍으 로 끝에 납덩이를 달아 놓아 거기에 맨살이 살점이 뚝뚝 떨어짐. 장정이라도 두 세대 맞으면 픽픽 쓰려졌다고 한다. 주님은 벌거벗은 맨몸으로 빌라도 앞에서 채 칙에 여러대 맞았고,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수없이 맞아 주님이 걸어가신 골고다 언덕길은 피로 얼룩졌다.

또 찔렸다는 것은 십자가에 못박힌 것을 보여 준다. 주님과 다른 두 강도의 일 행이 사형장에 도착하여 사형집행이 시작되었다. 때는 우리나라 시간으로 오전 9시. 십자가에 주님을 눕혀 놓고 잔인한 망나니가 주님의 연약하신 도 손목과 발 등에 쇠못을 박았다. 유대지방의 납골당에서 발견된 바에 의하면 당시에 박았던 못이 아직 남아 잇는데, 길이가 약 20cm가까이 되었다고 한다. 주님을 못박는 그 망치소리가 갈보리 언덕에 저 골짜기에 울려 퍼질 때 주님은 얼마나 아프셨을 까! 주님을 낳았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의 가슴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주님 을 따랐던 베드로, 요한, 여러 제자들, 여인들의 괴로움,. 그러나 저 하늘나라에 서 내려다 보고 게시던 아버지의 가슴은 얼마나 더 아프셨을까! 하늘의 권능있 는 천사들은 숨을 죽이고 독생자께서 저토록 잔인하게 죽으시는 광경을 볼 때 아 버지의 뜻을 알지 못하던 그들은 수천 수만의 천사들이 일시에 내려와 저 못된 인간들을 죽이고 독생자를 살려 하늘로 올라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부게 서는 괴로운 가슴을 억누르며 참고 게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침내 아 들은 인고 6시간끝에 부르집으며 그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기고 죽으셨다.

 8절.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마침내 그 영혼이 죽었다. 영생이신 그 분이 한 인간과 똑같이 죽었다. 죽을 필요가 없는 창조자께서 죄인처럼 죽으 셨다.

 <고난의 이유> 4, 5절. 그의 죽음은 우리 인생과 직결됨. 우리의 질고, 우리의 괴로움을 지고 죽으심. 우리의 슬픔을 당함. 죄의 값은 괴로움이요, 슬픔이다. 그 죄값을 주님 이 다 담당하심. 5절. 우리의 허물을 인함. 우리의 죄악을 인함. 나때문에 그 곡 난을 당하심. 평화를 누리고-전에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를 하나님과 화 목하게 하시려고 우리의 죄값을 당하여 고난당하심.

6절. 우리들의 죄악을 모두 그 분에게 담당. 레위기에, 번제나 속죄제사를 드릴 때, 죄를 지은 사람은 제물로 쓸 짐승을 끌고 와 성막문앞에서 제물의 머리에 손 을 넣고 안수. 짐슴의 머리, 짐승의 몸에 내 죄를 다 전가시킴,. 이 짐승이 날 대신 죽으니 받으시고 날 용서해 주세요. 짐승은 인간의 죄를 지고 죽엇다.

그 희생의 양은 곧 그리스도의 에표였다.

롬 5: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게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 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민주화투쟁때 현 김영삼 대통령을 위하여 김덕룡의원과 최형우 의원이 대신하여 감옥에 몇차레나 투옥되었었다는 것은 이미 알려 진 사실이다. 또 구 한말에 독립투사들게서는 나라의 독립 싸우다 일제에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거나 나라를 위해 죽기도 했다. 이처럼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나, 자기들이 존경하는 정치적 보스를 위해서 옥살이를 하거나 죽는 일은 혹 세상에 잇지만, 죄인을 위해서, 몹 쓸 사람들을 위해서 대신 고난받는 일은 없다. 그런 인은 하나도 값어치가 없는 일로 여기기 때문. 그러나 우리 주님은 보잘것 없는 인생, 하나님을 거역한 죄 인, 볼레와 같은 인생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으니, 이 왠 사랑인가, 왠 은 혜인가!

<고난의 자세> 7절. 말없는 순종으로 일관. 이 고난을 받을 때, 한 마디도 불평하지 않으심.

벧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선을 행함으로 믿음때문에 고난을 받을 때 주님의 이 런 모습을 본받으라고 요구함. 벧전 2; 22-24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 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기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 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 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셧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 라".

심지어 주님을 이렇게 죄인을 위해 고난을 받으셨지만, 단 한 사람도 주님의 고 고귀한 죽음의 뜻을 깨닫지 못했다. 마땅히 주님의 죽음은 칭송받아야 하고 존경 받아야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주님게서 자신들의 죄대문에 자기들을 위하여 주 으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 자신의 잘못대문에 하나님 께 벌을 맞는다고 생각했다. 가장 숭고한 사랑의 죽음이 가장 비열한 죽음으로 오해되었다. 오해받는 것처럼 답답한 것은 없다. 사람들은 자기가 오해받을 대 분노를 참지 못하여 잘잘못을 밝히기 위해 큰 소리치고 법정에 고소를 한다. 그 러나 주님은 한 마디도 따지거나 섭섭해 하지 않으시고 말없이 모든 고난을 받으 셨다. 왜 우리 죄를 완전히 구속하시기 위한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였 다. 이렇게 오해받음에도 불구하고 그 엄청난 고난을 말없이 받으셨기에 주님의 고난은 더욱 빛이 나는 것이다. 우리 주님의 고난을 누구의 고난에 비교할 수 있 겠는가! 소크라테스가 정치적으로 희생되어 감옥에서 독배를 마시고 죽은 죽음과 비교되겠는가! 그를 존경하던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던 공자, 석가, 마호메트, 간디 그 어떤 사람들의 죽음과도 예수님의 죽음은 비교할 수 없 다. 누가 이렇게 죄인을 위해 죽었단 말인가! 누가 이렇게 죄인을 위해 온갖 수 모와 고난을 침묵하며 기꺼이 감당하였단 말인가! 아직도 주님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기에 자 기를 위해 죽으신 에수를 믿지 않고 나무아래 앉아 수도하던 석가를 믿고 조상신 과 온갖 잡신을 믿고 우상을 믿는다. 이 얼마나 안타가운 일인가! 저와 여러분은 날위해 고난당하시고 다시 사신 에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따 르자. 이 에수님을 전하자.

 <고난의 결과> 10절. 그 씨를 볼 것이요 그 날은 길 것이다.

씨는 후손을 의미. 에수님의 희생을 통하여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생긴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 세를 주셨으니" 예수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됨.

그 날은 길다. 아니 영원하다. 다시 또 한 번의 덩없는 생을 위한 환생이 아니 라,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다.

11절. 하나님의 만족이요, 주님의 만족이다. 죄인을 위한 값이 충분히 치루어졌 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하나님이 만족하셨으니 속죄가 되는 것이다.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의롭다 하신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고난은 자신의 잘못대문에 받으신 고난이 아니라, 나때 문에, 내 죄때문에 당하신 대속적 고난이다. 이것을 믿느냐! 에수님게 여러분의 손을 엊으라. 여러분의 모든 죄를 다 맡기라. 이제 우리도 고난 당하신 주님의 뒤를 따라 주님위해 살고, 의롭게 살고,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생을 살도록 하자.

두 청년이 도박을 하다가 붙들려 옥에 갇혔다. 한 사람은 부자집 아들이므로 금 방 보석금을 물고 나왔다. 그러나 한 청년은 집이 가난하여 감옥에 남아 있어야 했다. 그의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든 아들을 구해 내려고 매일 온정일 험한 공사 장에서 노동을 했다. 어느날 돌덩이가 떨어져 손등을 크게 다쳐 상처가 났다.

어미니가 아들에게 면회를 갔을 때 아들이 어머니의 상처난 손을 보았다.

"어머니, 그 손 왜 다치셨어요" "너는 구하려고 밤낮없이 노동하다가 그만 돌이 덜어져 다쳤다." 결국 그 어머니는 보석금을 벌어 아들을 석방시켰다. 그런데 얼 마 뒤에 부자집 청년이 다시 함게 도박을 하자고 그를 꾀었다. 그러나 가난한 집 청년은 이렇게 말하며 단호히 거절했다.

"나는 결는 결코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네. 자네는 돈이 많아서 금방 감옥 에서 나올 수 있었지만 나의 어머니는 노동하며 피가지 흘려 나를 구해 주셨네.

그러니 나는 다시는 그런 도박을 할 수가 없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죄에서 구해 주시기 위해 우리의 주님이 보배로 운 피를 흘려 주셨다. 주님을 믿고 죄에서 떠나 의롭게 살며 주님영광위해 사는 저와 여러분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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